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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ma Oct 13. 2021

9. 재주는 기업이 넘고 돈은 평가사가 가져간다

이러고도 법인세를 낼 정도로 돈을 벌면 기적이다

규제를 하겠다고 하면 규제의 대상자들이 그 범위와 밀도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더러 회계 감사를 받으라고 해도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감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명백하고, 어떤 기준에 따라 감사가 진행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회계사들은 어떤 기준에서 감사를 진행했는지 의견을 주고, 해당 감사를 완료한 보고서는 공시된다. 그 보고서들은 투자자들의 판단기준이 된다.


기업의 ESG 지표에 관한 규제는 어떠한가. 

당장 여러가지 공시의무를 부담하는 금융기관이라면, 기관이 투자할 대상 기업의 ESG지표가 만족스럽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나. 고르기 어렵다. 왜냐하면 EC가 ESG를 평가 의뢰한 기관만해도 10개가 넘으니까. 무디스(Moody‘s),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같은 신용평가회사, 그리고 레피니티브(Refinitive)나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 팩트세트(FactSet)와 같은 재무정보회사는 물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ESG 지수,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러셀의 FTSE4Good 지수 등등 유명하다는 지수도 쏟아지고 있다. 저마다 다 유명해서 저마다 본인들의 지표와 모델이 주무관청의 근거자료가 된다고 홍보한다. 회계기준서가 여러 종류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EC마저도 ESG지표의 가이드라인 참조 기구에 대해서 TCFD,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standards), SASB(Sustainability Accounting Standards Board)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 가운데 하나인 어떤 기구의 지침이 누군가에 의하여 첫 참조를 받고, 그 이후 작성 후발주자들은 그 내용을 참조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문제는 뭐 하나 정해서 따라 보고해도 잘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기업 일부이 GRI기준을 참고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자, GRI기준은 전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매우 일반적인 이슈에 대해서만 기재하도록 돼있어 정보의 구체성이 부족하여 개별 기업의 성과 평가나 기업 간 비교에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발생했다. 명확한 회계기준이 인정되면, 그 기준을 따르면 될 것이었는데,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어 외부에 맡겨 제작한 보고서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비판을 받는다면 기업의 잘못일까 의구심이 생긴다.



사실, ESG 아니어도 그동안 dart, 금감원 공시페이지에서 이미 검색이 가능한 각 기업의 사업보고서에서도 이미 확인할 수 있거나, 많은 비용을 들여 성의를 표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환경정보공개시스템, 기업 웹사이트 등에 여러 사람이 파편적으로 공시된 정보들은 난삽하게 흩어져 있다. 이는 ‘하라니까 한 건데 불필요하다는 지적만 받는’ 것이다. 공시 정보의 범위, 내용, 공시 방식 등에 대해 구체적인 세부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지만, 부담을 지게된 주체는 일단 당장 뭐라도 공시해야 하는 입장이라 혼란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EC만해도 주요한 기술지표는 여전히 오픈되어 있다 워낙 다양한 주체들, 가령 기업, 투자자, 정부, NGO 등의 이해관계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업별 특수성 마다 기초가 되는 과학적 근거도 달라 기준을 만들어 공표하기 까지는 한참 걸릴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표준화된 지표를 만들어 제공되지 못한다는 지적, 그리하여 과연 ESG 지표가 유의미한 지표인지에 대한 의문 등이 계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같은 대상 기업에 대해 평가기관마다 서로 다른 ESG 평가를 내리고 있으니 ESG 보고서는 또다른 부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시된 이 난국의 해결책은 교차검증이다.


내노라하는 기관들의 ESG 지표를 평가하는 기관마다 서로 다른 결과를 나타내니까 각자 다른 지표를 교차검증하자. 이 또한 누가 비용을 대는가. 만약 규제권자들이 각 기업은 각자 다른 교차 검증자들의 두 개 이상의 ESG 평가를 받고 보고서를 공시하라는 내용의 입법을 하게 된다면, 이 판에서 돈 버는 것은 평가기관이다. 기업은 도대체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어떤 효익이 예상되는지 알 길 없는 보고서를 만들다가 비용 다 쓰고 말게된다.


2021년, 4대 로펌, 4대 회계법인은 ESG 전문가 그룹이 우리에게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단행했다. 구조도 비슷한 홍보 자료는 주로 ESG 규제가 오니 미리 대비 하라고 난리이다. 우리가 잘 안다, 정부가 규제하기 전에 우리한테 맡겨라. 일단, 그들이 전문가 그룹이라고 홍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 논의는 차치하고, 당신들한테 맡겼을 때 뭘 도와 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아마 같은 내용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EU에서 규제를 준비하고, 글로벌 기업들이 준비하고 있고, 우리도 곧 시작된다.


그래, 그러니까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뭔가 준비중이라는 해외의 금융기업들은 특히 2020년 작년부터 대대적인 ESG 마케팅을 벌이고는 있다. 다만 그 덕에 엄청난 지적과 비판을 받고 있다. DWS(Deutsche Bank 계열 운용사), 적절한 ESG 평가시스템 없이 부적합한 펀드를 ESG 상품으로 분류하여 허위 공시 한 것으로 지적 받고, 블랙록, UBS 등 글로벌 주요 운용사의 130개 ESG펀드 중 72%가 파리기후협정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는 바람에 비판 받고 있다. 뱅가드 (Vanguard)는 US ESG ETF 수익률 제고를 위해 구글, 애플 등에 투자하면서 그 일반 ETF를 명칭만 ESG로 바꾸어 판 것이라고 비판 받으며, HSBC, JPM 등은 ESG 경영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화석연료 관련기업 파이낸싱 중단계획이 없다. 그 덕에 그린워싱 논란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란 '과장광고'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투자와 다른 것이 아닌데 '친환경 이미지 한 스푼 넣어' 호도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지만 비슷한 것처럼 홍보하는 행위를 잡아내겠다는 것은 EU가 Green Bond 등의 ESG 투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강조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린 워싱만 비판할 수도 없다. 지금 당장 ESG 투자인지 여부를 판단할 평가지표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고, 금융회사는 일단 하라는 아젠다 열심히 받들어 상품을 구성하고 그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그 내재된 특성 때문에 계속적으로 ESG라는 실체 없어 보이는 요상한 단어만 강조되다보니 급기야 미국 SEC는 2021년 4월. 미국 SEC에서는 Risk Alert paper를 통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ESG, 지속가능한 금융(Sustainable finance), 임팩트 투자 이 유사 동의어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념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기업들이 ESG라는 말을 마케팅에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재고해야 할 것 같고, 적어도 ESG에 대한 공시는 내부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이 외부에 공시된 투자 의사결정과 일관성 있어야할 것은 같다. 암튼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ESG규제 트렌드를 지켜볼테니, 너무 마케팅적으로 남용하지마라.'


금융기관이 마케팅을 하게 된 이유는 사실 제도도 정비되기 전에 이것이 규제 비즈니스인라고 마케팅하는 평가사들, 자문가들 때문이다. 특히, ESG 평가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회계법인이나 신용평가사들의 강력한 드라이브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컨센서스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ESG 에 대해서 무엇을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것일까. 함께 영문 번역본을 탐독해보는 대가로 기업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 이 지출은 평가사와 자문사의 새로운 수입원이다. 신사업으로 수익 창출할 생각에 들떠있을 용역 팀들을 생각하니 모르는 척 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기업이 돈을 버는 데 집중할 수 없는 또다른 부담이 생긴 것이다. 



ESG 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정부에서 ESG 를 중점적으로 본다는데, 우리도 준비해야지?’라는 시작점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단, 무엇을 규제하는지 검토하게 된다. 기업의 투자 의사 결정이 환경적으로(E), 사회적으로(S), 지배구조적으로 (G) 바람직한지, 재무적으로 돈을 얼마 벌었는지 이외의 지표로 성과를 평가해보겠다는 넓은 의미의 평가 지표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걱정되는 것이 있다. 그렇게, 하라는대로 투자 검토시 고려한 ESG 항목에 관하여 누가 나를 잘 평가해줄 것인가. 


제3자, 특히 규제당국이 나서서 ‘이걸 얼마나 잘했는지 평가하겠다’라고 하는데, 뭘 잘해야 내 검토가 잘한 검토라는 것을 검증받는가. 그 평가 척도는 어떤 기준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척도를 평가를 준수하게 되는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지, 그 평가 척도에 하회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각 이익 불이익은 적정한 것인지. 그 이익 혹은 불이익 때문에 다른 산업에 생각지 못한 악영향은 없는지 복잡한 문제가 남는다. 나는 지금 어떤 평가 기준을 대비해야 하는가.

당장 미국 국경을 오가는 트럭으로 수송할 물건이 없는 국내 시장 중심의 IT회사라고 가정해보면, 나는 탄소중립을 위해 뭘 한다고 준비해야하는지 당황할 수 있다. 특히, 오일 가스 분야 메탄가스 배출 감축하라는 아젠다나, 유해 공기 오염 물질 배출 기준에 대한 아젠다를 보면 나는 해당하지 않는 주제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투자자의 지속가능한 의사결정에 대해서 IT회사인 나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헷갈린다며 질문해보니, 컨설팅을 받으라고 한다. ESG의 핵심은 공시라면서, ‘비재무적 금융정보의 공시 의무화(NFRD)’도 있고, SFRD (지속가능한금융공시), CSRD (기업지속가능성공시) 도 있다고 한다. 의문은 더 깊어진다. EC가 제시한 그 규정에 한국 기업도 포함되는지, 아니라면 우리나라는 어떤 공시를 원하는지 궁금하다. 컨설팅 업체에서 제시한 것들은 유럽 기업에 대한 것들이고 나는 아직 아닌 것 같다고 질문한다. 그러자 곧 우리나라도 입법이 예고되어 있고, 그 입법은 유럽을 모델로 할 것이라고 어서 컨설팅 받으라고 한다. EC 규정을 살펴보니 일단 공시의무 기업이 한정적이고, 공시의무를 위반했다고 하여도 당장 제재를 가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실효성을 확보할지 오픈된 상태라는데, 게다가 공시의무를 부담할 기업의 대상도 아직은 상장기업 중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인것 같다는데, 누구와 거래하면, 이른바 밸류 체인 안에 포함된다며 공시를 준비해야하는지 질문해도 답이 아직 없다. 




ESG 규제의 선도 그룹은 유럽이고, 특히 EC 에서 제시하는 여러가지 방향과 후속 가이드라인들은 많은 부분 다른 국가들이 벤치마크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럽에서도 무엇을 공시하는지, 공시하는 내용이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의견이 모아진 것은 아니다.


특히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지속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사업의 밸류체인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영향, 그 영향을 예방할 수 있는 스스로의 노력이나 조치 등을 공시하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그 당시에 예방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내용일 경우가 많고,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은 그야말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영업비밀을 다 공개하면 앞으로 사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만천하가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업을 영속기업으로서 계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고, 그 능력이 사실 좀비 기업과 영속 기업을 구별하게 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공개할 정보라고 규정이 되는 순간, 그걸 규정이라고 들이밀면서, 왜 규정 위반을 하게 되는지 많은 공수를 들여서 증명해야 되고, 그 부분에 공수를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규정에 박는 순간' 규정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자들에게 엄청난 권력이 생겨버리는 것인데 그만한 힘을 쥐어주고 통제하면 그만큼의 효율성이 담보되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 문제이다.


공시하라는 의무 규정 자체의 법제화가 이런 난점을 가지고 있는데, 공시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겠다는 목표는 관철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손가락질하기 어려운 막연한 의무를 규정해놓고, 일단 공시가 허술하니 혼내주겠다는 것은 실현되기까지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지속가능성 있는 비즈니스에 투자했음'을 공시하시오. 라는 수준의 행정지도가 내려온 것이고, 대부분, 수치적으로 증명하기 대단히 막연해보이는 장밋빛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별도의 리포트를 통하여 공시하고 있다. 설사 그 공시를 지키지 않았다고 한들 제재되지 않는 리포트이므로 모든 리포트들은 용비어천가수준인 것이다.



이 글의 모든 내용을 다 잊어도 된다. 하지만, 한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ESG 가 나타난 이유를 잊으면 안된다. 불필요한 공시의무에 대해서 그냥 잊어버려라. ESG 규제가 무엇인지 그 규제를 통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규제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 규제를 통해 반드시 지키려고 했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면 그 때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고민은 정부가 해야하고, 기업은 스스로 하던 일을 더 잘할 수 있으려면 ESG 요소 중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정도를 고민하면 된다. 회사의 사업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갑자기 '얼마나 친환경적인 투자를 했는지'를 준비하는 보고서를 만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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