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다고 따라가지 말자. 이 노래의 중심은 나다
TV에서 본 한강이 보이는 집. 이런 소망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소망을 이루는 데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모르고 정부는 그저 땜질만 했다. 그 사이, 유명해서 유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많은 이들의 조바심을 자극했고, 덕분에 투기가 재테크로 용인되고 재테크가 곧 투자의 전부인것처럼 오인되어 투자가 결국 일확천금하고 현금 플렉스 통장을 인증하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다. 그 덕분에 월급 모은 돈 금융상품으로 굴려 안전하게 금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지고 있다. 모두가 투기 레이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렇게 위태로운 환경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규제가 필요하다면 이런 환경이다. 정부의 화력은 보살핌이 필요한 곳에 더 집중되었으면 좋겠다.
'투자'라는 단어가 곧 '재테크'가 되고, '재테크'로 아파트 투자했던 사람들이 성공한 투자자로 강의를 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된것은 '금융'이라는 산업 자체에 좋은 현상은 아니다. 투기가 재테크라는 이름으로, 재테크가 투자라는 이름으로 더 좁고 왜곡된 개념으로 변형되어 인식된 채, 투자를 한다는 명목으로 개인 재테크를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극대화된 선택이 결국 투기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투기적 성향이 시장을 지배하면 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자본 조달을 조절할 수 밖에 없다. 막상 필요한 곳에 자본이 조달되어도 그 기능은 과소평가될 것이다. 자본은 필요한 곳으로 흐르고, 그 흐름은 혈액처럼 흘러 하나의 생명체처럼 기업이 일어서고,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한다. 급하기 때문이다.
투기는 혈액이 될 수 없다. 투기와 투자는 다르다. 그 두가지의 차이점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보살피는 역할에 손이 모자란다. 이렇게 되면 정작 필요한 곳에 투자되는 돈의 흐름은 제때 조달되지 못할 수도 있다. 전국민이 적금대신 코인을, 코인 대신 부동산으로 일년에 몇 프로 벌었는지 레이스를 펼치는 요상한 시대가 되었기에 ESG 투자라는 다소 지루하고 덜 화끈한 투자는 저평가될 수도 있고, 외면당할 수도 있다. ESG 투자는 외면당해서는 안된다. 누차 언급한 것처럼 내 국민연금과 내 퇴직연금은 해외의 ESG 펀드에 투자되거 있다. 그래서 우리는 ESG에서 눈을 떼면 안된다. 단, ESG가 마치 강남 아파트 청약처럼 대단한 수익률을 가져다 줄 것처럼 포장되어서도 안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미국 SEC가 올해 4월 발표한 Risk Alert Paper 에서 말했든, 무엇이 정확한 ESG 펀드인지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일단 유명한 펀드라니까 가입해야될것만 같이 마케팅으로 남용되어서도 안된다. 이 어려운 일은, ESG 규제를 설계하는 정부가 꼭 맡아주면 좋겠다. 정부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안전장치 없는 코일이 떨어져 내가 깔려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 정부에게 지원금을 기대하진 않는다.
요즘의 초등학교 한 반에는 미국을 다녀온 적 없는 학생이 한 두명 뿐이라고 한다. 서울만의 이야기 일수는 있으나, 지난 시절과는 완전 다른 세상임은 확실하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초등학교 6학년때 하와이를 간 것이고 그 때 그 학년에서 비행기를 탄 적 있는 학생은 3명이었다.
외국인이 무섭지 않고, 고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토론하는 세상, 이렇게 달라진 세상에서 해외에서 한다니까 허둥지둥 ESG를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SG 플랜의 목표가 우리가 잘 하는 것, 우리가 더 유리한 것, 그리고 우리가 장악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촘촘하게 설계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