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치 못한 편지 같은 내 소원은 말이야
사랑이 끝나고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되기를 수 차례.
나는 언제나 그랬듯 '외로워 죽을 것 같은' 혼자로 살고 있다.
아는 동생이 이렇게 물었다.
"언니, 나는 쉬지 않는 편이거든요. 식어가거나 안 좋을 때, 다음 사람을 이어서 만나는 버릇을 들여요.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로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하하하."
다음 사람을 이어서 만나는 버릇이라.
나는 그 동생이 엄청나게 앞서 나가는,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난해한 옷을 입은 하이 패션 모델 같이 느껴졌다. 그 동생의 말이 너무 멋져서 만나는 친구들마다 그 말을 반복했다. 친구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넌 안돼. 넌 깊이 들어가서 바닥을 보고, 너가 돌아서야 끝나지."
"하하하하. 그랬던가?"
"뭐 다들 뜯어 말리고 욕해도 못 놓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서면 다신 안 보잖아. 그래서 다들 너 정 떼는 거 무서워 하고 나중에 연락안 된다고 난리 치고 그랬잖아."
"하아... 그런 적도 있었네. 나 오래 살았구나?"
"하하하, 오래도 살았고, 별 놈도 다 있었고. 그러니까 또 언젠가 별 놈이 올거야."
같은 남자를 13년째 만나고 있는, 지극히 안정적이라 미치도록 부러운 연애의 주인공인 친구는 이제 100세시대이므로 새로운 연애는 언제나 늦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주었다.
이름 없는 작가라 종이책 출판이 매번 좌절되던 시절, 전자책만 주구장창 리뷰하던 에디터에게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 적 있었다. 에디터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 물으며, 출판시장이 작아서 안된다고 했다. 나는 돈이야 회사 월급이 있으니, 당장 욕심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에디터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작가님의 로맨스에는 문제가 있어요."
"어, 어떤거죠?"
"독자들이 로맨스에서 기대하는 것은 오그라들어도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공주님 왕자님 스토리에요. 그런데, 작가님의 로맨스는 판타지가 없어요. 모두가 현실에서 봄직한 것이거든요. 냉랭한 톤을 좋아하는 마니아 층은 있겠지만, 백만 독자는 만들기 어려워요. 귀여니 소설이 욕을 먹었죠? 그런데, 그 소설은 판타지를 충족 시키니까 어마어마하게 팔린 거에요."
나는 몹시도 반박하고 싶었지만,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귀여니가 되고 싶은 생각은 크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에디터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한가지 더 문제가 있어요."
"팍팍하다는 것 말고 또?"
"네, 작가님의 로맨스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요. 주로 이 사람과 미래를 꿈꾸며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라고 끝나지 않죠. 주로 '나 너를 진짜 사랑했다.'라고 하고 떠나가요.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죠. 그러니까 대리만족이 안되요. 그래서 백만 독자는 어려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꽤나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모두 해피엔딩이 없었다. 그것은 내 세계가 가진 한계였을 수도 있다. 나는 줄곧 그렇게 불쌍한 한계가 드러나는 글을 썼던 것이다. 그 어떤 사랑도 마음 아픈 결론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내 안의 사랑이란 늘 현실이고 늘 웨딩마치와는 거리가 멀어진 새드엔딩이었으니까.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 애초부터 미리 좌절해두는 것. 희망을 처음부터 갖지 않는 태도는 습관이라고.
그런 습관을 가지면 두려움은 더 증폭되고, 일종의 '파국화 현상'에 매몰될 수 있다고.
몇 가지 기억이 난다.
망할 것 같으면, 먼저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순간들.
이별이 올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오고,
나는 먼저 이별을 엄포하고,
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하거나
혹자는 '작작 좀 해!'라고 하거나.
그럴수록 나는 '그렇지, 내가 하는 연애라는 게 이모양이지' 라며 자책했었다.
하지만, 꼭 미리 좌절하지 않았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를 떠난 사람, 그렇게 매달리는 데도, 매정하게 돌아서던 사람. 그 때에도 나는 '내가 하는 연애가 그렇지 뭐, 결국 구걸해야 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처량하고, 비참했다.
뭐야. 나는 늘 판타지가 없었네. 그저 매번 지독한 현실이었네.
갑자기 이런 소설이 쓰고 싶다.
주인공인 여자는, 지나치게 나와 유사한, 그러니까 이 사랑이 불안하고, 내가 넘치게 사랑하는 것이 귀찮을 까봐 무섭고, 내가 힘들게 할 까봐 걱정되고, 그 걱정되는 만큼, '여기서 헤어져'를 남발하는 진상인데, 남자는 늘 이렇게 말 해주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니. 나 어디 안가. 여기 있잖아."
라는 말.
그가 이 말을 해주는 모습은 주로 꼭 안아주면서 하는 것이 좋겠다. 엉덩이를 쭉 빼지 않은, 성의 있게 안아주는 모습.
이 말 너무 듣고 싶다.
이 순간 너무 맞이하고 싶다.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싶다.
이 정도면 내 기준에서는 우주선 나오는 판타지에 가깝고, 판타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디 가지 않겠다는 미래를 약속하기에, 백만 독자를 불러들일 만한 로맨스라고 생각된다.
다시금 펜을 들까보다.
(내 생일이 지났고, 화이트 데이가 지났고, 그의 생일이 지났다. 1년 전 오늘이 생각나 갑자기 글을 써 봄.)
아야코 할머니의 에세이 중 '즉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글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자살을 계획한 사람이 친구 집에 들렀는데, 극진히 대접받고, 푹 쉬라는 말을 듣자, 왠지 죽기가 뭐해서 결과적으로 죽을 기회를 놓쳤다고. 그러니까 문제가 닥치면 주저하고 금방 답하지 말라고 하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또 툴툴대던 중, 갑자기 꽤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생겼다. 생각나는 즉시, 감정에 충실하게 , 마음에도 없는 말, '헤어져'를 반복하지 말고, 좀 가만히 뭉게보자, 남은 생, 새로 만날 남자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