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던 나를 잊지 말아요

by Nima

새벽에 잠이 깼다. 출근 걱정에 몸을 뒤척였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들어 이것 저것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TV동물농장 에피소드만 추려 놓은 동영상을 보았다.


누렁이라는 강아지는 홀로 갯바위에 나가 앉아 있는 게 일이다. 동네 개들이 몰려들어 위협을 해도, 갯바위를 떠나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먹을 것을 해다 주어도 갯바위를 떠나지 못한다.


본래 동네를 돌아다니던 개라고 했다.

근래에 동네를 떠난 노부부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할 때, 누렁이 끼니를 챙겨주며 살갑게 대해줬다고 한다. 노부부는 병환으로 섬을 떠났고, 누렁이는 갯바위를 떠나지 못했다.


누렁이가 동네 개들과 혈투를 벌이고도 바닷가를 멤돌자 구출작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마취총을 쏘았다. 다들 누렁이가 얌전히 누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취총을 맞은 누렁이는 온 힘을 다해 비틀거리며 달렸다.


그 모습을 보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탄식했다.


"우야노, 저기가 누렁이 집이라."


노부부가 살던 때, 갯바위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가면, 그 집 앞에서 살았다는 누렁이.

누렁이는 비틀 비틀, 제 몸 하나 못 가누면서도, 기어이 그 곳으로 내달리더니, 집 앞에 이르러서야 털썩 쓰러지고야 말았다.


자막이 흘렀다.


'꿈에서도 그리웠던 집으로 왔어요.'


새볔녁 핸드폰을 부여잡고, 나는 대성통곡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섬을 떠나야 했다.

섬에서는 치료가 되지 않아 병원 찾아 섬을 떠났다고 했다.

누렁이에게 작별 인사 같은 것은 할 새가 없었을 것이다.


누렁이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잘 해줘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노 부부가 보이지 않아도, 마음에서 그들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누렁이는 다른 이에게 마음 붙일 수 없었다.

누렁이에게는 오직, 갯바위에서 즐거웠던 시간, 그 시간을 함께 해준 노부부가 전부였다.


정 붙이는 게 그렇다.

인생이 이렇게 모질어도, 정든 당신을 잊는 것은 어렵다.

정 들이지 말지, 라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입이 안 떨어진다.

그 맘 같은 거 내가 잘 안다.

당신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

나는 누렁이다.



차라리 누렁이가 부럽다.

누렁이는 노부부가 어디 가버렸는지 영문을 몰랐다.

그래서 끝까지 그리워할 수 있었다.

누렁이에게는 그 예쁜 시간들이 마음속에서나마 무한반복되었을 것이다. 누렁이가 잠이 들면 내일이 기다려졌을 것이다. 내일 갯바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실 것 같았을 것이다.



나는 아니다.

나는 당신과 모질게 헤어졌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안다.

그 예쁜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은 피눈물나는 일이다.

나는 꿈을 꿀까봐 무섭다.

꿈에서라도 볼까봐 무섭다.

당신이 행복할까봐 두렵다.

나를 잊을까 두렵다.

나는 누렁이만도 못하다.



내가 마취총에 맞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라도 보고 싶은 것이 있을까.

내 삶을 지탱해주는 그 무엇이 남았나.

나의 생을 살아있게 만드는 그 무엇이 남았나.

마취총에 맞으니, 다행인가.

내 손으로 끝내지 못한, 이 지루한 시간을 끝내주어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야할까.

내게는, 마취가 퍼져나가는 사지를 비틀어가며,

앞으로 나아가 꼭 보고야 말,

내 집이 있나.

내 갈 곳이 있나.

나는 무엇으로 살았나.




나를 잊지 말아요.

내가 당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그 순간을 잊지 말아요.

혹시라도 내가 마취총에 맞거든,

내가 혹시라도 당신을 여즉 기억하거든,

내 마지막에 꼭 한 번 당신이 보고 싶을 때,

한 번이라도 나를 안아주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하루하루 별 볼일 없이 살다가 누렁이 덕에 떠오른

내 마지막 순간에 관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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