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소

다른 목적같은 거 없다고 말해주오

by Nima

몇 해전의 일이다.

10시가 다되기까지 주무시던 나는 배가 고파 나가려 했는데,

옷 좀 주워 입고나니 연휴에도 불철주야 운영하는 그 스타벅스도 문을 닫으려했다.


그래서 급하게나마 눈에 보이는 곰탕집에 앉아, 뭐 잘한 일은 없지만 큰 상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이어폰을 뺐다. 잠시 음악 좀 검색하려고.


그랬단 말이다.

그러니까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아저씨, 아줌마의 속사정을 들으려고 한 것아니었단말이다.



내 옆의 중년 남자는 곰탕 앞에 소주 병을 두 개 놓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라즈베리 패딩을 입은 아줌마는 이 날씨에 냉면을 앞에 두고 있었다. 둘은 간헐적으로 대화했는데, 반복적으로 200만원을 언급했다. 나는 부동산 사람들인 줄 알았다. 아저씨가 고개를 흔들며 말하기 전까지.


"우리 와이프도 집에 일이 생겼어. 이번 달은 못 줘."


라즈베리 아줌마가 말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노력해볼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최대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잘 들리길 바라며 깍두기도 못 씹고 대답을 기다렸다. 아저씨는 한참을 고개 숙이다 어렵게 말을 이었다.


"200만 더 있으면 되?"


아줌마가 말했다.


"200은 있어야지. 그거 없어면 이렇게 오지마."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아줌마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너무 보고 싶었다. 말로만 듣던 스폰서 받는 분이 아닌가.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미동도 없도록 슬쩍 곁눈질해 훔쳐보았다. 실망스럽게도 아줌마는 평범한, 삶에 찌든, 중년 아줌마였다.


보아하니 둘은, 곰탕집 맞은 편에 즐비한,

학생들 드나드는 모텔을 함께 드나들 수도 있는

그러저러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개 이름도 아닌 돈 200을 주구장창 읊어대는

라즈베리 아줌마는

사치하겠다고 200만원을 달라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돈 200이 급해보였다.


안다. 그 마음.

돈이란게 달라는 데는 많고

나오는 구멍은 적고.

살아야 되긴 하는데

죽으라는 것 같고

돈 급한 마음 나도 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곰탕이나 집중해서 먹으려했다.


그 때였다.

아저씨가 울먹였다.


"근데, 나도 너무 힘들다...."


아저씨는 고개를 숙인채 울먹였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마음에 이어폰을 꽂았다.



사랑을 구걸하는 데 일가견 있는 나는

아저씨 마음이 따가워서 참을 수 없었다.


분명히

돈 필요한 라즈베리 아줌마도 이해했다.

노는데 쓴다고 용돈 뜯어내는 거 아닌거

안다.


하지만 나는 힘들다고 울먹이는 대추빛 아저씨때문에,

아저씨는 내 마음을 흔들어놓아,

곰탕은 반도 못 먹었다.


아저씨는 라즈베리 아줌마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좀 힘이 날까.


돈 200 없어도 당신만 있으면 좋아?


사람 마음 간사해서 또 다 주면 안 고맙지.


그럼, 돈 200 없어도 계속 만나줌세?


사람 마음 갈대 같아 언제 바뀔지 모르지.


이러저러하고

여차저차해서

아저씨가 아줌마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땅 파도 안 나오는 돈 200 만들 생각에

떨군 고개가 들리기까지

소주 한 병은 더 필요하겠지.


슬픈데 이해되고

이해되서 더 슬픈,


사랑을 구걸하는 나쁜 유부남 아저씨를 위해

나는 나혼자 조용히 이어폰을 꽂았다.


BGM은 She belongs to me.


아저씨, 그래도 아저씨가 좋아서

곰탕도 먹으러 와준 걸거야.


Life is short, pain stays long.


어느 에세이 가운데 "훌륭한 부부는 위험하다"라는 제목이 생각났다.


우스꽝스러운 부부는 안정적이라고 했다. 글쓴이의 생각에 우스꽝스럽다는 의미는 약점이 드러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아저씨의 약점, 아저씨의 힘든 곳을 누구라도 잘 어루만져주길 바란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그 누구든, 부인이든 애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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