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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훈 May 05. 2024

20살 유럽여행이 남긴 기억

떠나는 것보다 강하게 남아있는 돌아오는 날의 풍경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하면 많이 다녔고, 적게 다녔다고 하면 적게 다녔다. 

잘 다니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꽤 다닌 셈이고, 정말 많이 다닌 사람들 앞에선 정말 별 거 아닌 정도다. 사실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튼 그렇다.


그 중에서 해외 여행의 경우 그 어감의 느낌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국내 여행이 부담 없는 게 장점이라면, 해외 여행만큼의 설렘이 없는 게 단점일 테니까. 해외 여행은 그 말 자체로 일련의 설렘을 내포하고 있다. 내게도 해외 여행하면 떠오르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는데, 그건 인천공항이다.



난생 첫 가족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던 2003년, 초등학교 4학년의 눈에도 인천공항은 별천지였다. 요새도 그 디자인이 촌스럽지 않은 인천공항인데, 그 때는 얼마나 더 새로웠을까. 햇살이 비치는 유리벽, 알파벳과 숫자 위주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면세점의 다양한 불빛들. 창 밖으로 바라보는 비행기들과 무빙워크. 공항에 있는 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 이후 여행마다, 나는 인천 공항에 대한 추억을 쌓게 됐다. 친 형과 가게 되었던 인도네시아행 비행기를 기다렸던 때도, 친구와 기다리던 때도, 유럽에 있는 애인을 보러 혼자 비행기를 타던 때도, 프로그램으로 단체로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도. 혼자서든, 단 둘이든, 단체로든 다양한 형태로 인천공항의 기억들이 뚜렷하다. 가장 좋아할 때를 고르라면, 두 가지를 꼽겠다.



먼저, 이제 막 밝아져오는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다. 어슴푸레한 바깥의 색깔, 평소보다 찬 새벽 공기, 조용하고 어두운 바깥과 대비되는 밝고 활기찬 공항 내부. 잠을 많이 자지 못해서, 자다가 일어나서 살짝 졸리거나 몽롱하지만 빠르게 사라지곤 하는 찰나의 순간. 체크인을 하거나 위탁 수하물을 맡길 알파벳을 찾아서 움직이는 그 몇 분의 시간. 집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던 때와 공항 버스를 기다리던 때보다 훨씬 강하게 '난 이제 해외로 떠난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두 번째는 모든 수속과 절차를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 비행기를 바라보는 때다. 공항은 늘 일찍 가는 게 습관이 됐고, 이래저래 시간이 남곤 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하고, E심 처리를 하는 등 다양한 절차를 마치고 쌓인 피로함과 긴장감을 내려두고, 오로지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걸 기다리는 순간. 



그간 수십 번 넘게 비행기를 탔지만 여전히 비행기 타는 일 자체는 즐거워하지 않는 편인데,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의 순간만큼은 즐겁다. 떠나기 전 가족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함께 비행기를 탈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떠날 국가의 정보를 담은 책을 읽기도 하고, 휴대폰을 하기도 하는 그 별 거 아닌 시간은 내가 '해외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려지는 모습이다.




그동안은 이 '떠나는 순간'에 주로 주목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이고, 도파민이 치솟는 순간. 설렘으로 가득하고, 평소보다 훨씬 무뎌진 소비감각으로 공항에서 이런 것 저런 것을 구매하고(심지어 출국하면서 면세점 구매한 경험은 딱 한 번이었지만), 녹색 여권을 들고 다니면서 곳곳을 누비는 기억. 그만큼 강렬했기에 주로 여행을 생각하면 그 인천공항에서의 모습만을 그렸다.



최근 도쿄를 다녀오면서, 문득 '돌아오던 날'들이 생각났다. 사실 돌아오는 때들은 기억에 남을만한 일들이 많지 않다. 여행과 귀국 비행기의 여독은 쌓여 있고, 무거운 짐들은 벅차며, 하루 빨리 집에 돌아가 정리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잠을 청하거나, 자지는 않더라도 멍을 때리거나 여행 기간 잘 보지 못한 휴대폰 SNS에나 집중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와 함께 돌아오더라도, 보통은 대화보다는 휴식하느라 바쁘다.


대단한 사건도, 별 일도 일어나지 않고 생각도 많지 않은 시기지만, 2012년 20살 당시 친구와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 너무나 생생하고 또 상세하게 기억났다. 공항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 내린 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집까지 약 20분 가량을 걸었다. 캐리어도 없이 배낭만 메고 갔던 가난한 여행이었고, 가난한 주제에 가족 여행이 아닌 첫 해외 여행이었던 지라 바리바리 선물을 사서 양 손에 쇼핑 백으로 가득했다. 한 발 한 발 걷기에도 거추장스럽고 무거운데, 택시 탈 돈도 없었을 뿐더러 당시엔 30분 이하 거리를 택시 탄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때라 무식하게도 걸어갔다. 


먼저 도착한 비행기로 친구를 기다리던 순간


7월 3일에 한국을 떠난 뒤 3주만에 돌아왔기에 한국은 여름의 절정을 맞이한 상태였다. 그 무더운 날, 각종 짐으로 가득찬 채로 집까지 걸었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이미 충분히 말랐던 시기였는데, 여행하는 3주간 6kg가 빠졌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몇 번을 멈춰서 땀을 닦아내고 쉬다가 다시 출발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영겁같은 시간이 지나 집에 도착했고, 평일의 낮은 동네나 집이나 조용했다. 한참 동안 짐을 풀고, 씻고, 낮잠을 잤다. 그렇게 20살, 3주 간의 유럽 여행이 끝을 맺었다.


인생에서 그 유럽여행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건, 그 여행이 수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뒤의 첫 여행, 가족여행이 아닌 첫 여행, 친구와 함께한 첫 여행이라는 일반적인 수식어도 붙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의미는 무엇보다 '어른이 된 전환점' 같은 때였다는 점이다. 20살 7월의 그 여행 전까지 난 대학은 다녔지만 고등학교 4학년과 다를 바 없었다. 전혀 어른스러움이 없었다는 얘기다(물론 지금도 애스럽기는 하지만). 다만 그 여행을 기점으로, 조금 다른 사람이 됐다. 


여행을 다녀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진을 인쇄하는 일과 동시에 알바를 구하는 일이었다. 일을 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대수롭지 않은 편의점 알바였다고 하지만, 그 이후 돈을 벌면서 나는 조금 더 스스로의 삶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됐다. 가난한 여행을 해서가 아니라(그 때는 돈 없이 여행하는 게 조금도 위축되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1유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일조차도 너무나 즐거웠다), 내 삶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먹었던 첫 여행 점심. 테스코에서 샀던 것 같다.


반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도 여행 이후부터다. 털이 많은 나는 다리 털이 부끄러워 반바지를 절대로 입지 않았더랬다. 여행을 앞두고는 하얀색 찢어진 반 바지를 샀다. 여행 중 가장 많이 입었다. 그 누구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동양인 어린 남자애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 때 배웠다. '세상의 시선을 너무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내가 포기하는 만큼 나의 세계는 좁아질 뿐이었다. 내가 경험하는 만큼 내 세상은 넓어지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보다 주체적으로 나서는 행동의 기초가 됐다.


당시 유럽에서 나는 저렴한 장신구들을 많이 샀다. 머플러나 스카프를 사서 걸치기도 했고, 뜬금없이 빨간 넥타이를 매기도 했다. 지금 보면 웃음이 나는 모습들이다. 패션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살이 얼마나 예쁜 걸 샀을 것이며, 얼마나 예쁘게 매고 다녔을까.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두르고 다니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막 스마트폰이 도입되었을 시기였다) 어렴풋이 따라한 정도에 그칠 뿐이다.


그 때 팔찌를 차는 취미가 생겼다


다만 중요한 건 '해보지 않은 것들을 했다'란 것이겠다. 그 3주간, 나는 해보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한 상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되든 안되든 말을 건네야 했고, 적응하기 힘든 낯선 세상 속에서 우울해지고 힘들어하지 않기 위해/함께 하는 친구와 다투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을 통제하기도 했다. 도미토리 룸에서 하루 짜리 친구들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과는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길을 잃기도 했고 새로 찾아나서기도 했다. 소매치기를 만나기도 했고, 말이 통하지 않는 할머니에게 수제 파인애플 잼을 사기도 했다. 뮤지컬을 보겠다고 취소표를 사려고 아침 일찍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신경써야할 건 나밖에 없었다. 오로지 나였다. 내가 아는 사람,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다른 모든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떻게 다니고 싶은지. 비가 맞고 싶으면 비를 맞았고 자전거를 타고 싶으면 자전거를 탔고 2유로 짜리 스카프로 기분을 내고 싶으면 스카프를 샀다. 바로 그 날 바람에 날라가서 잃어버리는 하루짜리 스카프일지라도 행복했다. 그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찍는 것도,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는 일도, 맥도날드에서 가장 싼 기본 햄버거 주문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도, 야간 기차에서 함께 같은 칸을 나눠쓰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도, 거기에 모든 팔찌를 두고 내렸던 일도. 나에게서 시작해 나로 끝나는 일들이었다. 영어 공부를 해야지, 조금 더 멋진 옷을 입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를 꾸며봐야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을 했고 기대와 달랐던 20살의 대학생활에 대한 방황을 끝내고 무엇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지 생각했다. 앞으로 펼쳐진 나의 날들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 모든 걸 안고, 3주간 변한듯 변하지 않은 익숙한 길을 수많은 짐과 함께 걸었던 그 20분은 그 변화들을 내재화하는 시간이었겠다. 여행이 내게 준 무거운 짐들, 숙제들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것. 내 현실을 바꿔보는 것.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떠나는 모습은 생각나지 않지만 돌아오는 그 길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 여행은 충격적이지만 삶은 평온하다. 끝나지 않는 여행이란 건 없고 우리는 삶을 이어간다. 그 여행은 무엇을 바꾸었고 무엇을 남겼나. 난생 처음 사진을 인화해서 방에 걸어두었던 작업은, 나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순간들을 잊지 말자


단순히 여행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그 사진들을 보면 변화했던 나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 20살과 함께 시작했던 연애의 실패도, 대학생활의 어려움과 실망도,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들도 접어두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주었던 여행의 순간과 그 가르침을 계속 가져갈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여행을 기점으로 난 보다 다른 사람이 됐다. 여행의 출발과 복귀가 달랐기에, 나는 그 돌아오는 길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자기는 하루에 1유로 식사로 배를 채우면서, 선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이들까지 바리바리 선물을 챙겨 고생하며 돌아오던 그 길. '여기가 내 땅이다'라는 감정을 걸음 하나하나에 담았던 그 길.




2012년의 일이다. 나는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었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한참을 서서 바라보던 그림의 이름을 모른다. 그런 내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가로 길이 약 2m, 세로 길이 약 1m의 거대한 그림, 햇살이 바스라지는 녹색이 있는 숲을 담은 그림. 그리고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에 대한 풍경이다. 그 기억은 나뭇잎을 비추며 옅어진 그림의 빛처럼, 뿌연 안개와도 같이 아른거린다.


(...)
내가 2012년 어느 그림 앞에 몸을 멈추고 이끌린 것은 그 그림이 내 응어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리라. 내가 2012년의 여름, 영국 남쪽의 브라이튼에서 런던으로 올라가는 기차에서 문득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 응어리가 뜬금없이 분출되었기 때문이리라.

- 2016년 작성했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 책 독후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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