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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Sep 09. 2017

내 아이를 위한 동화(이야기) 만들기

아이는 이야기를 먹고 자란다.

[길바닥에서 만난 인성의 바닥]

아이들도 천천히 설명하면 말을 들을 때가 많다.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코드에 맞는 설득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어른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아이들에게는 ‘먹히는’ 게 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스스로 마음을 먹고 부모가 하자고 하는 것을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바쁠 때는 그런 것을 살필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강행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다고 일을 손쉽게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완강하게 버티는 아이들을 두고 대치하다 보면 처음부터 그냥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좋았겠다 싶은데 이미 때는 늦어버린 후다. 울려버리면 마음이 안 좋다. 사실 조급한 건 부모 사정이다. 자연출산 때 아기는 아기의 속도로 태어나는 게 가장 건강한 거라 배웠다. 부모라면 아이의 눈높이만큼 아이의 속도도 맞춰줘야 한다.

     

 그런데 더 힘들 때가 있다. 온 마음을 다했는데도 진척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아니 꽤 많다. 서천석 선생님의 책 중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를 보면 ‘부모는 아이를 당장 변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변하게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아이들과 기 싸움을 하다 만난 이 말은 내게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였다. 처음에는 얘기해도 안 들을 수도 있다. 치카치카를 하러 가자고 해도 안 올 수 있다. 길을 걸을 때는 아빠 손을 꼭 잡아야 한다고 말해도 뛰어 도망갈 수 있다. 밥은 얌전히 앉아서 열심히 먹어야 한다고 설명해도 뛰어다니며 음식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꼭 아이들이 내 말을 들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을 들여도 공염불일 때가 많았다.

     

‘아빠, 치카치카 안 하면 충치 벌레가 이빨을 막~ 공격해서 아야아야 해요?’

‘응 이빨이 아파서 엉엉 울어야 해.... 그러니까 얼른 하자..’

     

그렇게 말하곤 정작 양치질할 생각은 없다.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가 그러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아이들은 그런 고통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유추해 볼 유사 경험도 없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아이를 겁줘봤자 느낌이 안 올 거다.

     

실랑이를 시작하면 결과는 부모의 참패였다. 지난번에는 길 가다 아이들이 떼를 쓰며 길바닥에 주저앉자 ‘아빠 혼자 갈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아이들을 내팽개쳐 버렸다. 가끔 길에서 보는 딱한 상황의 당사자가 되자 ‘아 내가 이 지경까지 갔구나..’ 싶으니 우울감이 온종일 갔다. 부모는 결국 아이들을 변하게 한다는데 과연 이렇게 있으면 그리되는 것일까?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과 제대로 훈육을 하는 것 사이에서 항상 고민이 깊어진다. 그냥 지금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너무 강도 높은 훈육으로 아이가 반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왼쪽으로 기울어도 떨어지고 오른쪽으로 가도 떨어지는 외줄 타기를 하는 심정이다.

     

[결국 동심으로]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얼마 전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열쇠는 뜻밖에도 동심(童心)으로 돌아가는 데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아이를 그럭저럭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아이처럼 생각해야겠구나 싶었다. 일전에 뽀로로파크에 놀러 갔다. 뽀통령이야 두말할 것 없이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다. 첫째 아들 녀석이 그렇게 신난 적이 있었나 싶다. 서 있는 큰 뽀로로 인형을 한참을 안고 있는 게 귀여웠다. 뽀로로파크에선 간격을 두고 공연을 해서 우리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노래가 나오며 무대 뒤에서 뽀로로, 에디(인형을 쓴 배우들) 등이 뛰어나와 춤을 췄다. 아이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눈빛을 보였다. 만화 속에서만 보던 친구를 만나니 감개무량한 걸까? 한동안 입을 벌리고 뽀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아들을 데리고 나와 사진을 함께 찍었다. 그런데 이 녀석 엄청 수줍어한다. 몸도 표정도 얼어붙은 것 같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 녀석은 인형이 진짜 뽀로로, 에디라 생각하는구나...’

     

그냥 닮은 캐릭터를 만나 구경하는 게 아니다. 오늘 아들은 만나고 싶은 대상을 정말 만난 거다. 그게 바로 동심이었다. 나는 나름 철없는 아이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감을 잃었었구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후크>(1992)라는 영화가 있다. 피터 팬(로빈 윌리엄스)은 네버랜드에서 나와 과거를 완전히 잊고 40세의 변호사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들과 딸을 후크 선장(더스틴 호프만)이 납치하자 그는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옛날의 피터팬이 아니다. 날지도 못하는 그는 동심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동심을 찾는 건 간단했다. 바로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전에 학부 시절 중세사를 들을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여러분, 중세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요정, 마법사, 숲의 괴물 등이 정말로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그냥 그때도 그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라 믿었을까요? 그때는 정말 숲에 요정이 살았습니다. 마법사가 마술을 부리면 사람이 동물로 변하기도 했죠. 숲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고 종종 그런 것을 눈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상상을 현실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가끔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아이들이 로보카 폴리나 타요를 만났다고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내가 소방차를 보고 로이한테 인사할까 하면 아이들은 신나서 손을 흔든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길 위를 달리는 소방차가 로봇으로 변신할 거라 믿고 있다. 산타크루스 할아버지가 어떻게 밤새 아이들에게 다 선물을 전해줄지, 집 어디로 들어올지는 궁금해하면서 정작 산타의 존재는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를 이해하려면 네버랜드로 떠나야 한다.

     

[이야기의 힘]

어느 날 밥 먹이는 것으로 실랑이를 하다 또 화가 났다. 그래서 얼마 전에 동물원에 다녀온 게 생각나 호랑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지를 귀에 대고 새끼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곤 진짜 전화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호랑이야 안녕~ 잘 지냈어? 응 나 아빠야... 점심 먹었어? 다 먹었다고? 그런데 말이야... 첫째 녀석이 밥을 안 먹어... 네가 또 놀러 오려면 밥 잘 먹으라고 했는데... 안 먹는데 어쩌지? 아 정말? 밥 안 먹으면 이번 주말에 오지 말라고? (낙담한 표정) 그래 알겠어... 혹시 다 먹게 되면 다시 전화할게..”

     

나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는 아들을 보고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미동도 없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내가 낙담한 표정을 짓자 아이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빠 호랑이가 나 주말에 오지 말래?”

“응 오지 말래...”

“그럼 밥을 다 먹으면 동물원에 갈 수 있대요?”

“맞아 다 먹으면 놀러 올 수 있다고 그랬어.”

     

그러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 조용히 앉아 밥을 다 먹기 시작했다. 둘째 딸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온킹>을 좋아하는 딸은 무파사를 ‘빨간 사자’라고 불렀다. ‘빨간 사자가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하니 오빠 옆에서 밥을 계속 떠먹는다. 지금까지 했던 무수한 잔소리들이 무색했다. 아이들과 징그럽게 신경전을 펼친 부모들이라면 이런 게 기적적인 순간이라는데 공감할 거다. 스스로 입을 벌리고 밥을 넣고 있는 게 신기하다. 그것도 진득하게 앉아서.


아이들은 밥을 다 먹기 전에 안달이 났다. 그래서 수시로 호랑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밥을 잘 먹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다 먹으면 전화를 또 걸어 다 먹었다고 말해달라고 했다. 호랑이나 사자 말고 돌고래와 물개, 기린, 코끼리는 우리를 초대해줄지 궁금해했다. 전화를 여러 통 해야 했다. 고단한 게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랑이보다 좋은 건 어쨌든 아이들이 밥을 먹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은 동물원에 간 기억이 오래 남지 않는다. 금방 잊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에 소개한 1분 동영상 찍기를 권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그때의 감흥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대화에도 도움이 된다.


[한 끼를 위해 떠나는 대장정]

아들은 요즘 한창 힘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더 높이서 뛰어내리고 싶고 더 빨리 달리고 싶다. 그래서 밥을 잘 먹어야지 힘을 낼 수 있다고 얘기를 자주 해주었다. 아빠처럼 커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이가 실감하는 건 어렵다. 밥 한 끼를 먹었다고 아빠처럼 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나 만들었다. 이번에는 게임 포맷을 차용했다.

     

어느 날 아빠와 놀고 있던 아들 앞에 괴물 공룡이 나타났다. 그리고 공룡은 아빠를 납치했다. 엄마가 돌아와 아들에게 아빠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공룡이 데려갔다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어서 아빠를 구해오라고 했다. 그러려면 힘이 세져야 하고 밥을 잘 먹어야 한다. 아들은 공룡이 사는 산으로 향했다. 산 아래는 세 개의 관문이 있었는데 날개 달린 사자, 다리가 여덟 개인 호랑이, 집만큼 큰 고릴라가 버티고 있다. 그리고 맨 위에는 괴물 공룡이 아빠를 붙잡아 두고 있다. 아들은 아빠를 구해낼 수 있을까?

     

밥이 오면 게임은 시작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밥을 먹어야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다. 아빠가 잡혀가며 눈물을 흘리는 척하자 히어로가 되고 싶은 남자아이의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가 밥을 많이 먹어서 힘이 세져야 한다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아들에게 밥을 한 입 먹으라고 하면 아들은 입을 크게 벌려 한입 먹는다. 관문마다 싸움이 벌어지고 싸움에서 밀리는 이유는 밥을 적게 먹어서다. 밥을 많이 먹으면 힘이 세지는 데 아빠 손을 주먹으로 때리는 게 해서 강도를 말해준다. 밥 먹기 전에는 때려도 정말 약하다고 말해주고 한 술 크게 먹으면 힘이 정말 세졌다고 얘기해준다.

     

아이는 한 입 한 입에 따라 자신의 파워가 달라진다는 것을 인식하자 필사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입에 넣어서 구역질하지 않도록 옆에서 진정시키는 게 일이다. 관문마다 물리쳐야 하는 악당이 다르고 악당마다 이기는 방법이 다르다. 날개 달린 사자를 이기려면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고, 다리 여덟 개 호랑이를 이기려면 국물을 마셔야 한다. 거대 고릴라를 이기기 위해서는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 모든 관문 통과 조건은 그날 반찬과 진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괴물 공룡을 만났을 때 아이의 얼굴은 비장하다. 마지막 승자가 되려면 식판 위 모든 밥과 반찬을 다 먹어야 한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자 괴물 공룡은 쓰러진다. 아빠는 풀려나와 아들을 다시 만난다. 식탁 옆에서 뛰어와 끌어안으며 ‘구해줘서 고맙다 아들아!’하면 자긍심이 얼굴에 가득하다. 식판은 완전히 비워진 다음이다.

     

이 방법의 최대 단점은 무척이나 지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지치지 않을 방법은 없다. 단지 결실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다를 뿐이다.

     

[아이의 마음 깊은 곳으로]

아이들이 잠을 잘 때도 이야기를 해준다. 주로 당면한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전에 첫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을 때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는 게 어떨지 몰라 어린이집 등원 시작 전에 근처에서 밥도 먹고 그랬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그래서 만화 <슈퍼윙스>를 패러디했다. 어느 날 아들에게 호기가 찾아왔다. 호기는 아들에게 어린이집 가방을 배달해주었다. 그리고 호기와 함께 어린이집에 등원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다. 호기는 본부에 연락했고 아리가 엄마, 아빠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울고 있는 아들을 꼭 안아주고 기분이 다시 좋아지자 돌아갔다. 아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부모가 달려온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거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것은 별로 없다. 아이의 필요에 맞는 것을 유치하더라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에게 관심만 있다면 철없고 아무 생각 없는 아빠가 이런 일을 하는데 제격이다. 여전히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무협지를 읽고 있다면 자질은 충분한 셈이다.

     

아이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려면 정작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진심으로 아이의 세상으로 돌아가려 애써야 한다는 것. 둘째 조악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을 하려면 조금 창피하기도 하다. 부끄러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면 망설여지고 그러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셋째 체력이 필요하다.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처럼 놀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비롯한 여러 일을 하다 보면 아이들을 위해 쓸 에너지가 얼마 없다. 귀가 후에 쓸 힘을 아껴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아빠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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