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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Oct 07. 2017

낯선 외계인이 전하는 일상의 의미

[아이보고 영화보고] 2. <컨택트-Arrival> 리뷰

[아이가 찾아왔다.]

첫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귀엽긴 한데 참 답답했다. 생각을 주고받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뭐냐는 식이다. 그저 아이가 웃고 우는 순간들이 모두 신기하고 즐겁다는데 아빠로선 그렇지 않다. 도대체 이 낯선 존재는 왜 여기 이렇게 덩그러니 와 있는지 모르겠다.     


“너 누구니?”

“너 어디서 왔니?”    


부모라면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한 번씩 한다. 내 삶을 압도하고 있는, 그리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엄청난 존재가 성큼 다가와 놓고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저 여기 ‘있을’ 뿐이니 그런 질문을 안 던질 수가 없다. 부모는 처음부터 거대한 소통의 장벽 사이에서 더 다가갈 수 없는 명백한 한계를 안고 아기를 대한다. 그래야만 한다. 갓난아기는 자신의 요구에 맞춰 여러 방식으로 운다고 하는데, 세 번이나 갓난아기를 겪은 아빠 입장에서도 그건 여전히 미스터리다. 나에게 아이의 울음소리는 모두 똑같다.    


아이가 커 가면 말을 하는 게 신기하다. 어떤 명확한 학습 과정이 없어 보이는 경우에도 적절한 어휘를 습득하여 구사하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 메커니즘이 궁금하기도 하면서 이게 내 능력으로 해내고 있는 일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문이 트이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갑자기 말을 쏟아내는데 그 순간 서로를 가두는 장벽이 깨지고 두 개의 세계가 극적으로 만나는 것 같다.    


“아 그런 뜻이었니?”

“네가 그래서 여기다 로션을 다 쏟았구나.....”    


하지만 여전히 아이의 말은 서툴고 나의 인내는 부족하니 말의 간극은 늘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때를 매 순간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이가 저 멀리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이야기처럼. 그런데 참 더디다. 하루빨리 아이가 내 앞에 당도했으면 좋겠다. 5개월 된 막내를 보며 언제쯤이면 우리의 관계가 완성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낯설지만 낯익은]

영화 <컨택트(원제:Arrival)>에 등장하는 외계인과의 조우는 다른 SF 영화와의 기본 설정과 달라 낯설 게 느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당히 익숙하게도 느껴진다. 대부분의 영화는 <인디펜던스데이>처럼 갑작스러운 침공과 거침없는 지구 중심지 파괴가 일어나는 단순한 상황을 전제하기 때문에 둘 간의 대화는 별 의미가 없다. 반면 <컨택트>는 이런 적대적 상황을 기본에 두지 않지 않기 때문에 SF 영화로서 낯설다. 이 영화는 다른 영화에선 외면하거나 무시했지만 타자와의 대면에서 당연히 겪을 일, 즉 탐색과 관찰, 태도 확인 과정에 집중한다. 무엇이든 낯설다고 즉각 공격에 들어가는 건 아니다. 새로운 집단을 만났을 때 인간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한편으로 낯익다. 그래서 <컨택트>의 기시감은 영화로선 낯설지만 일상의 관점에선 익숙하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과 매개함으로써 꽤 익숙한 고민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외계인이 찾아왔다.]

어느 날 지구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12개 원형체 우주선을 탄 그들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어떠한 공격 없이 그저 머무르고만 있다. 보통 의도는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법인데 미동 없이 그저 존재하기만 하니 지구인들은 그들이 누구이며, 지구에 나타난 이유를 알기가 어렵다.    

원형체 우주선의 바닥은 18시간마다 열리는데 지구인들은 그곳으로 들어가 외계인을 만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알아낸 것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 없자 미국 국방부 웨버 대령은 언어학자 루이스 뱅스(에이미 아담스) 박사와 물리학자 이안 도널리(제레미 레너)박사를 불러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할 것을 주문한다.     

루이스 박사는 신속하게 외계인을 이해하는 시도보다는 차근차근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섣부른 판단을 하면 오역하기 쉬운 게 말이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자신들이 ‘사람’(human)이며 자신은 ‘루이스’라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걷다’, ‘먹다’ 등의 인간 언어에 대응하는 외계인의 언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루이스와 이안은 그 외계인을 헵타포드(일곱 개의 다리)라 명명한다. 30여 차례의 미팅을 거치면서 루이스와 이안은 외계인의 언어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비선형적 특징을 지닌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 문자는 원형으로, 시작과 끝이 동시에 쓰인다. 즉 자신의 많은 생각을 단번에 또 한 번에 표현한다는 뜻이다.     

[기억이 찾아왔다.]

한편 그녀는 외계어를 배우면서 여자아이의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죽은 딸을 기억하는 게 괴로워서일까, 아니면 외계인과 대화를 이어가는 일에 지쳐서일까? 루이스의 표정이 어둡다. 첫 장면에서 루이스 박사는 딸을 낳아 키우다 하늘로 먼저 보낸 일을 떠올리며 그 시절들이 다른 시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관객은 이 씬을 보며 외계인을 이해하기 위해 루이스가 딸과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전반부에선 외계인에 압도되어 박사와 딸과의 관계는 영화의 부수적인 요소로만 느껴지는데(그저 외계인과 차분하게 대화하려는 감독의 입장을 관객이 수용하도록 돕는 정도로만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환영은 곧이어 주변에서 중심으로 전환한다.    

[갈림길]

중국이 외계인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미국 팀도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직 준비가 덜 되었을지라도 진짜 궁금했던 점, 바로 ‘외계인이 어디서 왔으며,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묻기로 한다. 이에 외계인이 ‘무기를 제공하러 왔다.(offer/use weapons)’는 메시지로 반응하자 다들 혼란에 빠진다. 지구를 공습하려고 왔다는 말인지 지구인에게 자신들의 무기를 주려고 왔다는 건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차이에 반응은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외계인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이자 12개 외계 비행체와 대화를 시도하던 국가들은 각각 통신망을 끄고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미국의 일부 군인들도 동조하여 외계 비행체 안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터뜨리기도 한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루이스 박사는 외계인에게 무기를 제공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외계인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루이스 박사에게 쏟아낸다. 헵타포드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루이스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루이스의 연구를 관찰하던 이안 박사는 외계인이 쏟아낸 정보가 전체 정보의 1/12로서 나머지 11개 지역에 있는 비행체로부터 정보를 모아야 저들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안 박사는 미국이 가진 것을 주어야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공격을 멈추고 협력할 거라 말한다. 즉 모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타협), 서로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것(윈-윈)도 아니며, 다른 누군가가 많이 얻을수록 내가 빼앗기는 것(제로섬 게임)도 아닌, 모두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라 주장한다. 이안 박사는 이것을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순간 주변에서 맴돌던 루이스와 딸의 기억이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환영에서 딸 한나는 경쟁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무엇인가를 얻게 되는 게 전문 용어로 뭐냐고 묻는데 루이스 박사는 대답을 못 한다. 그런데 이안 박사의 말을 듣자 해줄 말이 떠오른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딸은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며 만족해한다. 미래의 사건이 과거에 영향을 준 것 같아 관객들은 의아해진다. 또 루이스 박사는 처음에는 자신은 잘 모르겠다며 과학자인 아빠에게 물어보라 하는데 정답의 힌트는 과학자인 이안 박사에게 듣고 대답해준다. 루이스 박사의 전남편도 과학자였던 걸까? 아니라면 혹시 그 과학자가 이안 박사일까? 어떻게 미래에 만난 남자가 과거의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의문점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미래를 기억하다.]

외계인과의 접촉을 포기하고 기지를 철수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루이스 박사는 홀로 비행체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지구인들은 외계인이 공격할 거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말을 다른 11개 비행체에 전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헵타포드는 이미 루이스 박사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해결하기 위해선 그것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3천 년 후에 지구인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라며 그래서 지구인을 도우러 지금 왔다고 말한다. 어떻게 미래의 일을 알 수 있을까? 그 순간 루이스 박사는 다시 딸의 기억이 다시 찾아온다. 환영 속에서 딸은 외계인과 대화 하는 아빠와 엄마를 그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에서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건가?   

 

마침내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다. 딸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것. 이안과 마찬가지로 루이스 역시 미혼이며 미래에 둘은 결혼하여 딸을 낳으리라는 것.     

외계인과 접촉하면서 자꾸 떠올랐던 여자 아이의 이미지들은 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외계인을 이해하는 연구의 과정이 아니라 외계어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조금씩 보게 되는 과정이었다. 이안 박사가 말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는 말은 지금 들은 말을 미래에 딸에게 해준 셈이다.     


[반전]

루이스 박사는 이 환영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자신도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녀는 미래에 자신이 연구한 헵타파드 언어를 토대로 현재 자신에게 쏟아낸 외계인의 말들을 빠르게 이해한다. 그리고 미래에 중국 샹 장군에게 들은 아내의 유언을 현재의 샹 장군에게 전달해 그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이 극적인 결정으로 중국은 외계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12개 지역은 외계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을 다시 시작한다.     

[진짜 반전]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루이스 박사의 딸 이름이 한나(Hannah)로 앞뒤가 없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앞뒤가 이어져 있다. <컨택트>는 과거와 미래가 구별되지 않는 외계의 언어처럼 구성된 셈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어떻게 루이스처럼 이 이상한 언어 체계를 120분 안에 이해했는가가 더 신기했다. 미래가 과거와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 낯선 이야기를 어떻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인지 모른다.     


루이스 박사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후 이안 박사와 결별할 것을 알면서 결혼을 했고 병으로 죽을지 알면서 딸을 낳았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더 행복한 방향으로 바꿀 시도를 해야 할 텐데 루이스 박사는 그러지 않는다. 루이스 박사는 ‘인생이라는 여행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면서도 나는 모든 것을 껴안았어. 난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라고 딸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딸과의 행복한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딸이 죽는 순간에도 온몸으로 울며 슬퍼한다.    

루이스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사실 우리도 역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어떤 일이 앞으로 일어날 거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모두가 죽는다는 것. 우리는 우리가 죽을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낳는 자식들도 각자 어느 순간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 죽을 걸 알면서도 딸을 낳았다고 루이스를 비난하는 건 온당하지 못 하다. 우리 모두 루이스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관객 역시 영화를 보기 전부터 미래에 영향을 받는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것, 사람은 흙에서 태어난 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경이로움은 직선적인 시간관에 몰두해 있던 관객에게 순환론적인 시간관을 다시 환기시키는 과정에서 찾아온다.    


[낯설지만 낯익은]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컨택트>는 외계인과의 조우라는 낯선 상황을 통해 삶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것들을 새롭게 보게 한다. 영화는 관객이 외계인과 소통하려는 과정을 육아에 은유하면서 이를 쉽게 이해하게 도우면서 반전의 장치로도 활용한다. 그 반전은 시간을 재구성함으로써 딸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와있는 순간들을 소중하게 느끼고 경험하라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극장에 들어갈 때는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하고는, 극장을 나갈 때는 여행을 통해 얻은 감흥으로 현실 세계를 재해석하게 한다는 점에서 <컨택트>는 성공적인 은유 체계를 완성한 걸작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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