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밤, 배움으로 이어진 두 번째 트랙
7년 차가 됐을 때였다. 야간대학원으로 카이스트
정보경영 프로그램(이하 IMMS)에 지원한 것은.
당시에 같은 회사에 5년 이상 재직하면서, 스스로 정체기라는 답답함이 다가왔고 성장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꿈틀대서 찾아낸 대안이었다.
최근까지도 주변에서도 비슷한 연차에 대학원 선택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나에게 찾아와 자주 묻곤 했다. 먼저 대학원을 다녀본 입장에서 그 만한 시간과 돈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면서 추가로 평일 밤과 주말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어서 고민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대학원에서 얻은 것들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서 남겨보고자 한다.
1. 커리어 트랙
뭐 꼭 대학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졸업 전후에 커리어를 실무 리더에서 매니지먼트 트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부분은 대학원을 통해 이루고자 기대했던 것이기도 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Individual Contributor와 Manager 트랙 중 점차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는데, 이를 잘하기 위해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었다. 마침 대학원에서 데이터, 재무, 회계, 케이스 스터디 등 경영에 필요한 기초소양을 골고루 다루다 보니 시장이나 기업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경영스러운 렌즈’와 익숙해질 수 있었다. 특정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 지식을 원한다면 재고가 필요하겠으나, 나처럼 전반적인 기초체력을 쌓고 싶다면 꽤 효과적인 과정일 수 있겠다.
또, IMMS 수업은 개인과제보다는 조별 협업 과제들이 많다. 온갖 필드에서 온 다양한 연차와 직군의 동기들과 함께 협업하고 부딪혀보면서 보낸 시간들은 이후 회사에서 누굴 새로 만나도 예전보다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좀 더 편안하게 ‘경영 렌즈’로 여러 미팅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회사에 매니지먼트에 대한 니즈를 비추었을 때,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고려될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실제로 다른 동기들도 졸업 즈음에 데이터 관련 직군으로 직무를 변경하거나, 원하는 IT 계열의 회사로 이직한 케이스가 매우 많았다. 그런 면에서 야간대학원은 직장인으로서 당장 퇴사나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여러 회사와 직군을 간접적으로 탐색하고, 안전하게 기회를 도모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2. 논문(을 썼다는 자신감)
비록 논문 자체는 졸업하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았지만, 이걸 써내는 동안의 과정은 몸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쓸지 말지에 따라 논문석사와 교과석사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한번 써보자!” 하고 호기롭게 논문석사로 결정하고 말았다. 막상 시작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기다리는 교수님의 중간 피드백, 매 번 유의미한 결과물을 진척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나 이어지는 수많은 데이터 실험 실패, 조교님 바짓가랑이 붙들고 도움을 구했던 순간 등..
어떤 날은 회사에서 일 터지는데 논문까지 안 풀리는 게 겹치면 진짜 자괴감 들고 ‘난 여기까지인가..’ 싶은 날도 많았다. 다 큰 30대 40대 어른들이 어디서 눈물 보일 일이 많지 않을 텐데, 진짜 너무 안 풀리고 힘든 날은 서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위로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이 과정들을 거치고 인쇄된 빳빳한 논문을 손에 쥐게 되었다. 마침내 스프링 제본 된 가제본을 들고, 논문심사 발표를 마쳤을 때의 후련함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날 발표한 동기들과 자축하며 학교 근처에서 먹었던 팟타이와 맥주까지 생생하다)
지금은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나더라도, 뭐 대단히 업계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뭐든 어떻게든 ‘완료’시킬 수는 있겠다는 베짱은 장착한 것 같다.
3. 사람
그리고 역시나 최고의 동기들 58명이 남았다.
살면서 여러 인간관계를 쌓아가지만, 반드시 더 오래 알았다고 더 가깝고 말이 잘 통하는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환경이 변하면서 삶의 궤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학창 시절 친구보다 최근의 고민과 고생을 함께한 대학원 동기들이 훨씬 절친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IMMS 동기들은 그런 면에서 처음부터 비슷한 갈증을 가지고 만나서인지, 심적으로 웬만한 친척보다도 가깝게 느껴진다. 동기분들 중에 서로 잘 챙겨주는 분, 일을 거침없이 추진하는 분, 먼저 솔선수범하는 분들이 많고, 케미가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실력으로는 물론이고 인품적으로 존경할 분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우리 교수님과 연구실 식구들은 졸업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만나 맛난 걸 먹으며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며 응원해주고 있다. 각 회사나 업계의 흥미로운 동향을 공유하기도 하고,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소개하거나, 도움 줄 일이 있으면 주고받고, 일을 넘어 결혼이나 부동산 등 인생의 단계별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개그 코드도 잘 통해서 매번 만남이 기대되고 재미있다. 돌이켜보니 이 정도면 나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정이었다.
각자 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위에 있는 요소들을 기대한다면 야간대학원도 좋은 선택이 되어줄 듯하다. (다만 체력과 열린 마음을 충분히 준비하시도록!)
『다시, 학교로 간 직장인들』 릴레이 에세이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7 IMMS 6기
전 스타트업 C-Level
현 OTT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