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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밖에서 배우는 회사 안의 삶

나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법

by 꿀아빠

얼마 전 팀 후배가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일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자꾸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잘 알기에, 조언이라고 포장된 말조차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퇴근길, 후배와의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알아줄 것이라고, 인정받을 거라 믿던 때가.


나는 IT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솔직히 코딩이나 알고리즘 개발이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조직에서도 인정받았고,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된 IT 전략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변경하게 되었고,

일은 힘들었지만 재미는 있었다.

경쟁력까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배우면 배울수록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회사의 전략 변화 속에서 ‘사업개발’이라는 새로운 길에 강제로(?) 도전하게 되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거 같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배우고 버티면 결국 성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새로운 리더를 만나며 단번에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다른 시각으로 제안할 때마다, 그는 미묘한 웃음으로 내 말을 흘려보냈다. 회의실에서 그 웃음을 마주할 때마다, 내 생각이 틀린 건지, 아니면 그냥 ‘낯선’ 건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 시기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책임감 있게 일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준 안에서 나의 시도는 늘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해석되었다. 언젠가부터 회의 자리에서 말을 아끼게 되었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말 내가 틀린 걸까, 아니면 단지 다르게 본 걸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감정보다는 이해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다시 스스로 내 생각을 믿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나는 오랜만에 ‘회사 밖의 나’를 마주했다. 서로 다른 산업, 다른 조직, 다른 커리어를 가진 동기들과 이야기하며,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관점으로 움직이는지 새삼 깨달았다.


동기로 만났지만 누군가는 임원이었고 팀리더였다. 그들의 위치와 상황에서 어떻게 조직과 사람을 대하고 다루는지 엿볼 수 있었다. 또 누군가는 스타트업 창업가로 시장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고, 존중받았다. 서로 이해관계가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이상하리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회사 안에서는 늘 평가받는 존재였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람’으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평가가 나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진부한 말이 처음으로 온전히 와닿았던 순간이었다.

물론 회사원으로서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평가가 내 성장을 결정짓게 두지 않는 건 결국 내 몫이라는 것도 배웠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진심 어린 대화와 서로의 경험이 나를 다독였고, 동시에 자극이 되었다.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은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하루하루 열심히 해 나가고 있다. 여전히 불확실한 일들은 많지만, 적어도 이제는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기준과 속도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덕분인 것 같다.

후배에게 대학원 진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해치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곳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해주고 싶다.




『다시, 학교로 간 직장인들』 릴레이 에세이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7 IMMS 6기

前 IT 개발자

前 IT 전략 컨설턴트

現 사업개발 및 전략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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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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