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은 없으면 아쉽고, 지나치면 위험해
오늘 큰 아이 너는 한 달 정도 남은 어린이 특공무술 대회를 준비한다고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검도 도장을 가는 날이었어. 별도 연습을 하고 또래 아이들과 대련을 한 것 같은데
돌아오니 엄청 속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 도장에서 올려주는 네이버 밴드에서 영상을
확인해 보니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친구한테 많이 밀렸던 게 이유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어.
그 속상함이 꼭 "이기지 못함에서 온 아쉬움"이나 "이기고 싶었던 아쉬움"은 아니란 걸 느껴졌어. 그냥 뭔가 지고 나니 실망스럽고, 뭔가 의욕이 꺾인 느낌이랄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감정이고 누구나가 느낄 수있는 감정이니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이 모습을 보며 아빠는 문득 ‘승부욕’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어
형이(큰 아이) 가지고 있는 모습, 그리고 동생(작은 아이가)이 가지고 있는
둘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에 대해서.
사람마다 마음의 결이 달라. 누군가는 승부에서 지면 잠을 못 자고, 누군가는 져도 담담하지.
형은 어릴 때부터 크게 경쟁하지 않는 성격이었지. 같이 재미있게 즐겨보고자 샀던 닌텐도 게임이지만 아빠는 너희가 이왕 게임을 할 거라면 내심 완결을 보겠다는 욕심, 깨겠다는 욕심을 가지길 바랬으나 플레이하다 져도 "졌네" 하고 넘어가고, 반드시 깨보겠다는 의지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운동을 하다 넘어져도 그다지 감정의 파동이 크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오히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형이 가진 멋진 장점이야.
세상은 경쟁이 전부가 아니야. 누군가는 조용히 자기 길을 가며 꾸준히 성장해. 큰 감정의 진폭 없이도 단단하게 자신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단다.
반면, 동생은 달라 게임에서 지면 울컥하고, 형에게 지기라도 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지.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고, 그것을 감추지 못해. 그 마음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귀한 거야. 작은 아이는 연말에 체스대회를 나간다고 들떠 있지. 어제 퇴근하고 회식까지 하고 들어온 나를 상대로 체스를 계속 도전해 오는 모습을 보였지. 그 두 눈에는 어떻게든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 보였어.
(내리 아빠가 이겼지... 미안 일부러 져주지는 않아ㅎ)
간절히 이기고 싶은 마음은 어떤 목표에 다다르는 데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더 애쓰게 만들지. 그 마음이 제대로 쓰이면 큰 추진력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너희 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큰 감정 없이 아쉬운 결과를 마주하였을 때 담담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속상함의 강도를 낮게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도 멋진 부분이야 그리고 아빠에게는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게 "난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어" 같은
자기 보호의 포장으로 이어진다면 아쉬운 결과를
낳을 수 있어.
그리고 목표 설정 자체를 피하게 될 수도 있지.
도전하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건 조심해야 해. 질 걸 아니까 아예 시작도 안 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습관이 들 수도 있거든. 지금은 검도장에서 하는 대련, 혹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즐기는 운동이나 게임일 수 있겠지만 점점 너희들이 커 갈수록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현실은 수많은 경쟁의 연속이고 많은 부분에서 승부를 보게 되어 있어.
반면에 동생처럼 이기고 싶어 하는 강렬한 마음도 좋아. 오히려 아빠도 그래왔기 때문에 적극 권장하는 바이기도 해. 하지만 아빠의 경험상 이러한 승부욕은 잘못 관리하면 생각보다 많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그 마음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괴롭히게 돼. 지는 걸 감당하지 못하고,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지.
승부에서는 언제나 정정당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합법적이 여야해. 그리고 나의 노력의 결과물로서만 무언가를 달성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위너가 되는 거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만, 조절하지 못하면 그 마음이 오히려 나를 상하게
할 수도 있어.
아빠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단다. 달리기든, 시험이든, 무언가 시작하면 꼭 이기고 싶었어. 지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속상했지.
그 마음은 아빠를 많이 움직이게 만들었어. 더 준비하게 했고, 더 애쓰게 했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큰 힘이 되었지. 그런데 그 승부욕이 항상 좋기만 했던 건 아니야. 어떤 땐 그 마음이 나를 너무 몰아붙였고, 실패 앞에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어.
지금도 아빠는 승부욕이 있어. 회사에서도 뭔가 해내고 싶은 욕심, 남들이 안 된다고 한 일을 되게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 그런 마음이 아빠를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를
다그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마음속의 불씨는 꺼뜨리지 않되, 그 불에 내가 타버리진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연습을 하는 거야.
큰아들, 지는 건 괜찮아. 하지만 질 걸 알았다고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는 건 아쉬운 선택이야.
끝까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그 안에 배움이 있어. "해봤다"는 기억이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야.
작은아들, 이기고 싶은 그 마음은 정말 소중해. 다만, 그게 지나쳐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해.
그리고 두 사람 모두에게,
진짜 중요한 승부는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어제의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기억하자.
끝까지 해보는 것, 도망치지 않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너희가 그렇게 자라나길, 늘 응원하면서
동시에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아빠도 노력 중
※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기반으로 적어
내려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