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한 줄 알았던 선택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기까지
서른 : 처음의 계획은 분명했다.
시작은 더 오래전이었다. 큰 꿈이 있었고 그를 위해
더 넓은 세상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졸업하면 해외 대학원 가야지."
그게 내 계획이었다. 전문 기술이 있는 인력은 이민도 수월하다고 했다. 석사를 따고, 그 나라에서 취직하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명확한 목표였다. 그런데 왜, 나는 그 꿈을 접었을까?
현실과의 타협, 혹은 합리화:
미룬 건 꿈이었을까, 나였을까
그러나 그 길은 녹록하지만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작아져만 가는 내가 있었다.
"일단 돈부터 모으자."
"경력 쌓고 가면 오히려 좋다던데?"
꿈을 '미루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현명한 판단이라고 포장했다.
그렇게 첫 회사에 입사했다.
해외 파견 프로젝트가 많다는 인하우스 컨설팅 팀.
"여기서 경험 쌓고, 돈 모으고, 그 다음에 해외 대학원 가면 돼."
완벽한 계획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2014년, 체코: 해외에서의 삶은, 내가 알던 그 해외가 아니었다
입사 2년 차, 드디어 기회가 왔다.
"체코 프로젝트, 관심 있어?"
당연히 손을 들었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해외 생활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다시 돌아온 유럽은 설렜지만, 현실은 많이 달랐다. 교환학생 때의 해외 생활과 직장인으로서의 해외 파견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물론 그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았거나, 같이 간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이스한 사람들이었거나, 조금 더 대도시에 있었거나 했다면 달랐을까.
이건 내가 꿈꾸던 '해외 생활'이 아니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더 명징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나는 해외 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는.
프로젝트는 빡빡했고, 스트레스는 쌓여갔다.
결국 1년 3개월을 채우고 귀국했다.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만 남았다.
방향을 잃다: 돌아온 뒤, 아무 방향도 보이지 않았다
귀국 후, 나는 표류했다.
해외에서 살겠다는 꿈은 체코에서 산산조각 났고,
회사 일은 의미 없이 반복됐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겁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광고 하나를 봤다.
"직장인을 위한 IT 석사 과정"
순간 이상했다.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가 찾던 거였나?'
홀린 듯이 지원서를 작성했고, 물 흐르듯 합격 통보를 받았다. 새로운 길의 시작이었다.
매주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닫혀 있던 시야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수업은 그간 닫혀있던 시야들을 넓혀주었다.
수업 시간 교수님이 비즈니스 케이스를 던지면, 모두가 다른 관점에서 답을 내놓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보던 세상은 정말 좁았구나."
나는 나름 '나'라는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강의실에서 수십 개의 렌즈로 보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모두가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어필할 줄 알았으며, 실패나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행동이 필요할 땐 빠르게 결정하고 움직였다.
"나도 저런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그 생각이 점점 커졌다.
열린 문, 그리고 뜻밖의 선물: 생각하지 못했던 문들이 열렸다
대학원에서 배운 건 단순히 경영 이론이 아니었다.
넓은 시야, 다양한 관점,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나를 외국계로 이끌었고,
완전히 다른 커리어를 열어줬다.
또 하나의 수확은, 겸임교수직을 제안받아 배운 지식을 다시 전수하는 일에도 같이 종사할 수 있었다는 것.
학업이 나의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줬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성장의 동기를 줄 수 있다는 것.
이게 대학원이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헤맨 만큼 내 땅이고, 그 땅의 끝에는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맺음말: 헤맴은 끝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혹자들은 여전히 묻는다.
"대학원 나온다고 뭐가 달라져?"
"회사 돈으로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이직하면 되지 않아?"
체코에서 실패했을 때,
나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사는 꿈,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는 꿈.
하지만 이 길은 나에게 다른 길을 보여줬다.
유학을 가지 않아도, 해외 파견을 다시 가지 않아도,
서울 한복판에서 글로벌하게 일할 수 있는 대안도 있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신호라는 것.
혹시 지금 어딘가에서 실패했다고 느끼고 있다면,
혹시 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방향을 바꿀 신호일뿐.
그 꿈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을 뿐.
『다시, 학교로 간 직장인들』 릴레이 에세이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7 IMMS 6기
전) 국내 대기업 IT 계열사
현) 외국계 IT 회사원이자 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