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각종 맘충, 급식충 등 각종 벌레들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살아가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LGBTQ, 이혼, 싱글맘, 다문화와 같은 주제들이 회사 내에서 동료들 간에 나오는 경우에는 대부분 긍정적이지 않은 감정들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보편적인 관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관념들은 보편을 이탈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캐나다에 오고 나서야 내가 작은 부분밖에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1.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사내에서 Workplace Diversity Pulse Survey를 매년 시행하는데 입사 후 처음으로 이 설문조사에 참여하면서 나는 캐나다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는 첫째로 인종 다양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한국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인종 다양성에 대해 묻는 조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외국인의 비율이 적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국은 2020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이 4.9%라고 한다. 그에 반해 캐나다는 2016년 기준 21.9% 2036년에는 24.5%~30.0%로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고 한다. 이 차이만 봐도 어마어마 하지만 아마 주요 도시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 신기했던 질문은 성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성 정체성이라는 표현보다는 성별에 관해 묻는 질문이 많으며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아직은 생소한 경우가 많다. 하단의 질문지에서 보이듯,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정말 수많은 경우의 성별과 성 정체성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다양한 선택지들이 질문지에 적히기 위해서는 그간의 수많은 노력들이 이어저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아직 자신의 성별이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여기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그 외"와 "모른다"와 같은 선택지들이 나에게는 그들을 위한 배려이자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으며, 그와 함께 모두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캐나다의 흔한 성별 및 정체성 질문지
2. 돌싱, 싱글맘, 싱글대디라는 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
캐나다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신기했던 점 중 한 가지는 본인이 싱글맘, 싱글대디, 돌싱이라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상태를 밝히는 점이었다. 보통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시선들로 인해 이러한 상황을 밝히길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문화가 나에게는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뜻하지 않게 이혼할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아기가 생겨 혼자 아기를 키우게 될 수도 있다.
BBC 뉴스에서 발췌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미혼 한부모가정은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수고로움뿐만 아니라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사회적 편견도 함께 견뎌야 하며, 미혼부는 자녀의 출생신고를 위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가 친자임을 증명해야 하고 소송도 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 출생신고 과정 동안 아이들은 주민번호를 갖지 못한 채 살아야 하고, 이로 인해 의료 보험 혜택이나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보이듯, 이혼, 한부모가정을 향한 회사와 지역사회에의 시선은 차갑고 매섭기만 하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같은 사람일 뿐이고 모두들 각자의 상황에서 가장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일인데 그런 선택을 비난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모든 상황들을 예외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사회적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캐나다는 참으로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3차 면접인 임원면접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고위 임원이었던 나의 면접관은 나에게 너의 약점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나는 캐나다에 이민 온 지 3년밖에 안된 속된 말로 FOB(Fresh off the boat)이기 때문에 영어가 부족하다. 나는 부족한 나의 영어실력을 메우기 위해 뉴욕타임스나, CNN 뉴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같은 신문, 잡지들을 보면서 나의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나에게 "네가 중요한 영어 문서를 작성해야 할 일이 생기면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라고 물었고, 나는 "회사 문서라면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에 초고를 작성하고 문법과 스펠링을 보기 위해 구글 맞춤법 검사를 할 것이며, 중요한 부분은 보여주지 않되 헷갈리는 부분만 내 남편에게 영문법을 물어볼 것이다. 그럼에도 궁금한 부분이 생긴다면 회사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문서 작성을 완료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면접관은 나에게 참 가슴 따뜻한 말을 해주었다.
" 우선 너는 영어를 정말 잘해. 내가 만약 너희 나라에 가서 3년 있었다면 나는 너처럼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 자신감을 충분히 가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너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직장 동료들과도 수없이 많이 일해봤어.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 대답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나라는 질문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라야. 네가 아무리 바보 같은 질문을 하더라고 그 질문으로 너를 바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중요한 사실은 네가 질문을 했고 그를 통해 네가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져"
이 대답은 내가 캐나다 이민 생활을 통틀어서 내가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가슴속에 남아 있는 말이고 나도 나중에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나에게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 중에 하나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언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포용할 수 있는 문화가 내가 생각하는 다양성 존중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