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순 마트

by 김보리

찹쌀

찹쌀을 즐겨 산다. 이마트 찹쌀이 싸다는 공식이 박혀 있어서 그곳에 가면 언제든 한 봉씩 꼭 사야 한다. 거르는 법이 없다. 며느리는 찹쌀을 즐기지 않는데 그래도 사주고야 만다. 싫다 해도 산다. 무어든 필요 이상 쌓아 놓는 것을 며느리는 꺼리는데, 두 봉지씩 쌓여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이을순은 쌀과 찹쌀을 2대 1 쯤으로 섞어서 밥을 하니 넉넉히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며느리 배앓이 하던 날, 찹쌀만으로 질척하게 밥을 지어 두어 끼 먹이니 좀 나은 눈치다.

그보라니까아. 찹쌀이 몸에 좋아. 아가, 찹쌀 사러 가자.


김치거리

마트 킹. 며느리만 없으면 그곳엘 간다. 며느리 눈치 안 보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며느리 없으면 심심하기도 하니까. 마트킹이라 읽고 ‘마네킹’이라 말한다.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고, 무를 사서 나박김치를 담고, 총각무를 지고 와 또 김치를 담근다. 며느리가 없으면 좋은 것은 김치를 담글 수 있으니까. 며느리는 왜 김치를 안 좋아하는 걸까. 별나다, 별나.

가파른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하는데, 또 한 짐을 지고 다시 걸어 올라오다 기운이라도 빠질까 자식들은 걱정이 많은데, 김치거리를 사고 김치를 담는 게 그리 즐겁다면, 어찌 말릴 수 있을까. 그럴 만큼만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랄 뿐.


멸치

친구들 다 해도 내가 제일 뼈가 좋아. 무릎도 멀쩡하고. 어렸을 때 멸치를 많이 먹어 그런 거지, 딴 거 없어. 며느리 오기 전에 똥 다 따놔야지. 나는 축축-하게 고추장에 볶아 먹고 애들은 고추장 찍어서 열 개씩만 먹으라고 할라고. 뼈는 멸치여. 아가, 멸치 떨어지면 안 된다.


삼다수

물은 큰 거 6병씩 묶인 거를 한 너댓 묶음씩 베란다에 쌓아놓고 먹어야지. 며느리는 손이 작어. 두 개가 뭐야, 두 개가. 쌀은 또 왜 저리 조금씩 사다 먹어어. 돈이 없나. 그저 후덕하게 쌓아놓고 살아야 든든하지.

“어어 너 그 물 버리는 거야? 얘가 얘가, 삼다수는 한-나두 버리면 안 돼-.”


들기름

기름은 들기름이 최고지. 난 그냥 수입산 달라고 해. 어차피 국산 사도 속여서 줄지 누가 알어. 수입산도 맛있기만 하구만. 들기름 두르고 불 약하게 해서 구우면 노릇- 노릇한 게, 만두가 얼마나 맛있는지. 그 핑계로 만두 속 만들어 놨다가 며느리만 고생 시켰네.


막걸리

소주 잔에 막걸리 한 잔 먹으면 잠이 바로 들어. 장수막걸리가 좋은데, 영탁이가 좋아서 영탁막걸리를 사봤는데, 이것도 맛있네.

마트에 갈 적마다 영탁막걸리가 보이면 “오! 저게 다 있네.” 감탄하며 꼭 한 개씩 챙긴다. 올 설엔 먹지도 않고 버리는 정종 대신 영탁막걸리를 올렸다. 시류에 풍속을 맞추는 합리적인 마음인지 트로트 가수를 향한 팬심인지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정종과 달리 영탁막걸리는 그날로 싹 비워졌다. 합리성과 팬심의 조화라고 해두자. 나쁠 게 없다, 이런 선택은.


이불 / 속옷

며느리네 이불은 왜 다 그 모양이야…. 아들 이불 하나 사주고 싶은데 며느리가 하도 말려서 살 수가 없네. 산 지 10년도 더 됐겠구만 며느린 이삼 년 밖에 안됐다네. 낡고 그지 같은데. 이불이란 게 감도 부들하고 딱 묵직하게 눌러주고 해야지. 근데 나는 왜 이리 자꾸 이불이 사고 싶지. 며느리네 이불이 많기도 많은데. 좀 버리라 그래야겠어.

아들 집 머무는 동안 며느리가 큰 쓰레기 봉지를 사서 이불 서너 개를 버리는 것을 보고는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다.

“아이구 아이구, 내 속이 다 시원하다~!!”

오래된 한식 이불을 버리고 새 이불 사주겠다는 김보리의 말엔 또 이을순이 손사래 친다. 절대 안 된단다. 낡기도 낡고, 세탁하기도 불편하며 보통 무거운 게 아닌데. 내 물건이 내게 좋은 것이다. 서로 건드리지 맙시다, 각자의 사물, 각자의 취향, 각자의 공간, 각자의 마음. 고부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 사이, 모녀 사이, 모자 사이, 친구 사이, 직장 동료나 위아래 직급 사이 모두, 명심합시다. 노 터치! ‘개취’ 존중! (개인의 취향)

먹거리를 제외한 이을순의 쇼핑 애정 품목은 빤스와 양말과 이불이다. 마트에 가면 언제나 그 근처를 서성이고, 김보리는 잡아끌기 바쁘다.

어머니. 속옷 좀 고만 사주세요. 이거야말로 '개취' 아니겠습니까!


IMG_0253.jpg
IMG_0252.jpg


이전 08화을순 옷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