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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ealist Apr 10. 2021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5판 5쇄 2020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으로만, 신뢰는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관계는 당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일깨우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랑에서만 주는 것이 받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생은 학생에게서 배우고, 배우는 관객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정신분석가는 환자에 의해-그들이 서로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서로 성실하고 생산적으로 관계한다면-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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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을 출간했을 때, 그는 '사랑'과 '사랑의 능력'이라는 주제로 책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학자였다. 사랑에 대해서는 종교(이를테면 성경 아가서)와 철학(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문학(이를테면 독일 민네장[중세 독일 궁정에서 불렸던 연애시로  주로 젊은 기사가 용모, 자태, 품성이 뛰어난 귀족부인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많다]이나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논해졌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프롬이 <사랑의 기술>로 토론에 불을 붙였고, 그 결과 오늘날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엄청난 규모의 연구와 조언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한 권의 책 덕분에 폭넓은 토론이 시작된다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저자보다 오래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다르다. 프롬 사후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이 34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렸다. 많은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발견 그 자체이다.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뒤 책장에서 꺼내 들고 다시 한번 읽는 독자들도 있다.


<사랑의 기술>의 성공담은 이 책의 내용만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와 그의 사랑의 기술과 분명히 관련이 있을 무언가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떤 사람들은 프롬 자신이 어떻게 사랑했는지,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을 스스로도 실천하며 살았는지 궁금해한다. 이 글에서는 그 점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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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을 여러 권 편집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학자는 아도르노였다. 그는 대표적인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비판철학을 했다.

사무실의 다른 편집자가 편집한 프롬의 해설서를 잠깐 읽은 일이 있는데 그 책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였다.

이 책은 디지털 지인이 추천한 책인데 '사랑'에 관한 이야기 때문인지 책의 중반에 프로이트를 무척 까댔다.

아무래도 둘의 사상이 대척점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나는 프롬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읽는 내내 속으로 반박만 했다.

50년의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요즘의 철학자가 <사랑의 기술>을 요즘의 관점으로 써서 출판해 주면 좋겠다.


나는 프롬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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