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자살하는 양이라고 불리는 스프링 벅은 초식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시속이 94km나 될 만큼 빨라 치타조차 따라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스프링 벅에게 일어난 집단 떼죽음 사건.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프리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이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시사한다. 첫째, 다수가 선택한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스프링 벅의 습성을 중심으로 죽음의 원인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다음의 단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그들의 왕성한 식욕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 무리를 이루며 다니는 그들의 생활습관이다.
평소에는 평화롭게 풀을 뜯던 스프링 벅이지만 이 두 가지 습성이 합쳐지면 다음과 같은 3단계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1단계 무리가 커질수록 서로 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먹이에만 집착하게 된다.
2 단계 뒤에 있는 녀석들은 앞에 녀석보다 더 빨리 더 많은 풀을 먹기 위해 속도를 내게 되고, 이는 과열 경쟁을 불러 나중에는 풀을 뜯는 목적마저 잊어버린 채 모두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게 된다.
마지막 3 단계 마침내 절벽에 이르렀을 때도 달려오던 속도를 멈추지 못해 절벽 아래로 모두 떨어져 죽는다. 둘째, How보다 Why를 명확히 하기 목적을 잃은 스프링 벅은 오로지 남들보다 더 많은 풀을 먹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그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은 더 빨리 더 멀리 힘껏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왜 달려야 하는지 목적을 잊은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식사회에서는 개인이 삶의 여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왜 해야 하는지 Why를 명확히 하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인생 100세 시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장수에 대한 준비는 개인적, 국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호서대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 박사는 65세 은퇴 후 95세가 됐을 때,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글을 통해 허송했던 30년의 세월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 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로부터 그는 8년을 더 살고 103세에 타계했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급속한 변화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퍼스널 브랜딩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시작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내게 자아의 신화를 찾게 해 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끝을 맺으려고 한다,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죠?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