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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 라이프


ritual, 사전에 찾으면 의식이나 의례를 나타내며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일이다.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정해진 일과는 경제적인 벌이일 뿐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 시간 외에 매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고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를 위한 습관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잠자는 시간도 아깝고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다.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 날은 죄책감마저 들었다. 영어 글쓰기가 만들어 준 긍정적인 습관이 몸에 베인 덕분이다.

솔직히 시간을 맞춰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매일 꼭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꾸준히 마칠 때까지 하는 지구력은 가지고 시작하는 편이다.


최근에 ‘나만의 영어 필기체 연습장’으로 필기체 연습을 하고 있다.

만화 그리기용 펜으로 하루에 두 쪽씩 채워가고 있는 데 성취감 덩어리다. 영어 필기체에 대한 관심이 발동했고 그 후 그림과 우리말 캘리그래피에도 빠지게 되었다. 알파벳 26자의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가면 울긋불긋 물든 벚꽃 나무 아래에서 가을 한낮의 햇살을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는 산을 오른 후에 베어 먹는 오이의 시원한 맛일 게다.


알파벳 26자, a~z까지 연결해서 한 번에 가야 하는 데 매끄럽게 하는 게 쉽지 않다.  문장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I hope everything is okay를 연결할 때에도 I는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하고 나머지 단어들도 서로 잘 묶이지 않으면 균형이 깨지고 문구는 그 메시지를 잃을 것이다. 이런 작은 습관 속에도 우리의 유영하는 삶이 엿보인다. 혼자서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무리 지어 화려한 부채춤이 되듯 혼자서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내가 하는 반복된 의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리추얼 라이프’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알파벳 소문자 'r'  흉내 내기가 제일 어렵다. 어려우니까 자꾸만 연습하게 된다. 힘 조절도 해야 하고 속도 조절도 해야 한다. 삐뚤빼뚤하다가 어느 날은 “이거 내가 쓴 것 맞나?, 실화냐?” 싶을 정도로 원본 문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나의 문구와 서툰 나의 그림을 넣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선물하고 싶다.


알프레도에게 졸라 영사기 속 필름을 바라보던 영화 <씨네마 천국> 소년, 토토의 환희의 눈빛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데리고 인생의 아름다운 단면을 찾아 여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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