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시장으로 본 경쟁을 넘어 시장을 키우는 마케팅
요즘 집 꾸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좀더 정확하게 내 '방' 꾸미기. 대학생 이후 없었던 책상을 들여놓고, 체구에 비해 컸던 퀸 사이즈 침대도 싱글 사이즈로 바꿨다. 침대 옆에 스탠드만 배치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공간 분위기가 따뜻해진다. 최근 변화된 내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고무나무로 짠 작은 책장도 들였다. 최근 읽은 책들을 가지런히 꽂아두었더니 작가의 공간 느낌이 난다.
공간이 바뀌면 삶이 바뀌는 걸까.
아니면 내 삶이 변화해서 공간이 바뀐 것일까?
무엇이 먼저 바뀐 것인지 머리 속에서 실랑이를 벌이더니 생각의 초점이 '인테리어 시장'으로 흐른다. 특정 대상이 속한 '마켓(Market)', '산업(Industry)'단위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는 버릇은 마케터인 나의 직업병.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 하나 생각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그 치열한 생각들이 결국 지금 나라는 사람, 그리고 '이세라'라는 마케터를 만들었을지도.
그렇게 일상에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마케터스러운' 생각의 흐름들을 이어받아 시작하게된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경쟁을 벗어나 시장을 키우는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하우스푸어*가 아닌 '노하우스'라 행복한 나에게도 한 가지 포기한 버킷리스트가 있었으니 바로 <내 집 꾸미기>. 내 집이 아니기에 인테리어 할 생각은 엄두도 못했고 살림살이는 최소한으로만 키웠다. 이런 나에게 최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변화는 바로 '오늘의집'이라는 앱을 만나고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의집'은 한마디로 인테리어에 필요한 가구, 소품, 인테리어 자재를 판매하는 서비스다. 그들의 마케팅 핵심은 바로 소비자가 인테리어한 공간 이미지들로 그들의 제품을 프로모션 하는 것이다. 이쁘게 꾸며진 집의 이곳저곳 공간들과 전세, 월세로 보이는 원룸방 사진들. 사진 속 태깅되어 있는 가구와 소품들은 모두 큰 맘 먹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구성한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집을 인테리어 할 수 있는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 인테리어는 더이상 자재물(Facilities)이 아닌 소비재(Goods)라는 인식의 전환. 내 집이 아니더라도 '지금 내가 사는 공간부터 이쁘게 꾸미고 살자'는 가치관의 변화.
오늘의집은 그 변화의 물살을 신나게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의 흐름이 하나의 기업으로 머물렀으니 바로 이케아(IKEA)다.
이케아가 한국에 상륙했던 2014년 12월 겨울. 어느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안 거실에서 처음 만났던 이케아의 TV광고를 회상해본다. 이케아의 로고 - 마케팅에서는 BI(Brand Identity), CI(Corporate Identity)라고 하는데 - 대표 컬러인 쨍한 파란색과 노란색을 전체 화면으로 담아내고 마지막 화면엔 오픈날짜와 장소를 작은 글씨로 소박하게 알리는 영상이었다. 다양한 제품과 이케아의 장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해외 기업이라고 하기엔 조심스러운 접근이었다.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이케아는 돈 없는 유학생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준 고마운 녀석이었기에 한국에 이케아가 들어온다는 사실은 나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국내 가구업체들은 아닌듯 했다.
당시 크고 작은 온라인 신문매체들은 이케아의 상륙으로 인해 국내 인테리어 시장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연신 내보냈다. 정말 이케아는 국내 가구시장을 축소시켰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었다. 최근 국내 가구 산업은 때 아닌 성수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 이케아가 홈 퍼니싱* 시장자체의 판을 키워버렸기 때문이다.
* 홈 퍼니싱(Home Furnishing) : 홈(Home)과 퍼니싱(Furnishing)의 합성어로, 집을 꾸미는 데 필요한 모든 가구, 소품 등을 일컫는다.
'마케팅은 곧 돈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소개하고 실제로 소비자가 구매를 하기까지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해당 시장에 경쟁자의 수가 많고 경쟁강도가 치열하다면 마케팅 예산은 배가 된다. 저마다 자신의 강점과 특징을 어필하는 목소리 속에서 자신의 제품을 소비자의 뇌리속에 인식시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유사사업자들을 경쟁구도로 보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일까?
이케아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가구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가치를 기존 시장에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형성시켰다. 결과적으로 이케아는 국내시장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냄으로써 크고 작은 국내 가구브랜드와 함께 인테리어 시장의 판을 키웠다. 현재 국내 가구시장의 시장성장률은 연평균 6.6%.
신규 시장을 만들거나, 기존 시장에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소비가 발생하는 상태에서 마케팅에 '경쟁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 없다. 이 때 각 플레이어들의 마케팅역량은 경쟁보다는 시장을 형성하는 '자본(Capital)', '성장동력(Growth Engine)'의 역할을 하게된다. 이 시점에서는 오히려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시장을 뛰어들어 초기 시장을 같이 키우는 마케팅 활동을 통해 각 플레이어들의 실패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위 개념을 다른 산업군의 케이스로 적용해볼 수 있을까? '배달음식 어플리케이션'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요기요, 배달의 민족, 푸드 플라이 등 - 다양한 음식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주문할 수 있는 배달앱 어플리케이션은 요식업 내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킨 주역들이다. 그렇다면 배달앱의 초기 시장은 어떠했을까?
흥미롭게도 배달앱의 원조(First Mover)는 요기요나 배달의 민족이 아닌 '배달통'이다. 배달통은 현재 요기요를 보유한 '알지피코리아'라는 업체가 인수하여 운영 중이다. 배달통이 초기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것일까? 배달앱 1위 사업자는 현재 배달의 민족이다. 비록 다른 업체에게 1위 자리는 내어줬지만 요기요, 배달의 민족과 같은 업체가 시장에 같이 뛰어들어주었기 때문에 배달음식 시장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시장이 어느정도 형성된 이후에는 경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는 각 플레이어가 추구하는 '차별적 가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시하는가'가 또다시 마케팅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새로운 시장에 발빠르게 뛰어들면서도 자기만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배달의 민족이 배달앱 시장의 승자가 된 것은 아닐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싶을 때 뇌리 속에 울리는 메시지 - '족발도 우리 민족이었어', '삼계탕이 타고 있어요' 등의 유쾌한 광고 카피는 배달의 민족이 얼마나 타브랜드 대비 자신들의 가치를 유쾌하게 전달했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최근 인테리어에 빠져 가구와 소품을 들이는 나의 사소하지만 무서운(?) 일상으로부터 마케팅 개념과 관련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마케터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케팅 개념이기에 여러분들의 삶 속에 종합 비타민 정도의 역할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매주 연재될 글을 기다리며, 또 어떤 마케팅스러운 생각의 흐름을 탐험해볼지 기대가 된다면 작가로서 기쁠 것 같다.
이번 글을 통해 유사 플레이어가 무조건 경쟁자라고 인식하는 생각에 작게나마 쪼개진 생각의 결들이 생기길 바라며. 내가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속한 시장이 어떤 시점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에 따라 유사 플레이어가 시장을 같이 키워내는 '동반성장 파트너'인지 혹은 '경쟁자'인지를 분별해낼줄 아는 사고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마케팅 사고방식은 아닐까?
* 현재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브런치북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과 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페이스북 채널에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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