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백수 청년의 무모한 버닝맨 탐방기
무려 3년만에 브런치를 리뉴얼했다. 글쓰는게 최근들어 너무 귀찮아졌지만 버닝맨 간다고 들인 돈이 너무 아까워 뭐라도 남겨야겠다 싶었다. (버닝맨이 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답하기 힘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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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맨?
버닝맨을 알게 된 건 불과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대 생활관 막내시절, 컴퓨터는 선임들이 독점하고 있어 침상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구글의 미래>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 실린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의 한 인터뷰에는 그가 매년 버닝맨에 참여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아마 뜬금없이 그 한 문장에 꽂혔던 것 같다. 공대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꿈의 직장 구글. 버닝맨이 뭐길래 그 구글의 CEO를 오라가라 하는건지. 구글 채용시에 버닝맨 경험 여부를 높게 쳐준다는 말도 있었으니... 나는 다짜고짜 그날 밤 빈 컴퓨터를 찾아 버닝맨이 뭔지 열심히 뒤졌다.
예술
버닝맨을 구글링하면 첫번째로 볼 수 있는건 '진짜 여기가 지구가 맞나?' 하면서 눈을 의심케 하는 사진들이다.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미지의 세계. 그 가운데 휘황찬란한 복장을 한 채로 춤을 추는 사람들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조형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사막 위를 가득 메운 창조물들은 인류의 위대함을 과시라도하듯 불을 뿜고 빛을 내며 사막의 하늘과 땅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오로지 버닝맨에서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창조물 위에는 매드맥스 영화속에나 나올법한 괴상한 차림새의 인류가 몸을 흔들고 있다.
이 땅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말그대로 탈지구적인 풍경. 그들은 축제라는 말을 단호하게 거부하지만, 정작 밤만 되면 화려한 연회장으로 변하는 그곳은 쉽게 말하자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축제. 조금 더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마약 소굴, 히피들의 난장, 현인류를 향한 저항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버닝맨의 정의일 뿐이다.
화합
버닝맨을 설명하기 위한 두 번째 키워드는 화합이다. 참가자들 사이의 화합을 통해 사막 위에는 하나의 거대한 버닝맨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같은 뜻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나누고 이해한다. 거대한 휴머니즘 정신의 일환이다.
사막의 환경은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러간다. 폭염, 폭우, 폭풍,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막의 기후아래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연의 변화에 어우러지는 자세, 버닝맨의 참가자들에게 그러한 자세는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 사막에 엔지니어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창조해낼 기술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있을 테니, 수만명의 엔지니어들이 이곳에 모이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구글의 정신이 버닝맨의 정신과 맛닿아있다는 말이 점점 이해가 된다. (여담으로 버닝맨 기간동안 실리콘밸리는 잠정 휴업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세계를 주도하는 각 기업의 CEO들 마저 문자한통 전송되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 표류하고 있으니...)
사랑
조금 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자. 그곳 버닝맨에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할 것을 요구받는다. 질투와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모두 같은 하나의 인류로써, 친구로써 서로를 대우하고 대접받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음식, 물 등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나눠주기 바쁘다. 나눔은 또다른 나눔을 부르고 모든 공동체가 결국 나눔을 동력삼아 화합해간다. 이 때 이름을 쉽게 묻지 않는 것은 버닝맨의 오랜 관례. 친구가 되어 함께 며칠 밤을 샌 뒤 집에 돌아와서, 뉴스에 나오는 사진 통해 그의 이름과 사회적 이름(이를 테면 CEO라던지)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버닝맨의 boundless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막에는 현실적인 지위도, 약자에 대한 편견도, 그 어떤 사회적 제도도 없다.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사막에서 잠시나마 제약없이 자기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또 이해받는다. 모두 함께 박애주의자가 되어 사랑어린 시선으로만 인간을 바라보게 되는 것. 창립자들의 강한 인류애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매년 8월의 마지막 주, 전 세계 8만여명의 사람들이 네바다 주의 사막 한가운데로 모여든다. 그러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아무것도 없는 사막위에 거대한 기술도시가 건설된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을 주축으로 도시는 제법 그럴싸한 모습을 이루지만, 단 일주일간 유지되고 정확하게 일주일이 흐른 후에 아무런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말그대로 물 한방울, 땀 한방울, 피 한방울 남기지 않은 채 본래 사막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때 누구 하나 돈을 받지 않는다. 도시는 철저하게 기부와 봉사활동만으로 생산되고 유지되고 또 파괴된다. 그럼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은 매년 여름 이곳을 찾아 자발적으로 대규모 창작활동을 꾸려나간다. 심지어 도시내에는 화폐의 거래 또한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 물물교환, 나눔 등 원시적인 형태의 교류를 통해서 사람들은 생활을 이어간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이 열악한 환경 속, 뜨거운 허허벌판에서 영감을 받아, 카우치 서핑, 솔라시티 등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탄생한다.
꿈
그러니까 이곳은 달리 말하자면 꿈을 찾는 사람들의 축제다.
버닝맨의 공식 웹페이지에서는 버닝맨을 이렇게 설명한다.
"A network of dreamers and doers - 꿈꾸는 사람들과 행동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누군가는 사막을 도화지 삼아 머릿속으로만 그려오던 꿈을 펼쳐보이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 순수한 꿈들로부터 새로이 나아갈 영감과 창의성을 얻기 위해서,
8만명의 버너들은 기꺼이 사막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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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구 한복판에 솟아난 꿈과 열망의 도시,
그곳이 버닝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