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백수 청년의 무모한 버닝맨 탐방기
버닝맨에 가기 전 아주 사적인 인터뷰를 진행할까 한다. 우연찮게 버닝맨 가기도 전부터 버닝맨 경험자들을 몇명 만날 기회가 있었다. 확실히 샌프란은 실리콘밸리 회사원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길가다가도 버닝맨 경험자 (또는 심지어 올해 참가자까지) 심심찮게 만날 수가 있다. 나는 나와 같은 드리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자기계발서마냥 흔해빠진 실리콘밸리 성공담보다는, 꿈꾸고 도전하는 자들의 열정을 엿보고 싶었다. 무엇이 그들을 사막으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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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 Priscilla
내가 첫번째로 만난 버너의 이름은 Priscilla다. 사실 나는 그녀를 샌프란에 오기도 전, 마이애미에서 만났다. 마이애미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현재 '모든 피부를 위한 화장품'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스타트업 Unify Cosmetic에서 일하고 있으며 때때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센터에서 진행하는 인권보호 강의의 연사이자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상담가이기도 하다.
웹 커뮤니티를 통해서 종종 대화했던 버닝맨 경험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굉장히 많았는데, (미국나이로) 21살인 내가 버닝맨에 간다하면 보통 그들은 상대적으로 어린 경향이 있다며 회의적으로 말했다. 한데 그녀 역시 7년전, 나와 같은 21살에 버닝맨에 갔다 왔다고 한다. 무엇이 그녀를 사막으로 이끌었을까. 이야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어떻게?
그녀가 LA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처럼 그녀도 버닝맨에 대해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려고 하니 너무 막막해서 한번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친한 학교 친구 한명이 아트카를 만들어 버닝맨을 간다고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했고 1초의 망설임 없이 승락한 그녀는 그렇게 버닝맨에 참여하게 되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어. 원래 친한 친구도 아니었는데 내가 그런 쪽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불쑥 찾아와서 묻더라고. 당연히 좋다고 했지. 그냥, 진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아."
자동차 엔지니어였던 그녀 친구는 밴을 개조해 코코넛 모양의 아트카를 만들었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둘은 그렇게 LA에서부터 '코코넛카'를 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무엇을?
그렇게 버닝맨을 가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었다.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버닝맨을 가지 않았다면 아마 삶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막에 도착한 그녀는 아트카에 금새 흥미를 잃고 마을을 향했다. 수많은 캠프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다가 마음에 쏙 드는 명상캠프를 발견했고, 평소에 명상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곳에서 명상을 가르치는 봉사자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해서 캠프에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도시에는 아무런 제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마약을 하거든. 버닝맨이 추구하는 가치의 특성상 히피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캠프에 명상을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마약 중독자들이 되게 많았어. 처음에는 너무 겁이 나는 거야."
평소에는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생각조차 못했던 그녀에게 그 경험은 나름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고집 있게 들어주었다. 마음 속 강하게 자리잡은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뭐랄까 '마약'하면 되게 안좋게 생각했었지.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피해다니고,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고 그랬었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나랑 똑같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때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마약 그거 나도 한번 해보겠다고 했지. 내가 직접 해보니 막상 진짜 별 거 없는 거야."
그녀는 그때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그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타인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했던 과거의 그녀 모습들이 말이다.
"축제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와서, 취미로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 NGO단체에 들어가서 종종 마약 중독자들을 상담하곤 했는데, 진짜 나보다 생각이 훨씬 깊고 배울점이 많은 사람들도 너무 많았어. 그 사람들이 가진 애환은 들여다보지 못한 채, 마약 중독자라며 선을 긋고 손가락질 하는-마치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볼 때면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
그녀는 그때 이후로 인권 보호 활동에 그녀의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단다. 또한 그런 신념의 연장선에서 강의나 강연활동을 펼치게 된 것이라며, 버닝맨에 갔다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들을 보면 피해다니기 바쁜 수많은 한 사람에 불과했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날 그녀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 내내 타고난 연사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녀의 설득 방식.
끝으로 그녀는 사람들이 겉이 아니라 속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이는 것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 모든 것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에 불과하다고,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주길 애원했다. 꼭 마약 중독자들 뿐만 아니라, 신체변형예술가, 트렌스젠더, 급진운동가, 흑인, 그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그녀는 지금도 부단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We are all same human being -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팁?
버닝맨 참가자들을 위한 팁을 한가지 달라고 했다. 그녀는 오랫 기억을 되짚어보듯 눈을 감고 상상을 하다가 "마약" 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사실 거기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게 금지되어 있으니깐, 뭔가 필요한게 생기면 무조건 물물교환을 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뭔가 가치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가야하거든. 거기 오는 사람들 중에 마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돼. 거래 성공률 70%는 내가 보장한다 이 말이지. 그러니깐 물물교환을 위해서 대마초 몇그램 정도를 들고가면 좋지 않을까 혹시 뭐 기회가 된다면 니가 태울 수도 있고 말이야."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정확하게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꽤나 애를 먹어가며 한국의 속인주의 제도를 이해시켰더만 그녀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WHO CA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