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2일 : 글쓰기 22일 차,
이 날은 병실에 해가 깊게 들어오는 뜨겁던 날이었다. 수술을 앞둔 엄마가 장을 비워 내느라 애쓰던 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날 수술이 제발 잘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다. 기다림 그 설렘의 감정에 또 다른 겹이 씌워지던 날의 기록이기도 하다.
행운이다, 기다리는 마음이 설렘뿐인 것은!
살짝 눈감고 이 행운을 떠올려본다. 내 남편, 부모님, 친구, 옛 연인, 봄바람, 배달음식, 터질듯한 꽃봉오리, 택배, 조카, 여행 계획, 기차, 소풍, 생일, 첫눈, 약속 시간... 기다리는 마음에 들뜬 두근거림을 불어넣어 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 설렘만 있는 내 기다림은 참 복되었구나.
어제는 종일 병실에 있었다. 아직도 낯선 환경, 하루를 꼬박 보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술 끝내고 막 돌아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하던 내 나이 또래의 여인, 하루 종일 장을 비워내느라 물약과 씨름 중이신 내 엄마, 51 병동 복도를 끊임없이 걸어 다니는 환자들과 의료진들. 아픈 사람에게는 걷는 게 보약이란다. 그래서 무조건 수술 후에도 많이 걸으라 한다. 주렁주렁 약 주머니 달고, 히꺼먼 얼굴로 복도를 걷는 사람들이 낯설다. 엄마는 하루 종일 500ml, 8병의 물약을 넘기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신 모양이다. 아니면 딸 고되지 말라고 더 열심히 아무렇지 않은 척 꿀꺽꿀꺽 넘기셨을 수도 있다, 충분히...
병실을 지키는 내내 그동안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간다고 해도 될까? 감히 복된 삶을 살아왔다고 하면 이 말에 아파하는 사람은 없을까. 요즘은 부쩍 모든 게 조심스럽다. 그래도 아픈 사람 없이, 수술대 한 번 오른 경험 없이 건강한 가족과 지내왔던 세월이 참 복되었다며 감사는 하고 싶다. 수술 동의서 사인을 위해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한참 했다. 절제되는 부위와 예상되는 부작용을 들으며 나는 열심히 메모했고, 엄마는 한숨을 깊게 쉬셨다.
병실로 돌아와 내일 아침 8시 30분을 위한 긴 기다림을 시작했다. 엄마는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을 어제 모두 읽으셨고, 다른 책 한 권을 더 사 오라고 하셨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읽고 싶다고 하신다. 서점에 가니 다행히 한 권 남아 있었다, <기다리는 행복>. 제목도 참 밉다. 오후 시간 내내 엄마는 책과 화장실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내셨다. 떨리는 손으로 책장은 넘기셨지만, 눈에는 여전히 매운 빛이 가득이다. 긴장의 떨림이 눈빛까지는 아직 오르지 못했구나. 감사하다.
내일은 더 큰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다. 긴 수술 시간을 우리 가족이 어떻게 보낼지, 수술 후 긴 회복 기간을 또 어떻게 보낼지. 우리는 서로의 감정은 뒤로 숨긴 채 어서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시간을 기다린다. 이제는 기다리는 마음에 간절함이 얹어진다. 들뜬 두근거림 위에 두려운 두근거림의 색이 얹혔다. 수술이 끝나고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최소 하루를 보내신다고 한다. 기다리는 마음에 찬찬한 침묵만 흐르겠지. 거기에 간절한 바람만 올려지겠지.
기다림이 한 층 더 두터워진다.
사는 게 더 깊어지는구나 하며 위로 삼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