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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Oct 30. 2022

 각자의 반짝임

2020년 9월 4일 : 글쓰기 66일 차, 


런던에서 친구와 함께 지방에 사는 동료 언니네 집을 다녀오는 길,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를 적어내려 간 글이다. 당시 승무원이었던 우리는 코로나로 비행을 멈추고, 영국 자가 격리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 휴직기 6개월 차가 되어 넘처나는 시간이 몸부림 칠 무렵이었다.




회색 구름머리에 잔뜩이고 친한 언니네 집에서 잔뜩 맛있는 걸 먹고 돌아오는 길, 친구와 차 안에서 나누는 오랜만의 대화가 너무나 싱그럽다. 얼음 공주 같던 첫인상이 사르르 녹고 나니, 그 안에 숨었던 따끈한 마음이 이제야 햇살처럼 느껴지는 이 친구는 요즘 베이킹에 푹 빠져 있단다. 우리는 승무원 일을 함께하며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아 런던 자가격리 기간이 지나면 좀 더 자주 만나자 약속했는데, 시간이 어느덧 이렇게나 흘러 버렸다. 그 사이 그녀의 단발머리는 긴 묶음 머리가 될 만큼 자랐고, 내 머리는 되려 짧아져 깡충한 단발이 되었다. 언니네 집에 등장한 그녀의 빵이 놀랍게도 선수급이다. 예사롭지 않은 맛에 더 놀랐다. 의외다, 그녀에게 이런 능력이! 그간 베이킹하며 찍어 놓은 사진이라며 수줍게 내미는데 제법 그럴싸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와 빵 굽는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손목도 안 좋다며 어떻게 빵을 그렇게 치대? 반죽 만들려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나도 손목이 좋지 않아서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되더라고. 근데 솔직히 힘들긴 해."

"아니, 어쩌다 빵 구울 생각을 다 한 거야?"

"평소 관심은 좀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명상도 요가도 홈트도 하고, 일하면서 못했던 잘 챙겨 먹기, 잘 자기 뭐 이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좀 더 정성을 기울이고 싶었어. 그러다가 매일 밥을 정성껏 차리게 되었고, 빵까지 더 자주 굽게 된 거지."

"그럼 한국에서 먹는 그런 우유식빵 같은 야들야들 보들보들한 빵도 만들 수 있는 거야?"

"어, 그럼. 그거 쉬워."

"아 그래? 와우! 쉽다고? 그게? 어떻게 그게 쉽지?"


빵 굽는 게 너무 쉽고 간단하다는 그녀의 말이 아무래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이킹 세계에 입문하려다 정량의 재료를 오차 없이 넣어야 제대로 만들어지는 그 똑 떨어짐이 답답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나에게는 있다. 그게 얼마나 쉽고 명확하냐 말하는 그녀가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내 우리는 글 쓰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언니는 무슨 글 쓰는 거야?"

"아, 매일 자유주제로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써."

"재밌어?"

"처음에 쓰기 시작할 땐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함께 쓰는 분들 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기도 좀 죽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 다 내려두고 더 배우자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 근데 쓰면 쓸수록 정말 재밌는 거 알아?"

"그게 재밌어?"

"어, 넌 글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어, 난 뷸렛 포인트 퍼슨이야. (a bullet point person) 대학에서 에세이 써내라고 할 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말을 늘이고 늘여도 3000자가 안되는 거야. 왜 간단한 말을 그렇게 늘리고 늘리냐고. 그때 알았지. 난 포인트만 딱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하하하, 그 말 하나로 모든 게 설명 끝이다. 아~ 웃겨!! 책 읽는 건?"

"어 책은 읽긴 읽어. 근데 문학이나 시는 절대 못 읽겠어. 근데, 어떻게 글 쓰는 게 재밌을 수 있지?

"생각이 글로 나와 눈으로 읽히고,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올 때 쾌감도 있더라. 가끔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 때가 있거든. 그런 걸 보는 즐거움도 있고. 나도 아직 깊이는 없는 초보야."

"흠... 그래? 근데 언니 글 어디서 읽을 수 있어?"

"블로그 알려줄게, 읽고 피드백 좀 줘봐. 뷸렛 포인트로 딱딱딱."

"그래? 뷸렛 포인트로 주는 거면 나도 할 수 있어! 꼭 읽고 줄게. 근데 글 쓰는 게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거지... 이해가 안 된다..."


코로나가 승무원들에게 남긴 이 잔인한 여유로움을 통해 동료, 친구들이 숨겨왔던 재능과 관심사가 드러나는 중이다. 어떤 이는 빵을 굽고,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며, 또 어떤 이는 글을 쓰고, 그리고 또 어떤 이는 피아노를 친다. 일터에서 만날 수 없었던 낯선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놀랍다. 나도 런던으로 돌아와 지난 석 달 반의 부재를 묻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일이 버거워 글을 쓰고 지냈다고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상대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글을 어디서 읽어 볼 수 있냐, 책을 내려는 계획이냐, 어떻게 글쓰기를 시작했냐 등 다양한 반응을 각자의 성향과 취향에 맞게 내어 준다. 


서로의 관심사를 바라볼 때면, 신기함과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본인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는 상대를 바라보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긍정적인 반문과 함께 상대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아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즐겁게 해내는 그들이 멋있어 보일 때도 있다. 한데, 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특별함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길까? 그들의 반짝이는 면모를 놀라움의 눈빛과 말로 표현하면, 되려 나에게 칭찬에 관대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그저 시간이 남아 하는 일이라는 말로 답할까?


그들의 반짝이는 특별함을 보통의 무언가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나도 저들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스스로 덮어버릴 때가 있겠지? 조금 더 내 보통의 것들에,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반짝임을 찾아보려 눈을 더 크게 뜨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신경 써주는 이 많지 않은 세상에 조금 더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건네 봐야겠다. 내가 갖고 있는 반짝임을 마주하고 칭찬을 건네는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그들이 바라본 반짝임을 귀하게 바라봐야겠다. 어쩌면 우린 각자(各自)의 것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각자(覺者)의 반짝임을 어딘가에 업고 사는 중일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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