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8일 : 글쓰기 100일 차,
끝까지 목표를 다 이루고 뿌듯한 기분에 잠들었던 게 언제였던가? 이 날 100이라는 숫자를 다 채우고 글 쓰는 일로 삶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는 기분에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함께 매일 글 쓰던 분들께 얻었던 위로와 힘은 아직도 생생하다. 글이 전하는 힘을 믿게 된 100일을 기록하는 글이다.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한로가 오늘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농촌은 오곡백과 수확을 위해 타작이 한창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주네요. 한 여름 7월 첫날, 그 아침 산책길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날은 제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글을 내어 놓기 시작한 날이니까요.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과 몸을 다독이려 한참을 걸었더랬죠. 그리고 그 긴 여정의 끝, 오늘도 산책과 함께 했습니다.
참 좋은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해 의미 있는 계절에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푸르른 초록에 유난하던 빗소리로 넘쳐나던 여름을 쓰는 일로 뜨겁게 태우고, 풍요로운 추석을 지나 수확의 타작 소리 가득한 한로에 백일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지난한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지금껏 가장 힘든 시기를 글과 함께 보냈네요. 지난여름 저에겐 글과 엄마 병간호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엄마는 항암 치료를 계속하시는 중이시고, 저는 이렇게 런던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지요.
만약 매일 쓰는 일이 없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백일 쓰기가 없었다면, 이 차가운 시간을 어떻게 데우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혼자 많이 무너지고, 다시 세우려 애쓰고 하면서 고단한 눈물을 흘렸겠지요. 쓰는 일을 통해 제가 좀 변했습니다. 좀 더 성실해지고 싶어 졌고, 저를 거치는 모든 일에 좀 더 많이 정성을 기울이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와 위안에 대한 생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개인사를 내어놓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친한 친구에게도 잘 열지 않는 그 빗장의 깊숙한 마음을 이곳에서는 감출 수 없었죠. 그건 아마도 쓰는 일에는 반드시 어디라도 본인의 성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내어놓은 이야기에 여러분들의 따뜻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실에 있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병간호에 지쳐 쓰러지던 마음 가득 품은 그 뜨거운 여름 낮에도, 장대비 소리만 텅 빈 밤을 채우던 그 시간에도 제가 항상 가 닿을 수 있던 곳은 여러분의 고운 문장들 그리고 응원과 격려의 댓글이었습니다.
믿지 않았어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받은 댓글에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잘 몰랐어요, 위로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 말을 그래서 잘 내어놓을 수 없었죠. 어른이 되어 겪는 일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차가웠죠. 하지만 이 백일의 경험을 통해 위로의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저도 하고 싶다고, 내 말과 글이 어디서라도 누군가에게 닿아 잠깐의 위로와 휴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커다란 바람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더 정성을 기울이고 싶어 졌어요.
백일 간 글재주는 크게 늘지 않았더라도, 이런 배움과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만으로도 참 고맙습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매일 글로 나눈 버츄얼 우정의 경험도 참 진하고 따뜻했습니다. 여러분과 칭찬을 나누던 순간에는 설렘으로 가득 찼고, 글이 뜸해진 분의 안부는 언제나 궁금했고, 코치님의 글쓰기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까지 그 마음이 가 닿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매일을 열심히 쓰려고 노력했고, 더 넓고 깊어지려 애썼으며 무엇보다 글이라는 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듬을 수 있는 참다운 것이라는 인생의 진정한 비밀 하나를 또 경험했습니다. 백일에 마침표를 찍으려는데 벌써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습니다. 가득 채운 나날들이었기에.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런던에서
김라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