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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Oct 30. 2022

99일, 다시 새벽


2020년 10월 7일 : 글쓰기 99일 차, 


글 쓰기를 매일 하며 새벽 고요하고 적막한 그 시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백일의 목표를 하루 앞둔 그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꺼내 읽던 가을 아침의 기록이다. 다가오는 100을 채우고 난 다음을 생각하며, 적어 내려 간 글이기도 하다.




지금 사는 이곳이 제일 고마운 시간은 이 새벽이다. 여지없이 새벽 네시 반. 오늘은 좀 쌀쌀한 기운에 침대에서 꽤나 오래 뒤척였다. 까만 방 불도 켜지 않은 채 방 안의 어둠을 바라보며. 이곳에는 새가 참 많다. 온갖 소리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이들은 새벽 네시 전에 울기 시작해 다섯 시가 넘으면 그 울음을 멈춘다. 단 한 종을 제외하고. 새벽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다 만나게 된 녀석인데, 노란색 부리를 가진 까만 새다. 찾아보니 대륙 검은지빠귀로 추정된다. 이 녀석은 항상 지붕 끝에 앉아 그 누구보다 명랑한 소리로 온 동네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지금도 창 밖에서 그 명랑한 소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 녀석은 아침 여덟 시 전에는 그 울음을 꼭 멈춘다. 그들도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


요즘처럼 캄캄한 밤이 길어지는 겨울이 다가오면 몇 년째 꺼내보는 책이 한 권이다. 아직도 다 끝마치지 못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저께부터 책상 위에 다시 자리 잡은 이 책을 바라보며 남편은 이제 또 겨울이 오는구나 하며 피식 웃는다. 그가 가끔 콴텀 뭐 어쩌고 저쩌고를 꺼내놓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듣다가 다른 이야기로 둘러치며 그 늪에서 나오려 시도한다. 유일하게 관심과 애정이 쉽게 닿지 않는 동네다. 그런데 그런 내가 코스모스를 읽으며 낑낑대고 있으니, 그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들 물어보라며 싱거운 농담으로 자꾸 장난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난 꿋꿋하다. 책장을 넘기는 눈길은 비록 느리고 아둔하더라도 책을 읽는 마음에 가득 담긴 진지함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둠이 가장 깊은 새벽, 코끝 쌀쌀한 공기를 달고 읽어 내려가는 문장 속에 담긴 암호 같은 단어들을 해석하며 읽다 보면 신비로운 감정은 넘기는 책장마다 가득하다. 과학이지만 문학과 철학 그리고 삶을 담고 있는 이 책과 함께 런던의 겨울을 맞이하는 시간은 몇 년째 축복 같은 호사라고 느껴질 정도다. 현재 난 <10장, 영원의 벼랑 끝>에 닿아있다.


창조의 춤을 추고 있는 힌두교의 춤의 신, 시바신의 사진과 함께 글은 시작된다. 첫 구절을 읽기도 전에 이 사진에 눈이 머무른다. 그러다 구글링을 시작했다. 코스모스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는 매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일도 꽤나 쏠쏠한 재미다. 얼추 사진을 해석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면, 줄줄이 쏟아지는 암호 같은 글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 아카데미 느티나무]


이 시바(Shiva)는 파괴자 역할을 하는 신이라고 하며, 브라흐마(Brahma), 비슈누(Bishnu)와 함께 힌두교의 삼신이다. 그들은 각각 창조-유지-파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의 춤 동상 테두리 원에는 불꽃 광륜으로 우주의 순환을 표현하고, 타오르는 불 아래 연꽃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시바신은 인간의 무지 위에서 춤을 추고 있고, 네 개의 팔에는 창조의 상징인 작은북 모양의 다마루, 파괴의 상징인 불 아그니, 코끼리 코 모양의 가자 하스타, 그리고 마브 하야 문드라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 마브 하야 문드라는 "두려워 마십시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게 되고 생명은 곧 지능을 가진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 물질에서 출현한 생물이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의 기원을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이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파괴에서 시작된 창조의 우주 대서사시를 접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빗대어본다. 99라는 숫자를 들여다보니 비어있는 듯 꽉 들어찬 이상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100은 다 채워진 충만함은 있을지 몰라도 끝이라는 불안한 감정이 드는데, 99는 하나만 더 채우면 완성이라는 희망 섞인 의미로 (오늘은 유난히 더 그렇게) 다가온다. 덜 성숙한 은하가 중력 수축의 영향을 받아 부피가 감소하고 중심부 온도가 올라 약 1000만 도에 이르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이 일어나 드디어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 100의 목표를 향해 숫자를 하나씩 채워가며 쏟아냈을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이곳에는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에 1, 하루를 더하면 이제 여기는 별이 탄생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무엇이라도 쓰려고 모인 사람들의 깊은 내면에 들어찬 창조 욕구는 우주의 대서사시가 만들어 놓은 그 질서를 충실히 따르려는 마음은 아닐까? 각자가 가진 무게와 밀도 그리고 압력의 온도를 내면으로 꾹꾹 담아내다 결국 그 팽창하는 에너지를 이렇게 글로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신비로운 생각도 얹어본다.


하나를 채우면 이제 완성이다. 그 완성을 파괴하고 다시 시작해야 또 다른 창조를 해 낼 수 있다는 순환의 원리를 받아들이려 한다. 계속 이곳에 글을 쓰고 싶었다. 코치님께서 이곳은 백일이 지나도 계속 열려 있다고 하셨기에. 하지만 오늘 다시 결심했다. 두려움 없이 이곳을 나가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창조를 만들어 가보자고. 새벽의 깊은 침묵을 깨는 새소리, 창조의 춤을 추는 파괴의 신 시바, 대폭발로 출현한 생명, 100일을 뚫고 나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 다시 앉은 새벽이 아침으로 향하는 이 시간이 들려준 99일을 채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알려준 메시지 "두려워하지 말자".


아, 이제 정말 하나만 남았다, 이곳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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