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 록 Sep 03. 2018

6. 비건이 사는 세상

지금은 인도입니다 

※비건에 관한 전문적인 글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비건: 고기는 물론이고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 주의자. 출처 네이버 사전

 

인도에 오기 전까지 인도가 세계에서 채식주의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인 줄 전혀 몰랐다. 6년 전 인도 여행을 할 때 탄두리 치킨 말고는 입에 맞는 음식이 없어서 매일 탄두리 치킨과 라씨만 먹었고 맛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인도와 채식은 나에게만큼은 생소한 조합이었다. 이번 여행은 인도 여행이기보다 요가 여행이었다. 그래서 요가로 유명한 마이소르에 왔고  마이소르에서도 특히 고쿨람은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오직 요가만 수련하러 모인 특수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가끔 고기를 발견하면 모두 신기하게 쳐다봤다. 여기 봐! 치킨 팔아! 


나의 채식 역사

나의 채식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채식을 성공한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모든 잘 먹는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들을 만큼 모든 잘 먹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키가 자라던 나는 성장기가 지나자 소화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원래 좋지 않던 소화기관이 성장기를 지나고 원상태로 돌아간 듯싶다. 그러나 소화 기능은 떨어져도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쌓인 습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고기는 특별했다. 혼자서 5인분이고 10인분이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고기의 냄새와 식감이 나에게는 완전식품 그 자체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혼자 부엌에서 소고기를 굽고 있던 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소고기는 졸린 눈도 떠지게 만드는 음식이었다. 음식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자연스럽게 식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여러 책과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고기를 먹는 것이 내 몸부터 동물 그리고 나아가 지구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기를 먹는 게 나에게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했다. 나는 그 후에도 소고기를 즐겨먹었다. 어느 날은 가족들 앞에서 이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플렉시 테리안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채식도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짧은 검색을 한 후 제일 쉬워 보여서 한 결심이었다. 그 쉬워 보이던 결심마저도 엄마가 바로 소불고기를 해주는 바람에 금방 포기하며 첫 시도는 마지막 시도가 되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내면에 있던 죄책감이 살짝 발현되는 시점이었다. 아프고 나서야 내 몸이 고기와 유제품이 맞지 않다는 걸 힘들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고기, 커피, 유제품을 끊었다. 몸이 점차 나아지고 환경이 바뀌면서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때가 생겼다. 중국에서 친구들과 외식을 할 때면 고기가 항상 있었고 인도에서는 유제품을 빼기 어려웠다. 나는 환경에 쉽게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받는다. 


Are you vegan?

요가를 배우는 곳을 샬라라고 부르는데 샬라가 모여 있는 지역에는 99%가 채식 음식을 팔고 있었다. 혼자 식사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비건이니?

모든 요가하는 사람들이 비건은 아니지만 인도 마이소르에 요가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은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모두 비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 중 절반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요가를 할 때는 몸이 너무 무거우면 동작이 잘 안될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지 않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쉬탕가 요가 철학에서는 8단계 중 아힘사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힘사란 동물을 포함한 어느 생명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고기를 자제하게 되는데 마이소르, 특히 샬라가 모여있는 고쿨람이나 락시미뿌람에서는 고기를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게 된다. 나 또한 인도에 머무른 45일간 고기는 일체 먹지 않았고 계란은 수련이 없는 일요일 하루만 먹었다. 커드나 버터밀크인 유제품은 매일 섭취했다. 인도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동안 비건은 아니지만 비건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유제품은 먹었지만 고기를 먹지 않으며 실제로 고기가 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기가 당기지는 않았다.


비건이 되는 세 가지 이유

비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당시, 채식 뷔페를 간 적이 있다. 참 맛있었는데 먹다 보니 콩'고기'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콩으로 만든 '고기'를 먹는다는 건 '고기' 맛을 잊지 못해서 먹는 걸까? 왜 굳이 콩으로 고기까지 만들어서 먹는지 궁금했다. 고기 맛이 좋으면 고기를 먹고 채식을 한다면 콩 본연의 맛을 즐겨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채식은 건강한 사람들이 더 건강해지려고 하는 식생활이라고 얼핏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콩'고기'는 그다지 당기지 않는 건 여전하다. 근데 각자 비건 또는 다양한 종류의 채식을 삶으로 들여온 이유는 다양하는 걸 늦게나마 생각하게 되었다. 그중 내가 생각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건강 

    내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채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또한 건강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건강하지 못한 경우도 질병이 걸린 경우부터 일상에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거나 두통이 있는 등 불편한 상황으로 다양하다. 내가 처음 고기를 끊었던 이유기도 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던 소고기를 맛있게 먹고 난 후에 생전 하지 않던 토를 했었다.


2. 동물 & 고기를 파는 식품 업계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뿐만 아니라 동물이 식용으로 어떻게 길러지고 죽임을 당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고 마음을 나눈 동물을 먹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동물을 먹기 위해 동물에게 호르몬 주사를 투약하고 좁은 공간에서 더럽게 기르다가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고 그걸 우리가 먹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축을 잘 길러서 잘 먹을 대안과 그에 따른 가치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아서 지금 나는 최대한 고기 먹는 걸 보류하고 있다. 물론 애완동물을 키우거나 사랑하는 사람 입장은 나와 다르게 가족이라는 마음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게 동물을 사육하고 죽이고 이를 잘 포장해서 판 돈으로 회사를 키우는 업계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아서이다. 소비자는 소비하며 의견을 낼 수 있다. 나 하나쯤이 아닌 나 하나라 도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런 업계에 돈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두 부분에 대해서 아직 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3. 지구

    지구 환경을 위해서이다. 소를 먹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건 돈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 가스 중 80%가 축산을 하며 생산된다. 더 많은 정보는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437546


같은 곳에 살지만 같은 방법으로 살지 않는다

사람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믿고 그만큼의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각자만의 세상이 있다. 문화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신념이 그렇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만큼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요가원에서 B는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eat well 잘 먹어라라는 말을 강조하곤 했다. B는 무엇을 먹든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며 요즘 비건은 음식과 싸우는 사람이라며 굳이 가려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글루텐 프리와 같은 과학이 사업과 손을 잡아 돈을 벌고 있다고 주장하며 B가 살아가는 세상을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이미 비건인 친구들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비건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는데 모든 비건을 음식을 가리는 사람으로만 치부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45일간 인도에서 고기를 안 먹었다고 하니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제일 많은 들은 말은


그러다가 뼈만 남는 거 아니야?


한국에서는 삼시 세끼를 먹으며 고기를 안 먹는 날보다 먹는 날이 많았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있는 내가 꽤나 생소했을 거다.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먹는 고기를 안 먹으면 당장 단백질이 부족해서 살이 빠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싶었다. 나도 그랬다. 인도에서 요가하면서 채식을 하면 건강하게 살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건도 건강하게 먹지 않는 방법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인도에서 요가를 하며 당분을 섭취한다며 초콜릿을 매일 같이 먹고 바삭하고 달콤한 쿠키와 케이크를 방에 저장해 두고 먹는다. 그리고 남인도의 주식은 쌀이지만 그걸 기름에 잔뜩 튀긴 도사 dosa가 아침으로 나오며 기름과 당분을 많이 사용한다. 아래 기사에서도 콜라, 감자튀김 등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비건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https://edition.cnn.com/videos/health/2018/06/27/pkg-drayer-food-as-fuel-vegan-fast-food.cnn


조금씩 세상을 넓혀간다

경험을 하거나 이해를 하면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그 믿음은 한 사람의 가치관이 되고 하나하나의 가치관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이끈다. 인생은 내가 선택한 가치관을 실천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면 삶이 변한다. 내가 보내는 시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다. 왜 이 일을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며 글을 쓰며 요가를 하며 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며 살고 싶은지 묻고 답하고 알아갔다. 그 시간에는 먹는 것이 빠질 수 없다. 식습관도 세상의 일부다. 그렇게 비건은 먹는 행위를 넘어서 자신의 가치관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비건 말고도 각자 식습관에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내가 비건을 한다고 해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인다면 그 또한 치우친 시각이 아닐까. 


내 세상을 넓히는 이유는 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기 위해서다. 내 세상이 크다고 자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을 조금씩 넓히다 보면 서로 만나는 부분이 생기고 다른 세상이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지 않을까. 오해 없이 소통이 잘 되지 않을까. 


https://www.worldatlas.com/articles/countries-with-the-highest-rates-of-vegetarianism.html

https://youtu.be/xcVRYMq3vG4


이전 05화 5. 두렵지만 더 깊이, 외로워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