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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Aug 15. 2018

4. 오르다 보면 내려가야 할 때가 온다

지금은 인도입니다

섣부르게 말했었다. 여기가 좋다고. 섣부르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오르고 내리고
끝없이 펼쳐진 언덕이 인생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그걸 부정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때가 아직까지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몸이 아닌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은 불과 얼마 전이다. 때는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는데 휴학하며 맛보았던 생활과는 완연히 다른 세상이었다.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누구도 결코 쉽지 않은 날들이 있을 거다. 나에게는 그때가 그랬다. 


오르막 길을 오르는 건 바쁘고 힘들다. 한편으로는 내려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괜찮다. 괜찮았다.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 숨이 차도 헉헉거리며 오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정상에 올라 행복한 순간을 상상하면 힘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오르기만 하면 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 내리막 길이 보인다. 무섭고 두렵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멈추기도 하고 뒤로도 가보았지만 더 아득한 내리막 길이었다. 나에게는 내리막 길이 보이기 시작할 때 운이 좋게도 여행을 다닐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내리막 길을 피하려고 간 여행이었는데 그곳에서 내리막 길이 오르막 길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내리막 길도 오르막 길도 그저 길이었다. 단지 종류가 다른 길일뿐이다. 내려갈 때는 오를 때와는 다른 방법으로 걷는 법이 있다. 다른 힘을 쓰며 가야 한다. 익숙해지면 안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며 내려올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오르막 길은 또다시 온다는 것도. 


행복해도 우울해도 하루는 지나간다

하루하루가 몸 상태에 따라왔다 갔다 한다. 어제는 행복했다면 오늘은 지독히 외로웠다. 하루는 그런 것이었다. 인도에 와서 매일 새벽에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계속 잘 되던 동작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안 되던 동작이 기적처럼 되는 날도 있다. 많이 먹고 잤는데 아침에 몸이 가뿐해서 요가를 마치면 상쾌한 날이 있는가 반면에 다음 날 수련을 신경 써서 건강하게 적당히 먹고 푹 자고 있어났는데도 몸이 천근만근인 날이 있다. 오르고 내리는 길처럼 내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면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 1년 간 공부를 해도 하지 않아도 비슷한 점수가 나와서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노력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어리석은 계산이다. 그렇게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며 한국 드라마부터 브라질 드라마까지 섭렵하고 닌텐도 게임에 빠졌으며 만화책방 단골이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후 생각지도 못한 성적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후회할 겨를도 없이 수습해야만 했다.

 

행복하고 우울한 건 내가 느끼는 기분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기분을 조절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내 기분을 결정한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하려고 계획한 일, 내게 주어진 일을 그냥 하는 거다. 물론 전제는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웠을 때 이야기다. 그래도 방황하는 순간마저도 방황을 끝내기 위한 노력을 그냥 하다 보면 적어도 고등학생의 나처럼 3학년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수능 공부를 하고 후회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행복한 날도 불행한 날도 언제나 찾아올 수 있다. 그때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후회를 통해 오르막 길에서나 내리막 길에서나 내가 선택한 길이다.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유독 힘든 날에는 결정을 할 때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럴 때는 주저 없이 엄마한테 물어본다. 요가원에 도착해서 일인실을 사용할지 이인실을 사용할지 고민 중이었다. 나에게는 비용 차이가 커서 결정하기가 어려워 엄마한테 종알 종알거렸다. 시차가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말아. 방을 선택하는데 완벽하지 말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내 생각보다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뭐든지 빨리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요가를 하며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 거기다 항상 완벽하고 싶어 하는 면도 있다. 그래서 남에게 나의 약한 부분이 노출되는 게 싫다. 엄마는 이인실에서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이번 기회에 가져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타지에서 엄마 말을 들으니 조금 너그러워지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조급해하지 말아, 딸아.
인생 생각보다 길다.


어릴 때는 그런 내 성격이 학교에서 꽤 유용했다. 조급함과 완벽 주의는 시험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급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조급함 뒤에는 불안이 숨어져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는 인생이 생각보다 길다고 알려준다. 지치지 않고 내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오르막 길이든 내리막 길이든 피할 수 없다. 그냥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길을 내 마음에 내키는 대로 완벽히 반듯하게 만들 수도 없고 더 빨리 가려고 한다고 빨리 도착하지도 않는다. 내가 할 일은 길을 매일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끔은 선택도 해가며. 약 한 봉 지보다 엄마 말 한마디가 치료가 되는 날이었다. 엄마와 대화 후 마음 편히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르고 내리는 인생의 길에서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고마워요, 내 엄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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