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도입니다
아침은 달콤한 초콜릿 팬케이크로
어제저녁에 우연히 자리를 함께한 친구들 사이에서 다음 날 아침 아주 맛있다는 초콜릿 팬케이크를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왔다.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가볍게 말했는데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초콜릿 팬이고 이들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으니 거절 할리 만무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느긋하게 씻고 일기까지 썼는데 약속 시간인 8시까지 한 시간이나 남아 와이파이가 유일하게 되는 1층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와이파이를 잡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컥.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어제 만났던 친구 한 명이 내려왔다. 그녀의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운 Elainne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초콜릿 팬케이크를 먹으러 가야 하는데 아무도 내려오지 않는다며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 찰나 다행히도 초콜릿 팬케이크 이야기를 꺼낸 장본인, Samanda가 내려왔다. 이렇게 우리는 셋이서 팬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카페에 도착하자 가운데 커다란 테이블에는 한 명이 자리를 잡고 분주하게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또 하나의 길고 폭이 좁은 테이블에는 두 명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메뉴는 모두 팬케이크로 통일되어 있었다. 달콤한 냄새까지 더해져 팬케이크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다. 먹고 나면 혈당도 한껏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 스친다. 확고했던 메뉴가 메뉴판을 보자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팬케이크도 먹고 싶지만 다른 궁금한 메뉴가 많다.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오트밀 죽과 에너지를 얻기 위한 에너지 볼 그리고 인기가 많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바나나 당근 케이크를 얼른 주문했다. S는 초콜릿 팬케이크에 허니 토핑을 추가하고 곡물 빵에 버터를 주문했다. E는 S의 팬케이크를 그대로 따라 주문했다. 추가로 과일 샐러드와 남인도에서 유명한 마살라 짜이도. 그렇게 하나하나 음식이 나오자 우리는 서로 맛보라며 나눠주고 함께 한 입 한 입 음미했다. 먹을 때마다 감탄의 소리가 나왔다. 특히 에너지 볼은 건포 도인 줄 알았는데 초콜릿이라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이미 호감이었는데 만나고 보니 완벽한 이상형인 기분이 이런 걸까. 정말 너무나 맛있었다. 초콜릿 팬케이크는 어떻고! 말이 필요 없다. 팬케이크를 즐겨먹지 않는 나도 자꾸만 손이 가는 메뉴였다. 한참 먹고 있는데 같은 요가원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다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련을 하느냐 일요일에만 쉬기 때문에 일요일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배가 고픈 그들에게 우리의 메뉴를 나눠주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의 음식이 나오면 한 입씩 나누며 먹었다. 마치 뷔페같이. 식사 시간은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이어졌다.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
나는 요 근래 얼굴이 나온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니 얼굴이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S와 E와 함께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걷기로 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거리를 걸었으며 공원을 발견하자 이끌리듯 들어갔다. 핸드폰이 고장 난 S와 사진 찍는 걸 나만큼 좋아하는 E와 꽃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순간순간을 담기도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하게 음료를 마시러 갔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음식과 요가였다. 주로 육식과 치즈와 같은 유제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특히 소고기는 한 때 나의 소울 푸드이기도 했다. 양념은 고기 본연의 맛을 해친다며 구워 먹는 생고기만 고집했었다. 초콜릿과 요거트도 고기와 다르지 않게 사랑하는 음식이다. 이렇게 사랑했던 음식과 관계가 달라진 계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식탁 위의 세상이라는 책을 읽고 작가에게 따로 메일을 보내며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는 매일 즐겨먹던 커피, 초콜릿을 단번에 끊었다. 아쉽지 않았다. 그 뒤로도 각종 음식 문화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책을 보며 나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도 꽤 되었다. 평상시에는 까탈스럽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많이 이야기를 하지 못 했는데 의외로 스타트업 커뮤니티에서 음식과 관련된 활동 하며 이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첫 번째 계기로 단번에 커피와 초콜릿을 끊었으나 단 한 권의 책으로 판단할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미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되었고 공정무역 초콜릿을 찾기도 하였지만 다시 원래 입맛대로 먹기 시작했다. 두 번째 계기는 병에 걸리면서였다. 어쩔 수 없이 카페인이 함유된 모든 음료와 유제품은 물론 고기도 끊어야만 했다. 이 사실을 마주하고는 처음에는 부정했다. 이거 먹어도 나을 수 있다는 합리화를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먹고 속이 아파 며칠을 못 자니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져 갔다. 두 번째 계기는 첫 번째와 달랐다. 첫 번째 계기는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을 억제했다면 두 번째 계기는 내 몸의 반응에 귀을 기울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멀리하면서 가족들에게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이건 몸에 좋지 않은데 그들도 나와 같이 먹지 않길 바랬다. 지금은 음식은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의 몸에 맞게 먹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에 상대방이 나와 같을 것을 마음속으로라도 기대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각자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요가에 대한 이야기
S는 잘 되지 않는 요가 자세에 대해서 말했다. 서양인 몸의 구조 때문에 안 되는 동작이 있는데 인도에 처음 왔을 때 선생님이 안 되는 동작을 억지로 하게 했다가 다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도 요가를 하면서 나는 안 되는 동작인데 옆 사람이 하고 있으면 조급해져서 억지로 나를 밀어 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요가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 요가를 다르게 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너의 요가를 해라! 너는 왜 자꾸 다른 사람을 쳐다보니?
나는 요가를 할 때뿐만 아니라 살면서 남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나만 몰랐다. 남을 의식하며 비교하고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고 스트레스를 주는 날들이 이어졌었다. 요가를 하며 내 삶의 태도까지 알아챌 수 있었다. 삶의 태도가 반영되어 요가 수련에 그대로 묻어 나온 거다. 지금은 수련을 할 때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함께 숨을 쉬며 수련하는 공기가 좋지만 동시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각자 가진 한계와 속도가 다르다. 요가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요가가 좋다. 내가 삶 속에서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요가를 하며 알아차리고 깨닫고 고쳐나갈 기회를 준다.
함께 나눈 음식과 요가에 대한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 방법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시작된 점심과 대화
나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우리의 점심이 3시쯤 되자 다시 시작되었다. 오토 릭샤를 타고 이탈리안 식당을 찾아갔다. 일인 일 피자를 주문하고 S가 추천하는 망고 치즈 케이크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이제부터는 결혼에 관한 이야기. 미국인이지만 터키에 살고 있는 E와 유럽에 살지만 여행을 다니는 S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딜 가나 똑같은 듯싶지만 또 다른 게 문화다.
돌아와서 집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타이밍을 놓쳐버릴 것 같았다. 결심이 서자 마이솔 안에 있는 부촌 마을 고쿨람으로 무작정 갔다. 서울이 마이솔이라면 고 쿨람은 연희동 정도 되는 것 같다. 깨끗하고 고급 주택이 많고 건강한 음식과 요가원들이 즐비하다. 그곳에서 나는 소개받고 소개받은 인연을 통해 집을 구했다. 다소 비싼 가격이었으나 방이 마음에 들고 더 이상 집을 구하는데 힘을 쏟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이어지는 인연
이사를 마친 후 늦은 저녁에 한국 인연 한 분을 만나기로 했다. 중간에 시간이 비어 중국 친구가 초대한 파티에 응했다. 중국 친구인 Y는 아침에 우연히 카페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파티 주인공이 한국 사람이라고 하며 아냐고 물어본다.
그 한국 사람이 이 한국 사람이었어?
Y가 말한 한국 분은 늦은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 그 한국 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전화가 왔다.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늦은 저녁이라고 한다. 이런, 파티는 어제였고 Y는 착각을 했던 것!
어찌 되었든 다 같이 만났으니 잘 된 일이었다. 케이크를 준비해서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많은 추억을 맛있게 쌓았다. 그래서 나는 벌써부터 여기가 좋다.
행복한 순간은 사람과 진심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