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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Aug 08. 2018

3. 바나나 초코 스무디에 열린 진솔한 대화

지금은 인도입니다

어느 도사 집에서

그를 만난 건 어느 한 도사 집이었다. 

걸어서 40분쯤 되는 거리를 미련스럽게 매연을 다 맞아가며 꾸벅꾸벅 걸어갔다. 10퍼센트쯤은 걸어갈 수 있을 거리라고 생각했고 10퍼센트쯤은 내가 걷는 걸 좋아하니까 그리고 나머지 80퍼센트는 돈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라면 걷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혼돈의 교통 상황과 검은 매연을 뿜고 다니는 차들 때문에 40분 남짓한 거리는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언젠가 한번 들리겠다는 내 말이 무겁게 느껴져서 들린 곳이었다. 다행히도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주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홀가분하게 나와 돌아가는데 지치고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이만큼이나 이미 왔는데.


그래서 들어간 도사 집이었다. 소화력이 나아지고 있어서 밀가루도 먹고 튀긴 음식도 먹고 있던 터라 들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튀긴 도사를 보니 살짝 걱정이 돼서 나오려고 하던 찰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여기 앉아.

나는 바로 주인장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메뉴를 보니 아는 메뉴가 없다. 도사 집이라고 하니 도사를 하나 시켰다. 뭔가 인도 스타일의 음식일 것 같아 마살라 도사를 주문했다. 아직도 마살라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음식을 기다리는데 앞자리에 앉아 무언갈 먹고 있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메뉴를 추천해준다. 세 가지씩이나. 나중에 시켜먹어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머리에 담고 고맙다고 하였다. 그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나에게 요가 수련을 하러 왔냐고 묻는다. 동시에 음식이 나와서 짧게 대답한 후 음식에 집중하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도 되냐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정말이지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내가 먹는 동안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밥을 먹으며 심심하지는 않았다. 


마살라 도사. 기름지고 맛있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며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 바로 옆 집이었다. 이럴 수가! 

그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내 체력이 그가 말하는 체력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좀 더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나도 무례하지 않게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요가를 시작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요가 매트는 어디서 사야 하냐는 질문까지. 요가 매트를 따로 가져오지 않아서 나는 요가 매트를 사야만 했다. 여러 요가 용품점을 둘러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만두카 요가 매트는 나에게 명품과 같은 금액이라 살 수 없었다. 그는 친절히 정보를 공유한 후 자신도 그걸 쓰고 있다며 보여주겠다고 했다. 집이 옆이니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이 이렇게 힘들다니.


도사가 맛있었지만 매웠기 때문에 다 먹지 못하여서 살짝 배가 고픈 나는 원래 초콜릿 디저트를 사러 갈 참이었다. 그래서 빨리 매트를 보고 초콜릿 디저트를 먹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다시 그의 말문이 트였다. 그도 자신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는 것 같다며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지금 살짝 배가 고파 디저트를 사러 갈 생각에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우니 가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이 아침마다 먹는 바나나 스무디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였다. 오, 그래? 그렇다면 만들어줘! 

본능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나의 귀를 열게 해준 바나나 + 우유 + 초콜릿 프로틴!


바나나 초콜릿 스무디는 달콤해

바나나와 우유 그리고 초콜릿 프로틴을 넣은 건강한 스무디.

한잔을 딱 마시고 나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와우. 너무 맛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있었고 우리는 요가부터 시작해서 실제 삶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개인적인 깊은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나 또한 고민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요가 책도 추천해주고 요가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시작이 반이라면 끝은 전부다

이제 가보겠다고 하자 그가 전혀 달콤하지 않은 말을 한다. 

 Your lip looks so soft. 

내 대답은 

No way, my lips are too dry these days so I have to buy a lip balm really.

진짜다.


모든 마무리가 중요한 법. 이제 바나나 초콜릿 스무디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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