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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Aug 30. 2018

5. 두렵지만 더 깊이, 외로워하다

지금은 인도입니다 

외로운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부터 줄곳 북적이는 공간에서 살았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은 방이 충분하지 않았다. 혼자 방을 써본 적은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전부였다. 가족 중에 공간을 온전히 혼자 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는 살을 맞대로 사는 게 마냥 좋았는데 크면서 혼자만의 공간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에 있지만 끝과 끝에 있다는 이유로 기숙사에 살았다. 2인실에 살아서 그것도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유럽 여행을 가고 호스텔에 지내며 가끔 호텔에 가기도 했지만 내 공간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고 싶었다.


외롭지 못했다

워킹홀리데이 대신 중국어를 배우러 간다는 결정을 했을 때 부모님은 동생과 함께 갈 것을 부탁했다. 동생과 함께 간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온전히 홀로 지내고 싶었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이유와 나만의 계획을 제치고 나는 동생과 함께 중국에 갔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동생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함께 가기로 했다. 결론은 중국에서 동생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 못했다. 그리고 인도에 왔다. 


처음이다

인도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중국 기숙사보다 깨끗한 방에 홀로 남았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도 요가 수련 중이라 조용히 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혼자 있는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면 무서워서 사흘 내내 불을 켜고 잠들었다. 처음으로 느낀 외로움이 낯설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과 대화할 때면 기쁨과 행복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진심으로 즐거웠고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면 다시 외로웠다.


왜? 나는 알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리 깊은 정을 나누었다 해도 매일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지금까지 독일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그립고 우연히 만난 아르헨티나 친구들이 보고 싶고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근데 그러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내 곁에 평생 있어줄 사람은 나 스스로 말고는 없다. 


SNS를 지우다

그러는 와중에 인터넷에 감정을 솔직하게 올리지 않았다. 외로운 감정 자체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낯설어 무서웠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감사하다. 그래서 인터넷에 글로 내가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오롯한 감정을 분출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서 한껏 키워서 흡수하고 싶었다. 안아버렸다.


불을 끄고 잠이 들 수 있게 되자 나의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F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이야기를 적었다. 4줄 남짓한 짧은 글이었지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이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는 회사를 1년 정도 다니며 모은 돈으로 9개월간 항해를 떠났다. 나와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느낌을 준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일본에서 살 때 비슷한 경험이 있어. 호스트 가족과 함께 살고 많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과 의미 있는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고 혼란스러웠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엄청 외로웠어.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다 보니 명상을 시작했고 내 삶을 바라보았어.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일기도 쓰면서. 이렇게 하면서 나는 어떤 상황에 있든 나 스스로 편해졌어.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행복하고 없어도 행복해. 그건 더 이상 내게 큰일이 아니야. 물론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 잠시 멈춰서 숨을 쉬고 몸을 느껴봐. 


요가를 하면서 외로움을 받아들이다

요가를 하며 숨을 느끼고 몸을 느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요가를 해왔지만 온전히 몸을 느끼는 순간은 드물었다. 요가 매트 밖 세상에 더 무게가 실려있었다. 수련이 끝나면 늦지 않게 어디를 가야 하고 뭐를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했다. 인도에 와서도 습관처럼 나는 바쁘게 생각했다. 인도 일정이 끝나면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호흡을 하다가 갑자기 현재가 두려워서 현재를 마주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재가 두려웠다. 두려움을 느끼고 싶지 않고 두려움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비로소 아침저녁으로 매일 숨을 쉬며 조금씩 두려움을 마주 보게 되었다. 요가를 하며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숨을 쉬고 내쉬며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두려움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아프지만 온전히 삼키는 게 중요하다

몇 년 전,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가족 중 한 명을 잃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프고 힘든 순간이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사흘 동안 처음으로 장례식에서 먹고 잤다. 허무했다. 그리고 거부했다. 눈물이 많아 하루 종일 울다가 갑자기 두려웠다. 이렇게 울다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울기보다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슬프지 않도록 말을 많이 하고, 먹고, 잠을 잤다. 전화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수다를 떨며 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 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 척 스스로를 속였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마음이 아플 때 아프지 않으면 몸까지 아프다는 걸. 아파야 할 때 아픔을 견디면 성장통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렇지 않으면 아픔이 나오지 못해 속에서 곯아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피터팬이다

피터팬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어른이 되지 않고 어린이로 남은 피터팬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어른이 되어야 할 시기에 어린이로 남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동화 속에서는 어린이로 남아 평생을 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일 때 가지고 있던 순수함을 조금씩 내어주고 현실을 살아내며 자신만의 아픔을 겪어 어른이 되어간다. 어릴 때는 모든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지만 어른이 된 현실은 모든 될 수는 없다. 그중 하나든 여러 개든 선택해야 하고 선택을 하면 다른 걸 포기해야만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위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거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일 수도 있고 그만큼 제일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일 수도 있다. 사실 두 가지 모두 맞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한국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피터팬으로 살았다. 


죽기 싫어질 만큼 살고 싶다

왜 사냐고 물어보면 그냥 태어나서 산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저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하면 죽기 싫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늘을 살고 싶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내 자리만큼은 내가 만들어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힘을 키우고 다지려고 오랜 기간 어린이로 피터팬으로 살았다. 이제 나에게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포기를 하겠다. 외로움을 건너고 두려움과 맞서며 현재를 살자! 


인도에서 요가를 하게 되어 기쁘다. 나의 선택을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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