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도입니다
요가를 좋아하게 된 후로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인생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아 숨이 막히면 나는 인도에 갈 거야
라는 말이었다. 버릇처럼 중얼거리기만 했을 뿐 인도에 가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인도를 다녀왔던 경험과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진다는 강도 높은 요가 수련에 대한 두려움. 깨끗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서울 생활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힘들다고 했지만 여기서 더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 힘들면 못 버틸 것만 같았다.
인도는 가기 싫어
몇 년 전, 친구와 인도를 다녀왔었다. 사전 정보 없이 끌린다는 이유로 선택한 인도에서 우리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다. 떠나기 전 더운 나라인 줄만 알고 반팔과 잠옷만 챙겨 갔는데 한국만큼 추운 날씨에 옷을 여러 개 사서 껴입고도 추위에 덜덜 떨며 다녔다. 사막을 가는 기차에서 모래를 입에 머금은 채 일어나고 밥을 먹을 때 바퀴벌레와 쥐가 지나다니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여행을 마치며 친구와 나는 "젊은 날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다시 가지는 않겠다."라고 인도 여행을 정리했다. 그 뒤로도 인도는 그립지 않았다. 가끔 추억으로 떠오를 뿐이었다.
지금은 인도입니다
인도로 온 이유는 오로지 요가 때문이다. 몸이 아프면서 숨을 제대로 쉰다는 게 힘든 일인지 처음 알았다. 숨을 쉬지 못해서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야 했고 숨이 막혀 잠에서 깨곤 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팠다. 숨을 제대로 쉬고 싶었다. 이미 병원은 쇼핑하듯 여러 군데 다녀보고 약도 양약부터 한약까지 다 먹어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을 들여다보고 숨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제일 하고 싶고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제일 하고 싶은 일은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었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새로 배우는 일이었다.
인도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비용을 생각해야 했기에 비행기도 여러 번 갈아탔다. 남경에서 광저우로 가서 하루를 보내고 새벽 비행기로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 인도 벵갈루루에 도착해서 차를 타고 4시간을 달려 드디어 마이소르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인도에 와 있다.
인도에서 첫날은 길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항에 오후 11시에 도착해서 나만의 작은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은 새벽 4시였다. 피곤해서 잠조차 오지 않았다. 2시간 동안 침대에서 눈을 뜬 채 만채 누워있다가 6시쯤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기운을 차리고 싶어 8시쯤 아침을 먹고 나니 몸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다시금 속이 막혔다. 다시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오후에 ATM에 가서 한껏 돈을 뽑고 유심카드를 사려고 했다. 유심카드를 산다는 내 말을 들은 인도인들은 돈을 자꾸 요구했다. 자신이 사다 주겠다며. 순진한 건지 내가 순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돈만 요구하다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직접 사러 나섰다. 여러 군데를 들리고 나서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유심 카드를 사고 방을 둘러보고 다시 요가원에 왔다. 요가원에서 제공되는 방은 알고 보니 시세보다 훨씬 비쌌고 내가 있고자 한 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른 방을 구하러 다녔다.
저녁이 돼서야 숨이 트이고 입도 트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빵빵거리는 소리와 검은 매연을 맡은 탓인지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빨리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외로움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저녁을 먹을 때 예기치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에서 살다가 멕시코에서 요리사를 하고 있는 그녀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뒤이어 들어온 이탈리안 요가 선생님도 함께 이야기를 했다. 아침과 점심도 비슷한 음식을 먹었지만 저녁이 특별히 맛있게 느껴져서 한 번 더 먹었다. 그녀는 내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부터 좋다.
두려움이 기대로 바뀌는 순간은 사람을 만날 때다. 사람이 있어 외롭지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