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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Sep 15. 2018

8. 음식이 그리워질 때

지금은 인도입니다

외국 가면 현지 음식 아닌가요?

해외여행을 가면 한국 음식점은 찾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한식은 엄마가 요리한 음식이 제일 맛있다.

한식이 그다지 생각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입맛을 들여놨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엄마가 해준 한식이 가장 맛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한식은 잘 사 먹지 않는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매일 한식을 먹었던 적은 없었다. 서울은 먹거리가 다양하고 외식이 발달한 도시라 일본, 멕시코, 인도,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음식을 다양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늘 뭐 먹을래? 물어보면 점심에는 파스타 먹었으니까 저녁에는 일식을 먹자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메뉴 선택에 있어 자유롭다. 어릴 적부터 집밥만큼이나 배달 음식과 외식 문화에 익숙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갔을 때, 현지 음식이 어색하지 않았다. 한 번쯤 서울에서 먹어본 음식이었다. 게다가 현지 음식을 현지에서 먹는다니 더욱 즐거울 수밖에! 어디든 그 나라 음식이 맛있는 법이니 한국 음식을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중국에서 제일 자주 먹었던 마라탕 & 훠궈
인도에서는 커리를 주로 먹었다.
내가 원하는 찰옥수수를 찾아서 

중국에서부터 조금 길게 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식을 사 먹은 적은 딱 세 번뿐이다. 남들이 그리워한다는 떡볶이도 그립지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강원도 산지에서 직송한 찰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중국 생활 초반에는 우연히 크고 쫄깃한 옥수수를 발견하여 비록 강원도산 찰옥수수는 아니지만 맛있게 매일 아침을 옥수수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달 뒤 아저씨가 업종을 바꾸는 바람에 다른 옥수수를 사 먹으며 방황하다가 결국 맛있는 옥수수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찰옥수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옥수수를 사 먹었고 그때마다 실망했다.  


중국 생활 정착을 도와준 아저씨네 옥수수

오프라인에서 찾을 수 없다면 온라인이라는 세상이 있으니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중국에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는 타오바오를 밤낮으로 열심히 들여다보며 옥수수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찰진 옥수수를 찾기 위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중국어 사전을 찾아가며 검색을 하고 후기를 모조리 읽었다. 나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찰지고 신선한 옥수수를 찾는 거였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옥수수는 세 군데로 간추려졌다. 지문만 인식하면 되는 간편한 타오바오 주문 덕분에 나는 화면에 손을 세 번 대고는 세 박스를 내리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주문한 옥수수는 생각한 것보다 빨리 먹었다.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다음 옥수수는 맛있겠지 하는 기대로 먹다 보니 금방 없어졌다. 비워진 박스만큼 내 마음도 허전해졌다. 결국 나는 찰진 강원도산 옥수수를 찾지 못했다.


타오바오에서 주문하여 먹은 옥수수

인도에 와서도 다르지 않았다. 대놓고 찾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여전히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쫀득한 옥수수를 찾고 있었다. 누가 옥수수라는 단어를 언급하면 귀가 쫑긋해서 어디 어디하며 둘러볼 정도였다. 그렇게 찰옥수수를 탐닉하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옥수수를 굽고 있는 수레를 발견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옥수수를 굽기보다는 태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옥수수면 된다. 첫 한 입은 맛이 없었다. 내가 기대하던 맛과 달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다 먹었다. 옥수수를 먹었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인도 길거리에서 먹은 첫 번째 옥수수

그러나 만족할 수 없었다. 운명인지 나에게 다른 옥수수 수레가 보였다.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큰 사이즈로 옥수수를 샀다. 이번에는 태우지 않은 찐 옥수수였다. 먹기 좋게 알알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수저를 이용해서 크게 한입 입에 담았다. 탱글탱글한 옥수수가 아직 더운 김을 머금고 있었다. 탄수화물은 뜨거울 때가 맛있으니 맛없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찾는 찰옥수수는 확실히 아니었다. 초당 옥수수같이 수분을 가득 담은 알이 터지며 달콤했지만 찰옥수수와 다른 옥수수다. 나는 구수한 냄새가 나며 찰져서 먹다 보면 턱이 아픈 그런 찰옥수수를 원했다.

인도 길거리에서 먹은 두 번째 옥수수
내가 그리워하는 맛

배가 부를 때도 옥수수를 발견하면 시도할 만큼 열정적으로 도전했고 그때마다 실망하기를 여러 번, 마침내 


내가 찾던 건 찰옥수수만이 아니었어!

나는 받아들였다. 강원도에서 직배송한 구수하며 달콤하고 찰진 옥수수는 한국에서 말고는 찾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내가 원하던 맛은 찰옥수수가 아닌 추억을 담고 있는 옥수수 맛이었다는 것을. 나는 어릴 적부터 추위 못지않게 더위를 잘 탔다. 추워도 겨울은 좋아했지만 여름은 피하고만 싶은 계절이었다. 여름을 떠올릴 때마다 지치고 피곤한 느낌이 들어 힘이 빠졌다. 그런 여름을 매년 잘 견디게 해 준 건 순전히 찰옥수수 덕이었다. 여름날 장면에는 할머니 댁 거실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앉아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옥수수를 한 솥 삶아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던 순간이 액자처럼 소중히 걸려있다. 아무 걱정도 없이 한 알 한 알 떼어먹다 보면 어느새 3~4개는 거뜬히 먹곤 했다. 그때 추억이 솔솔 불던 바람으로, 고소한 냄새로 자꾸만 떠올라 이번 해외 생활에서 계속 옥수수에 집착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차리다 

내가 그리워 한 건 편안한 일상이었다. 여름날 늘어져서 옥수수를 먹는 나른한 일상. 음식이 매개가 되어 과거를 추억하게 했고 그걸 알아채지 못한 나는 매개체인 음식에만 집착했다. 이는 편안한 일상을 그리워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에서 비롯되었다. 

일상을 그리워하면 실패라고 생각했다. 

해외에서 잘 해내고 잘 지내는 내가 되고 싶었다. 안정적인 걸 안주한다고 착각한 나는 열심히 할 무언가를 찾고 열심히 무언가를 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내 삶이 매 순간 치열했던 건 아니지만. 그런데 해외까지 나와서 열심히 지내야 할 순간에 한국에서 일상이 그립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해준 한식이 그립다는 것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것도, 비자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한국이 편하다는 것도,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립다는 것도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식 없이도 잘 지내고 친구는 외국에서도 사귈 수 있고 열심히 능력을 키우고 영어로 소통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찰옥수수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엄마 된장찌개 & 간단하게 계란후라이에 밥을 먹어도 깨소금이 한국산이면 충분해-
요가는 마음을 보는 수련이다

이를 알아차린 건 명상 덕분이다. 요가를 하다 보니 요가를 왜 운동이 아닌 수련이라고 하는지 매일 깨닫는다. 요가는 내 생각보다 마음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인도에 국제 요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왔지만 하루하루 지내며 공부하다 보니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다. 교육 과정에는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프라나마야 수업이 있다. 호흡법 수업이지만 명상의 효과도 있다. 매일 한 시간씩 수업을 하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차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거부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알아차린 순간은 괴로웠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온몸으로 거부하려 했지만 그러면 스스로 지칠 뿐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나는 내가 안정된 삶을 그리워한다는 걸 인정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국이 그립고 보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왔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 같아 창피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가족과 친구들은 빨리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음식이 그리워질 때, 음식이 미친듯이 먹고 싶을 때 혹시 다른 마음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요?
한번, 알아채지 못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나에게 시간을 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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