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도입니다
매주 한 가지씩, 특별한 활동
사일런트 산책
첫 번째 토요일을 맞이했지만 주말을 맞이한 기쁨은 없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으로 꽉 찬 일정을 보내면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에만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그래서 첫 토요일이 되어도 별 감흥은 없었는데 철학 수업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에 따라 오후 요가 수련이 4시로 앞당겨졌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눕고 싶다고 했던가. 오후 요가 수련을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실제로 점심과 수련의 간격이 짧아져서 소화 시킬 틈이 없었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발걸음을 옮겨 오후 수련을 하러 갔는데 갑자기 오늘은 야외 활동이라며 다 같이 나가자고 하였다. 주제는 소리 없는 산책. 다 함께 걷지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자신의 발에만 집중하면서 걷는 동시에 절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설명을 들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일단 따라나섰다. 처음 15분간은 혼돈과 매연이 가득한 인도 길거리를 걸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명상하라는 건가보다 하며 규칙대로 발에만 신경을 쏟아 걷고 있는데 눈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나타났다.
이곳은 시끄러운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매연과 쓰레기 태우는 연기도 나지 않는다. 평화로운 곳이었다. 핸드폰도 들고나가지 않았고 이야기도 할 수 없으니 평화로운 물과 산을 눈으로 담고 터져 나오는 감탄은 속으로 할 뿐이었다. 우리는 일정치 않은 간격으로 각자 걷고 있었다. 말없이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문득 외면했던 질문을 했다. 내가 지금 정말 힘든 건 무엇인지. 그러다가 과거가 떠올랐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과거의 나와 가족을 다른 사람 보듯이 바라보았다. 이제야 바라볼 수 있었다. 상황에 녹아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지난날들을 떨어져서 제대로 바라보니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은 말을 했던 시간이 지나고 마이소르 대학교를 가로질러 요가원에 돌아왔다. 수련자 중 사진을 찍어주신 분이 있어서 감사히 받을 수 있었다.
사진 찍히는 요가 클래스
인도에서 여러 가지 특별한 경험을 하였는데 모두 좋은 의미의 특별함은 아니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표정을 지으며 'It is so special. 이건 정말 특별해'라고 하면서 서로 인도의 특별함을 이야기하곤 했다. 나중에 인도에서 경험한 특별한 것들 중 특별한 마사지에 대해 쓰고 싶다. 이번 요가 수련 중 진행된 사진 촬영도 '특별한' 활동 중 하나였다.
수련을 하는 공간에서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강조했던 엄격한 규칙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서 웃기라도 하면 눈짓으로 경고를 받아야 했다. 점차 익숙해져 가며 이제 소곤거리는 소리조차 허용이 안된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고 적용하고 있는 공간에서 우리한테 예고도 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곤 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예고 없던 사진 촬영과 같이 동의 없이 페이스 북에 올라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몸을 정화해준다는 크리야 네티, 정말인가요?
네티 크리야란 요가에서 호흡 수련을 준비하기 위한 정화 수련이다. 6가지 크리야 중 하나이며 콧 속을 정화하는 기술로 요가 파라디피카에도 나와있다. 소금물을 한쪽 콧구멍으로 넣어서 다른 콧구멍으로 빼내어 콧구멍과 연결된 통로들을 씻어낸다. 이 방법을 통해 몸을 더 건강하고 깨끗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독소와 호흡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다.
네티 크리야라고 불리는 정화 수련을 하기 전에는 음식 섭취를 하면 안 돼서 오전 수련 시간을 대체하여 진행했다. 홀에 내려가니 주전자 모양의 플라스틱과 고무끈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설명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가 시범을 본 후 우리는 줄을 서서 소금물을 받았고 고무끈을 넣어 소독을 했다. 고무끈은 이따 내 콧 속으로 들어가서 목구멍으로 나올 거니까 깨끗이 씻어주었는데 깨끗이 씻겼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걱정을 하며 소금물을 한쪽 코 속으로 넣었다. 봤던 대로라면 소금물이 다른 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숨 쉬는 법을 몰라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며 소금물은 자꾸만 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코로 물을 마시는 느낌이다. 의도치 않게 빈 속에 소금물을 잔뜩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소금물로 정화를 마치고 나면 한 단계가 더 남아있다. 소금물로 깨끗이 소독하여 준비해둔 고무끈을 콧구멍으로 넣어 목구멍으로 빼내는 거다. 나는 끈이 중간까지 밖에 들어가지 않아 여러 번 실패하다가 해내고 말겠다는 이상한 오기가 생겨 끝내 도움을 받아 두 구멍 모두 성공했다. 뿌듯하기는 했지만 크리야를 해냈다는 뿌듯함보다 이제 절대 안 해야겠다는 결심이 스스로 경험해서 알아낸 사실이기에 뿌듯했다. 크리야 이후로 설사를 했고 배가 쓰렸다. 빈 속에 들이킨 소금물 때문에 크리야의 효과는 보지 못했다.
특별한 아침식사라고 해서 기대했잖아요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은 인도의 독립기념일이다. 이 날은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축제 분위기가 되어 깃발 행진도 한다고 설명하며 우리에게도 특별한 아침식사가 제공될 거라고 하였다. 어찌나 기대가 되던지 혼자 아침 식사 메뉴를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과일이 다양하게 듬뿍 나오려나? 커리에 야채가 많이 들어있으려나? 아침부터 요리가 나오는 건가!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평소 한 가지만 나오는 이들리는 특별하게 세 가지가 나왔다. 보통 가운데 있는 하얀 이들리만 나오는데 당근이 들어간 주황 빛깔 이들리와 초록색 이들리가 추가로 나왔다. 어제 먹고 남은 야채 없는 커리는 덤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요가 동작을 뽑내 봐
마지막 오후 수련은 굉장히 불편했던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이제 어느 정도 사진 촬영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있었고 은연중에 수료증과 관련한 압박을 주었기에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수업에서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기 위한 연출된 호흡 수련과 동작을 시켰고 우리는 실제로 호흡을 하다가 실제로 할 필요 없다는 말을 들어가며 사진을 위해 행동해야 했다. 요가를 하면 항상 강조하는 게 균형이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동작을 하고 나서는 반드시 왼쪽도 동일하게 동작을 해야 한다. 티칭을 하면서 한쪽만 했다가는 바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이걸 가르친 선생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에게 한쪽으로만 동작을 시킨 뒤 사진이 찍히면 바로 다른 동작을 또다시 한쪽으로만 하게 했다. 그렇게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한 명씩 나가 요가 동작을 뽐내며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물론 사진으로 남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진행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쪽으로만 동작을 해서 몸이 뻐근했다. 자리로 돌아온 후 다른 한쪽으로 동작을 하고 있으니 친구가 사진을 찍어줬다. 마지막 수련 이후로 우리는 말과 행동이 달랐던 그들에게 실망했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108번
졸업식을 하는 날 마지막 오전 수련에는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108번 한다고 공지했었다. 나는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지루해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할 때면 항상 줄어드는 숫자에 집중하며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했었는데 108번 한다고 하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108번을 한다는 건가 싶었다. 마음이 이러니 몸이 반응했는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배가 아팠다. 식은땀이 나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마지막 수업이니 가서 앉아있더라도 가고 싶어서 갔지만 시작하기 전까지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련이 시작되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하기 시작했다. 하는 동안 호흡이 점점 안정되고 아픈 배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수리야 나마스카라가 108번을 하는 동안에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좋아졌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좋다. 108번을 하는 동안 숫자를 세지 않았고 언제 끝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힘들고 지루한 순간이 왔지만 그냥 했다. 신기했다.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졸업식
드디어 걱정했던 시험도 지나가고 자격증도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시작이지만 일단 기분이 좋다!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
졸업식을 한 후에는 진짜 특별한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다른 요가원에서 자격증 과정을 한 친구와 대화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다른 곳에서도 졸업식 후 우리와 똑같이 먹었다고 한다. 자리에는 커다란 바나나 잎과 물이 앞에 놓여있었다. 물로 먼저 바나나 잎을 씻어내고 기다리면 순서대로 음식이 나온다. 주방에서 나온 사람이 음식이 담긴 커다란 통을 들고 직접 돌아다니며 우리 앞에 놓인 바나나 잎 위에 음식을 나눠준다. 능숙하게 서빙하는 아저씨는 속도가 빨라서 말하기도 전에 바나나 잎에 음식을 놔주기 때문에 먹지 않는 음식이 있으면 아주 재빠르게 안 먹는다고 외쳐야 한다. 끝난 건가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앉아서 먹는 뷔페가 마지막 특별 활동이다.
인도에서 느끼고 갑니다
마이소르에서 지낸 45일 동안의 경험을 한마디로 한다면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는다.
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서나 그러겠지만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좋았던 순간만큼 불편하고 불쾌했던 순간도 많았다. 그런데 내가 정해 놓은 방향과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45일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인도에 요가하러 와서 하기 싫어지는 순간에도 계속했던 이유는 해도 되는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했더니 정말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었다. 요가 동작도 호흡도 싫지만 조금 참는 인내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