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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Sep 26. 2018

12. 우연히 치앙마이에 요가하러 왔습니다

치앙마이 한달 살기

선택은 우연을 타고

인도 일정 후에는 발리 우붓에서 요가를 할 예정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한 달 동안 머물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까지 마쳤는데 발리에 큰 지진이 났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지만 자연재해는 피하기로 결정했다. 주변 친구들이 태국 치앙마이에 대해 명상과 요가를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이라며 칭찬 일색이다. 그렇게 나는 싱가포르행 티켓을 사면서 동시에 치앙마이행 티켓도 끊었다. 물가도 저렴하고 요가도 할 수 있으니 안 갈 이유가 없지. 우붓 대신 치앙마이로!


작은 치앙마이 공항에서 나와 우연히 발견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구루를 찾아서

나에게 이번 여행은 꽤나 무거운 선택이다. 중국에서 1년간 공부할 계획이었는데 반절만 마친 채 요가를 하러 인도로 떠나오니 마음속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반전 드라마같이 부담감을 극복하고 진정한 구루를 만나는 상상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구루는 영적인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한다.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구루에 대한 환상은 깨져버렸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내면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마음에 맞는 인연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인도에서 만나지 못한 구루에 대한 미련으로 나는 어딘가에는 있지만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구루를 찾기 위해 평소처럼 구글링을 열심히 했다. 유명한 선생님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뉴욕 같은 대도시에 있었다. 구루 찾기를 잠시 보류하고 치앙마이에 있는 선생님을 찾았고 바로 메일을 보냈는데 이제 치앙마이에 안 계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실망했다. 내 모든 걸 걸고 가는 치앙마이인데 내가 찾는 선생님이 없다니 방향을 잃어버렸다. 방콕에 유명한 선생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콕을 가야하나 매일 밤 고민했다.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그걸 가끔 다시금 읽어본다. 매일 밤 고민을 하다가 일기를 꺼내어 읽어보고 있는데 여기 적은 것처럼 영적인 구루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한다는 문장을 읽은 순간 싸한 느낌이 들었다. 평생 함께할 연인을 당장 며칠 뒤 짠하고 만나고 싶어 구글링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한국을 떠나오면서 이제 스스로를 기다려주고 꾸준히 쌓아가자는 수많은 다짐과 실천은 뒤로한 채 다시 조급해진 마음은 성급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가기 전에 요가 수련을 열심히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에 구루를 찾고 있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구루가 아니었다.


다시 천천히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잘한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사회를 싫다고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억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요가 수련을 하면서 마음을 바라보고 매일 나아진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점이 오니 에고가 불쑥 올라오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빠르게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스스로를 다시 쪼이고 있었다. 빠르게 가는 길은 없다.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함을 시간 속에 쌓는 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바보 같은 구글링을 그만두고 처음 간 요가원에서 매일 아침 수련을 하고 있다.


타패강이 있는 치앙마이 올드시티


소확행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치앙마이

집을 구하며 일주일하고도 반을 보내고 나서야 치앙마이에 한 달 더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결정적 이유는 바로 하늘이었다. 어릴 적부터 하늘을 자주 봤다. 초등학생 때 하늘과 구름으로 시를 썼는데 그 순간 그 느낌이 아직도 마음에 담겨 있어 하늘과 구름을 보면 순수해지는 것 같다. 치앙마이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는데 나는 그중 네모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올드타운을 선택했다. 성벽을 따라 해자라는 물길이 흐르고 있는데 언제나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올드타운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높은 빌딩이 없는 치앙마이 올드시티에서 매일 하늘을 보며 오늘도 행복하다.


매일 5시에 눈을 뜨면 사방이 깜깜하다. 주변 식당과 가게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간판이 없어서 불빛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으면 6시부터 서서히 밝아진다. 해가 떠오르면 주섬주섬 요가원으로 향한다. 길거리에는 새들이 많다. 거리에 떨어진 나뭇잎과 쓰레기를 청소하는 분들도 가끔 마주친다. 물길을 따라 30분 남짓 걸어가면 요가원에 도착한다. 걷는 동안 최대한 귀를 열고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를 보려고 한다. 단연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시간이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 소확행. 이러한 단어가 있기 전에도 우리 곁에는 소확행이 항상 머물렀을 것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며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 지쳐 힘들어진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 뿐. 그래서 우리는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인지하고 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선명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다. 일요일 아침 서늘한 온도를 느끼며 가족과 함께 했던 아침 식사 시간이다. 고소한 냄새와 편안한 일상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이다. 아직도 비슷한 온도를 감지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때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고요한 치앙마이 생활이 떠오를 것 같다. 조급하게 왔지만 느긋하게 가는 법을 알려주는 치앙마이에서 일상을 보내게 되어 감사하다.


해가 지는 순간


행복은 순간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행복한 순간은 오래도록 나에게 힘을 준다.

치앙마이 생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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