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한 달 살이
취미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야
취미 부자인 아빠 피를 물려받아 나는 재벌 2세는 아니지만 취미 부자 2세쯤은 된다고 할 수 있다. 취미 파일 중 운동 카테고리만 해도 여러 가지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다양하게 배워왔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킥판으로 엉덩이를 맞아가며 물에 던져지면서 지금 보면 많이 터프한 방법으로 수영을 배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물이 무서워지는 대신 수영은 코로 물을 마셔가며 배워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도 태권도장을 꾸준히 다녔던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서 체육 시간에 목숨 거는 중학생 시절도 취미와 함께 잘 지내왔다. 그러다 수능에 집중해야 한다는 고등학생 시절이 왔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았지만 모두 중단해야 했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운동을 멀리하며 체력은 점점 떨어졌다. 본격적으로 취미 생활에 다시 발을 담그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다. 수영, 필라테스, 헬스, 플라잉 요가, 킥복싱, 크로스 핏, 폴댄스, 클라이밍, 러닝, 테니스 등 어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운동이 없어서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두 하고 싶은 욕심에 '내가 돈만 많으면 모조리 등록해놓고 매일 다른 운동을 즐길 수 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어 근처에 있는 종합 피트니스센터를 찾았다. 아쉬움은 이내 뜨악하는 회원비를 듣고 사라졌다. 새롭게 운동을 배울 때면 항상 이 운동은 너무 재미있어서 평생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졌지만 다른 운동을 배우고 싶어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한 운동에 익숙해질 때쯤 다른 운동으로 넘어가다 보니 서서히 운동에 발 담그는 취미에 권태기가 오기 시작했다. 새로움에서 오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꾸준히 익혀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다가올 시간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서 하는 운동이어도 주어진 한두 시간이 언제 끝날지 시계를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정된 시간 속에 있는 다양한 선택지는 기회로 포장되어있는 고통스러운 포기였다. 나는 모든 운동을 즐길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를 꾸준히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 기회를 버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모든 운동을 즐겼지만 어떤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잘하고 싶었다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로 요가를 시작하면서도 잘하고 싶은 욕심이 흘러넘쳤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운동은 그런 욕심을 장려했다. 그래서 러닝을 하다가 발목이 아파도 물리치료를 받아 가며 꾹 참고 뛰었고 헬스와 킥복싱을 오버 트레이닝하다가 토한 적도 여러 번이다. 요가도 똑같은 방법으로 했다. 삼 개월 후, 부상을 당했다. 요가를 그 길로 중단했다. 이거 위험한 거였잖아!
다른 운동도 요가도 나에게 부상을 장려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모두 내 잘못이었다. 내 몸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 더! 한 번 더!'를 외치는 다른 사람 목소리에 내 욕심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무시한 움직임은 결국 스스로 다치게 했다. 내 잘못을 요가로 다른 운동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눈이 먼 내 잘못이었는데.
지금 당장 아니어도 괜찮아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할 때 같은 헬스장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근력 운동과 필라테스를 매일 꾸준하게 하고 있었다. 건강을 잘 챙기던 친구는 옆에서 건강즙도 주고 내가 단 걸 너무 많이 먹는다며 걱정도 해주며 가끔 운동도 같이 했다. 친구는 필라테스 자격증을 땄고 나에게도 자격증을 권하였다. 나도 운동을 하며 항상 더 깊게 배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건강한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자격증을 따지 않았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곤 했다. 그리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고 싶지만 못하는 거야
시간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챙겨 먹기 어려워서. 다른 사람한테 하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한테 하는 변명이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못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상황 때문에 포기한다는 생각이 도전을 하지 않는 나약함으로 비칠까 봐 나한테 계속 변명을 했다. 변명을 하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이 따라온다, 죄책감. 취미 생활을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더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는 나의 시선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어두운 자기부정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내 안에 작은 열망이 보인다. 포기하지 않고 품고 있던 취미 생활인 운동이라는 씨앗과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강사 자격증. 그렇게 4년 뒤인 올해,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러 인도에 갔고 지금은 요가를 가르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4년 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제일 잘 맞는 걸 찾는 여정이었다고. 그리고 취미 생활인데 죄책감은 갖다 버리라고! 어떤 일은 바로 시작할 수 있지만 어떤 일은 몇 년 후에야 시작하게 되는 일이 있다. 당장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다면 언젠가는 행동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마음속에 품고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연결고리를 이을 수 있으니까! 매일 매트 위에서 요가만 한건 아니지만 매일 매트 위에 섰다는 게 중요했던 것처럼. 지금 당장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사진 출처: SK2 김희애 CF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