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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Sep 09. 2018

7.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지금 인도입니다

거울 앞에 섰다. 

방에 들어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 

등에 근력이 부족해서 어깨가 말려있고 복부에 힘을 주는 법도 잘 모르겠다.

이래서 요가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내 모습이 초라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서럽다.


운수 좋은 날

오늘은 아침부터 행복한 일요일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일요일의 달콤한 늦잠을 생략하고 빨리 나가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다들 평일에는 요가원에 갇혀 답답했는지 내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카페 오픈 시간에 맞춰 일찍이 나갔다. 행복한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일요일에만 먹을 수 있는 바깥 음식!

먹고 먹으며 대화를 하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요일 하루만 수련이 없기 때문에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내 기다리는 사람까지 생겼다.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공부 대신 쇼핑을 시작했다. 초콜릿을 사러 갔다가 화장품도 고르고 싱잉볼도 두드려가며 돌아다니니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이 몰려온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요가에서 사용하는 산스크리트어는 지금까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 네덜란드 어보다 더 어렵다. 발음도 꼬이기 일쑤에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산스크리트 어로 되어있는 철학은 펼쳐보기도 싫어 외면하고 있다. 두 시간을 꼬박 단어만 정리했다. 영어로 배우는 것도 힘든데 이 정도면 노력한 거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나름 행복한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같은 싱잉볼도 사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쇼핑으로 무거워진 가방을 자랑하는 A의 스카프로 비를 피한 나

행복한 기분으로 가뿐하게 우리는 요가원으로 돌아왔다. 해가 진 어두운 하늘이 일요일에서 월요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월요병을 일요일 저녁부터 앓고 있었다. 우리는 모인 자리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서로 잘 모르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잡아주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절망했다.


절망

고등학생 시절, 철봉 매달리기에서 1초도 아닌 0초를 기록하고는 팔에 힘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까지도 팔 힘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팔굽혀 펴기 한 개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팔에 근력이 없으니 힘들기만 하고 하기 싫어지고 안 하다 보니 근력이 늘 리가 없다. 그렇게 악순환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다들 안되는 어려운 동작을 말할 때 나는 팔 힘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번 해보라는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알고만 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 알고 있던, 더군다나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타인 앞에서 보여주는 게 고통스러웠다. 친구들은 내 동작을 찬찬히 보며 가르쳐주었다. 다들 곧잘 내려가는데 나는 무릎을 땅에 대지 않고는 내려갈 수 없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나에게 제일 어려운 자세인 차투랑가 단다사나


팔로 내려와야지. 복부에 힘주고! 
아니, 어깨를 사용하면 안 돼! 


라며 안타까워한다. 요가에서도 나는 팔굽혀 펴기와 마찬가지로 팔 힘을 쓰는 모든 동작을 잘 하지 못한다. 친구들이 나를 가르쳐줄 때 나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괴로웠다. 솔직하게 말해주고 자신이 아는 걸 나눠주는 그들이 고마웠고 동시에 나는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괴로웠다. 팔과 복부에 힘을 주고 단단하게 내려와야 하는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몇 번 자세를 교정받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개운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혼자 방으로 돌아왔다. 


기록하고 다시 보는 시도
시도

안 되는 동작이라고 피하면 앞으로도 계속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안되니까 안 했더니 지금도 안 되는 걸 보니 안되니까 한 번이라도 더 해야겠다. 나를 볼 자신이 없었지만 차투랑가 단다사나를 하는 내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다시 보기가 싫었다. 영상 속에 나는 내가 생각한 모습보다 처참했다. 힘껏 복부에 힘을 줬는데 허리는 굽어있고 어깨는 내 생각보다 움츠러 들어있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참고 보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록하지 않지만 매일 한 번이라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눈길

지금까지 나는 나를 외면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를 외면했다. 행복한 나는 항상 사진 속에 담겼다. 즐거운 모습을 닮은 영상은 정성스럽게 편집하여 유튜브에도 올려두었다. 가끔 꺼내 볼 때면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 힘들거나 우울하면 사진은 물론이고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만약 남겼더라도 흑역사라며 바로 지워버릴게 분명하다. 되지 않는 동작을 못나게 하는 나는 영상 속에 처음 기록되었다. 그리고 보기 싫은 나를 외면하는 걸 택하는 대신 눈길을 한번 주기로 결심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보고 있으니 아주 미세하게 나아진 것도 같다. 어쩌면 나아진 점을 찾기 위해 꼼꼼히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못하는 내가 있기에 발전한 내가 뿌듯하다. 발전하지 않았어도 멈추지 않는 나는 더 뿌듯하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사랑스럽게 봐주고 있다.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스러운 눈길이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사랑스러운 눈길은 절망에서 날 빠져나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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