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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Nov 10. 2019

17. 베를린을 떠나는 이유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며 

해외에서 사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자꾸만 생기고 가끔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마주하기도 한다. 초반에는 차라리 일을 구하지 못할 거였으면 인도나 태국에 가서 요가 수련이나 하고 올걸 후회하기도 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자 점차 생활이 안정되었고 언제 후회했냐는 듯 베를린 살이가 만족스러워졌다. 베를린에서 몇 년쯤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베를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머물고 싶어 질 때 떠난 베를린 


독일 워킹홀리데이 비자 

처음 받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나에게 황금 열쇠 같았다. 일단 비자만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았지만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직면한 현실은 전에 세웠던 계획 따위는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황금 열쇠가 주어진 건 어떻게 보면 맞지만 열쇠로 열고 나간 세상은 따뜻한 봄이 아니라 황량한 밤의 사막이었다. 그곳에서 홀로 살아남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대한 착각 

독일 워킹홀리데이(이하 독일 워홀)는 오랜 시간 생각했지만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고작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갑작스러운 출국에 걱정했지만 착각을 하고 있던 나는 모든지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내 착각 속 계획은 이랬다. 

독일에 가서 한두 달은 구직 활동을 할 것을 고려해 비행기, 보험, 비자 신청 비용 등과 함께 자금을 준비했다. 독일 현지에서 일자리를 구한 후 일주일에 한 번은 밋업을 나가 새로운 친구들도 사귄다.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는 가까운 요가원에 다니면서 꾸준히 수련도 하고 직접 장을 봐서 요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실제 내 생활은 계획대로 된 게 없었다. 원하는 일은커녕 집도 구하기 힘들어서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갔고 예상했던 생활비보다 실제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아서 매일 돈에 쪼들려 살아가야 했다. 생활이 팍팍하니 밋업에 나가도 체력만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요가원에 자주 가지는 못했다. 베를린에 도착하고 한 달 만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베를린으로 워홀 가기 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집 구하기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라고 알려지는 데는 값싼 월세가 한몫했다. 전세 개념이 없는 베를린에서는 보통 월세로 집을 구하고 보증금은 한국보다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두세 달치 월세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베를린이 런던보다는 아직까지 월세가 저렴하다고는 해도 더 이상 매력이 될 가격은 아니었다. 베를린에서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적당한 가격으로 좋은 위치에 집을 잘 구할 수 있는데 워홀로 와서 일자리가 없던 나는 아니었다. 안정적인 수입도 없었고 심지어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내가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처음 방을 구했을 때는 생활이 안정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고 좋아했지만 살다 보니 부당한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베를린에서 총 세 군데 집에 있으면서 집주인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가끔 마음대로 방에 드나드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제대로 항의할 수 없었다. 베를린에서 좋은 조건의 집은 아는 사람한테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집주인도 세입자를 믿을 수 있어 공고를 올리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봐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방을 구할 때 서로에게 윈윈인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워홀 비자로 베를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경우 추천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베를린에서 구한 두번째 방 

최대한 자세하고 매력적이게 자기소개를 영어와 독일어로 적는다. 그리고 월세와 위치에 상관없이 살고 싶은 방을 발견하면 주저하지 않고 모두 보낸다. 지원 후에도 인터뷰라는 관문이 남아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보낸다. 인터뷰에 초대되면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한 어디든 가본다. 인터뷰에 갔을 때는 같이 사는 사람들 혹은 집주인을 만날 수 있고 직접 방 상태도 꼼꼼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직접 보는 게 중요하다. 여러 인터뷰를 다니다 보면 베를린 지역에 대해 감이 생기고 어떤 스타일의 집에 어떤 사람과 살고 싶은지 알게 된다. 이때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라 적절한 타협점도 필요하다. 이렇게 처음 방을 구하다 보면 나름의 선택 기준이 생긴다. 베를린 한인 사이트인 베를린리포트, 독일 집 구하기 사이트 WG gesucht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이용했다.

http://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flohmarkt

https://www.wg-gesucht.de/

https://www.facebook.com/groups/393237407451209/


언어

https://brunch.co.kr/@srk1630/250

이때부터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독일어를 학원에서 배운 기간은 고작 세 달이었다. 그 뒤로 시간과 돈이 발목을 잡아 독일어 학원에는 가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무조건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베를린 생활을 하며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물론 개발자나 디자인 같은 직종에서 일할 생각이라면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베를린에서 영어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역 이름부터 메뉴판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알아야만 한다. 독일어를 할 줄 알면 베를린이 달라 보인다.  

독일어 학원

만약 독일어를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면 독일보다 다른 국가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는 독일에서 살고 싶었고 중국어 이후 새로운 언어를 배울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베를린은 영어로만 살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서 왔지만, 독일어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어학원을 등록해야 할지 고민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독일어 배우는 건 즐거웠고 학원에 다니는 동안에는 꽤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 워홀을 선택하기 전에 독일어를 생각했다면 아마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독일어는 어렵다. 그래서 독일 워홀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학을 준비하는 비자로도 알려져 있다. 독일 워홀을 가기 전에 자신이 독일어에 얼마큼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 또는 독일어가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게 어떨까?

(by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한 사람)

 

일자리

집을 구하는 동시에 베를린에 있는 회사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다수의 회사에서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줬다.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아주 친절한 답장을. 점차 거절을 당하는 횟수가 쌓여갔고 끝내는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는 한국에서 화학 공부를 했고 연구실에서 화학 약품 냄새 맡는 게 싫어서 분야를 바꾸었다. 글을 쓰고 읽는 게 좋았고 남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알리는 게 좋아서 마케팅이 하고 싶었다. 물론 좋아하는 건 온종일 말해도 끝나지 않을 만큼 많고 상세해서 다 나열할 수 없지만 먹고사는 걸 고려했을 때 마케팅이 제격이다 싶었다. 그래서 베를린에서도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그리고 지속해서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도전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나는 외국에서도 한국에서 했던 생각과 고민을 그대로 가져와 생활하려 했고 그게 착각의 시작이었다. 외국에서는 그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국에서는 늘 비자가 나의 존재를 한정 지어 놓는다. 나는 한정된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증명해야 한다. 항상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를린 카페 아르바이트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인가'보다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을 구할 수 있었다. 처음 해 본 일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주어졌던 한식 푸드 트럭 일이었다. 푸드 트럭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지만 한국인이라는 타고난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로 독일로 이민 온 외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일을 하면서 당연하지만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할 만했다. 그런데 결국 이 두 가지 일을 이어나가는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할 수 있는 일'이 안정적인 비자와 돈을 줘야 한다는 조건이다. 만약 베를린에 워홀 비자로 딱 일 년만 살 생각이었다면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베를린이 너무나 좋아져 버렸다. 더 오래 살면서 더 깊게 알아가고 싶은 도시가 되는 순간 난 한국으로 갈 결심을 했다. 더 나은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돌아올 다짐을 하면서. 


워홀은 좋은 기회다

워홀은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문화권에서 비자 걱정을 딱 일 년간 하지 않고 일(워킹)을 하며 휴가(홀리데이)를 즐길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다만 내 경험 안에서만 말한다면 저렴한 집값이나 독일어 없이 영어로 생활할 수 있는 도시 또는 아일랜드나 런던처럼 영어로 일을 적당히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베를린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온 사람으로서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기간과 목표', '워홀 국가 언어에 대한 흥미와 필요'와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간'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고 선택하길 바란다.


나는 베를린으로 워홀을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기회에 감사하고 만족한다. 베를린은 내게 매력적인 한 유럽 도시에 불과했었지만 이제는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고 추억이 깃들어 돌아가고 싶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비록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가지만 베를린에 그리고 내면에 소중한 걸 가득 채우고 돌아간다. 특히 내가 원하는 삶을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베를린은 내게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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