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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Jun 23. 2019

13. 서울이나 베를린이나 거기서 거기

사는 건 똑같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고들 한다. 먹고 자고 싸고 똑같이 한다고 과연 다 똑같은 걸까? 서울에서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내 삶은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만.


공간을 선택할 수 없는 삶

서울에서도 베를린에서도 나는 지역과 공간을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나는 동네보다 광화문 일대와 한남동에서 이태원, 연남동 그리고 망원동에 더 많이 머물렀고 애정을 쏟았다. 내가 선호하는 이 지역들은 나만 좋아하고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은 아니다. 살고 싶은 곳은 취향 따라 달라져도 다수가 원하는 동네는 정해져 있다. 그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모이고 집값은 올라간다. 서울에서 집값을 알아보면 내가 원하는 동네에서 사는 행복보다 현실적인 지옥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학원에 다니며 회사에 다니며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싣고 긴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서울에 부모님께서 살고 있다는 거 자체가 요즘엔 행운이라고 하는데 한평생을 서울 외곽 경계에 살포시 걸친 좁디좁은 공간에 살다 보면 차라리 지방에서 조금 넓게 살아보았으면 할 때가 있다. 서울에서 넓게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공간은 내 꿈까지 소심하게 만들었다. 베를린에 오면서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이라는 말을 믿으며 서울과 다르게 넓은 공간을 혼자 누리며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 물론 도착하자마자 꿈에서 깨어나야 했지만! 베를린은 여전히 섹시하지만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계속해서 베를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과 부족한 주택은 베를린 집값을 계속 올리고 있었다. 오기 전에 알아본 요가원은 베를린 시내 한가운데 있고 좋아하는 분위기의 동네는 서울처럼 월세가 비쌌다. 그렇게 나는 소름 돋게도 서울에서 살던 곳과 비슷한 위치에 방을 구했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 부부가 내놓은 가격은 터무니없었지만 시내보다는 저렴했다.


약속을 잡을 때나 파티나 모임이 열리는 장소는 베를린 중심지거나 힙한 동네다. 우리 동네에서 갈 때면 서울에서와같이 왕복 두 시간은 잡아야 한다. 어제 오후 참석한 모임 또한 베를린 중심지에서 열렸다.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동네를 발견하고는 해가 늦게 지는 여름날 홀린 듯이 어두워질 때까지 동네를 구경했다. 한남동과 평창동을 구경하며 <여기 사는 사람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하는 물음이 똑같이 떠오른다. 

고요한 동네 풍경 
북적여보이지만 시끄럽지 않은 동네
좋아하는 빵집이 새로 오픈 준비하는 동네
우리 동네에도 있는 마트지만 다른 분위기, 아시겠어요?
그냥 들어가 보고 싶더라고요
Bio Deli는 처음 보는 유기농 가게다

걸으면 걸을수록 내가 살고 싶은 동네였다. 유기농 마트가 있고 각각 개성을 지닌 상점이 골목을 자리 잡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도 시끄럽지 않고 안전한 동네. 그렇다, 이런 동네는 비싸다. 그래서 나는 실컷 구경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도 좋다며 타지에서 내 한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거에 감사하기로 다짐하며 행복하다고 행복하다고. 


1유로라도 저렴한 걸 선택하는 삶

한국과 비교해 저렴한 유기농 상품을 주로 소비하던 베를린 생활 초반과 다르게 이제는 유기농 마트 말고도 다양한 마트와 마켓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보다 유기농이나 마트 가격이 대체로 저렴하지만 현지에 살다 보니 현지 가격대로 생활을 맞춰가게 된다. 이제는 유기농 마트에 가는 일은 드물다. 또한 마트보다 마켓이 신선하고 싸다는 생각이 있지만 마켓마다 유통하는 품목과 과정이 다르기에 마켓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중 내게 가장 편리하게 들릴 수 있는 마켓은 과일이 마트보다 곱절이 비싸다. 마트에서 청포도는 요새 1.5유로(약 2000원)인데 마켓에서 사면 같은 양이 4유로(약 5000원)이다. 마켓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며 구경하다 종이에 담긴 과일을 한가득 들고 오고 싶은 내 마음과 다르게 마트로 발걸음이 향한다. 

알록달록 마켓 과일

필요해서 사야 하는 물품마저도 가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서울이나 베를린이나 넉넉지 못한 나의 주머니 사정을 확인하게 된다. 가끔은 1유로 아끼자고 욕망을 누르기도 하고 건강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한 달 전부터 비건 치즈를 먹고 싶었는데 꼭 먹어야 하는 거는 아니라는 생각에 한 달째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조만간 살 것 같지만 고민 없이 먹고 싶을 때 사는 건 아직 어렵다. 서울에서는 1000원이 유럽에서는 1유로가 이름만 달라졌지 똑같이 날 망설이게 한다.


뭐해 먹고살지 고민하는 삶

<어떤 일을 해야 하지?>에 대한 답을 베를린에서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베를린에 오긴 전 나의 환상이자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독일어 못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양에서 온 여자> 일뿐이다. 환상이 사라지고 착각에서 벗어나니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말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을까?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에서 <내가 사는 거 다 똑같다>로 바꾸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게 다 똑같을까. 삶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이 행복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건 다 똑같을 수가 없다. 똑같은지 알 수도 없고. 그렇지만 <나>는 베를린에 살던 서울에 살던 똑같이 살고 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똑같이> 살 수밖에 없다. 나를 바꾸는 게 가장 어려우니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바꿔야 하는 건 세 가지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걸 위해 베를린에 왔다. 아직까지는 서울과 베를린의 삶에 똑같은 부분이 많을지라도 서서히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베를린이 주는 세 가지 

자연 

자연이 가까이 있으면 삶의 질이 몇 단계가 높아진다. 서울에서는 높은 빌딩과 지옥철에 갇혀 숨 쉬기가 힘들 때가 더러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맑은 공기, 푸른 나무가 있는 넓은 공원은 지친 마음을 자연스럽게 치유해준다. 굳이 작정하고 떠나지 않아도 바로 내 창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은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비록 원하는 지역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억지로 참고 타는 지옥철과 행복을 바꿨다는 억울함은 없다. 

  

사람

베를린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매일 만나던 사람들과 떨어져 나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자세히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내 공간에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겼고 한국에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주제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친구들도 만났다.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이들 때문에 베를린을 떠나기 싫다는 마음마저 든다.


시간 

자꾸만 들려오는 불합격 소식과 더불어 서울에서 이따금 날아오는 <독일에서 일은 구했어?>라는 메시지에 속상하고 조급한 마음이 밀려왔었다.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자책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거 하다 오라는 말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나는 <독일어 못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양에서 온 여자> 일뿐이지만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외국어를 배울 시간 그리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 시간을 베를린에서는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고 있다. 조급함을 버리고 독일어를 익히려고 노력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베를린은 내게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 


나무가 우거진 길거리
버스 정류장 앞 공원
비건 바비큐 파티


요새 만나는 친구들한테 브런치를 알려주곤 하는데 심지어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외국 친구한테까지 내 브런치를 보여주었다. 구글 번역기로 보면 된다고 하니 알겠다고 했는데 보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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