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100% vegan
비건이냐는 질문과 내가 선택한 대답
서울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인데 베를린에서는 자주 접하는 질문이 있다.
비건이니?
<비건이니? 채식주의자니? 못 먹는 음식 종류가 있니?> 식사에 초대하거나 반대로 초대하는 경우 그리고 음식점에 갈 때도 친구들끼리 혹은 종업원이 빼놓지 않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몸에 맞지 않는 돼지고기와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베를린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또 엄격한 비건은 아니라서 요즘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거의 비건이야
아니, 비건이면 비건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이건 무슨 애매한 대답일까 싶을 수도 있다. 채식주의는 일곱 가지 단계로 나뉘어 개인의 선호나 상황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식단을 선택할 수 있다. 생애 처음으로 시도한 채식은 가장 장벽이 낮아 보이는 플렉시테리언이었는데 소고기 때문에 두어 시간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만큼 나는 고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인도와 태국에 머물면서 비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접하게 되었고 점차 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던 식습관은 베를린에 오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불안정했지만, 지금은 전반적으로 안정된 생활 속에서 식습관 또한 내가 생각한 대로 선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현재 나는 가금류를 포함한 모든 육류와 생선, 계란, 유제품을 먹지 않지만 때때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먹는다. 드물지만 비건 옵션이 없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선택할 수 있는 음식 중에 최선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엄격하기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예를 들면 모든 샌드위치에 치즈가 들어있으면 선택한 후 치즈를 따로 빼지 않고 온전히 먹는 식이다. 평소에는 비건 식단을 하지만 한 달에 서너 번은 치즈나 버터를 먹을 때가 있어서 <거의 비건>이라고 한다. 가끔 고기도 먹고 계란도 먹는 플렉시테리언과는 조금 다르다. 나만 100% 비건은 아니라고 하는 건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I'm not 100% vegan. 완벽한 비건은 아니에요>라고 정의하고 있어서 내가 만든 용어는 아니었다.
비건이 되기 싫었던 이유
요즘 다큐멘터리와 각종 매체에서 비건을 다루고 있다. 예전에는 미처 알 수 없었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와 새롭게 접한 정보를 통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다.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와 동물의 권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환경의 논란을 모두 포함한 비건은 이슈의 중심이 되기 충분했다.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램지가 비건 요리를 하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비건이라고 말한다. 건강, 동물, 환경을 위해서 하는 비건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아야 할 어떤 중요한 거리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나도 비건이라는 용어를 들어왔고 종종 채식 음식을 먹었지만 비건이 되기는 싫었다.
이토록 좋은 비건이지만 나는 하기 싫었다
먹고 싶은 거 먹을래
비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쏟아져 나오고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많은 부분 공감하고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비건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일부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 미뤘고 비건에 관한 책도 읽지 않았다. 베를린에 오기 전 참여한 채식한끼 모임에서도 나는 <거의 비건입니다> 대신 <비건은 아닌데요>라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비건이 주는 단어가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아 비건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살면서 맛있는 거 좀 먹을 수도 있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실적으로 벅차>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3년 전 적었던 글을 다시 보는데 독일에서 채식 음식을 경험했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나는 건강하고 맛있다는 생각만 있었지 비건이 어떤 건지 전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비건 음식은 나에게 건강을 위한 별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먹을 게 많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살짝 구운 소고기와 버터를 두껍게 끼운 스콘 그리고 여러 토핑을 곁들인 요거트를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예민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지금에야 사람마다 예민한 구석쯤은 하나씩 있고 표현의 정도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적엔 예민하다는 말이 남들과 다르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남들과 다른 게 싫었다. 정당한 걸 요구해도 다수의 사람이 신경 쓰지 않는 거라면 <그냥 좀 대충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깔렸다.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건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비건을 하면 한국에서 식당에 갈 때마다 말해야 하고 나를 사람들이 맞춰줘야 한다는 인식이 나를 깐깐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 것 같아 싫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들한테 매번 듣고 싶지 않았다.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삶에 여유가 없었다. 남들은 여행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며 인턴이며 잘도 구해서 하면서 인생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실상 집에 돌아오면 건강한 음식은커녕 아무 생각 없이 입에 쑤셔 넣기 일쑤였다. 피곤함에 저든 삶 속에서 환경 따위는 보이지도 않고 당장 내 건강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니 비건은 무슨.
비건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유
앞서 말했듯이 내가 먹는 걸 어떤 용어로 가두어 정의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다이어트든 비건이든 피했다. 베를린에 와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나서야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나만의 방향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렇게 싫었던 비건이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전적으로 나만의 이유고 비건이 되려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하다.
주로 건강, 동물, 환경으로 좁혀지는 비건이 되는 이유 중 내가 비건을 시작한 이유는 건강이었다. 하지만 건강만 생각했을 때는 지속하지 못했다. 인도에서 고기를 먹지 못할 때도 태국에서 비건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도 스스로 비건이 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비건이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내 의지로 고기를 먹지 않은 게 아니라 환경상 먹지 못한 거였고 태국에서도 비건 음식이 맛있어서 선택한 거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선택한 건 아니므로 동시에 고기가 들어간 태국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왔을 때 채식한끼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거기서 채식이란 어떤 건지 조금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약속 장소를 채식 음식점으로 잡으며 다양한 채식 음식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며 내가 원하는 비건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도 비건이라는 확신은 없었기에 내가 고기를 이제 잘 안 먹게 된다고 하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다이어트하냐부터 풀만 먹으면 힘이 없다는 말을 했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직 아픈 거냐며 걱정을 했다. 아직 아픈 건 맞지만 아파서 채식하는 건 아니었다.
베를린에서는 왜 거의 비건이 될 수 있었을까?
그쯤 베를린으로 왔고 베를린은 생각보다 비건 문화가 훨씬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힙하거나 트렌드가 아닌 보편적인 거였다. 그래서 처음 베를린에 와서 비건 음식점과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다닐 필요가 없던 거였다. 내가 비건에 대해 몰랐어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식당에 갈 때마다 비건 메뉴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기나 생선이 들어간 메뉴를 고를 일은 극히 드물다. 비건이 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비건이 될 수 있다. 비건을 망설이게 했던 고기와 치즈 조합과 빵과 버터는 베를린에서 충분히 비건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 마트에 가면 쉽게 비건 소시지나 비건 마크가 있는 각종 식품을 발견할 수 있고 가격도 비건이라고해서 비싸지 않다. 비건 음식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비건에 대해 수요가 있고 비건이라고 했을 때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난 베를린에서 편하게 비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비건이 되려는 이유는 각자 찾을 수 있지만 비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력하게 말하기엔 아직 나는 부족하다. 비건에 대해 더 공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베를린에서 즐기고 있는 채식 음식을 소개해볼까 한다!
▼ 지난 글에서 나의 채식 이야기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를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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