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3
연주는 항상 무언가를 주는 입장에 있는 것에 익숙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받는 것에 서툴렀다. 이 것은 그녀의 삶 전반에 걸쳐 쌓여 연주의 성격으로 불린다. 그녀가 구태여 내세우지 않아도 말이다.
이 사실은 그간의 연애 상대들로 하여금 연주를 인내심 있고 사려 깊은 성숙한 여자로 생각되게 했다. 그녀가 건네는 선물과 마음 대비 헌신짝 같은 것이 돌아와도 실제로 연주는 크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 다섯쯤 되는 그녀의 전 연애 상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연주에게서 출발해 자신들에게 도착하는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그 남자들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게도 연주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훈을 만나면서 연주는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자신의 베풂에는 사랑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연주는 주기 위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녀의 기질 같은 것으로 고착되어버린 베푸는 행위는 사실 연주 자신 안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서 행해진 의식 같은 일이었다. 자신의 불안을 가장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이 사랑을 한 스푼 묻힌 무언가를 건네는 것이라는 노하우를 살아가면서 터득한 것일 뿐이었다.
연인 사이 사랑 없이 일어나는 일방적인 행위는 표면적으로 선해 보이는가 하는 사실과 관계없이 상대가 그 빈 공간을 느끼게 되면 황금덩이였던 것이 길거리의 전단지 같은 것으로 순식간에 전락해버린다. 두껍고 각양각색의 잉크가 칠해진 종이를 공짜로 건네주지만 우리는 그것에 고마워하진 않는다. 단칼에 거절하기도 하고 고마운 척 받아 들고는 몇 걸음 가지 않아 냉정하게 구겨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 경험을 지속적으로 겪은 사람은 공짜로 무언가를 나누어주고 있는 사람만 봐도 짜증이 밀려온다. 멀리서 알게 될 때는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한다. 자신의 체력과 시간을 더 쓰는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마주치기가 싫어진 것이다.
버려지는 것이 전단지일 때는 그것이 단지 도덕적인 비난을 받는 것에서 끝날지 모르지만 연인 사이에 있어서 구겨지거나 거절당하거나 버려진 전단지는 모두 연주의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끝까지 뭔가를 베풀고 있는 쪽은 연주였지만 연애의 끝에 사과하고 있는 것 또한 언제나 그녀였다. 연주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칼날 달린 부메랑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상훈은 받는 것에 익숙한 남자였다. 기대 없는 습관성 베풂에 도가 튼 그녀가 단번에 의식할 정도로 말이다. 서서히 익숙해져 가는 남자들은 많았으나 처음부터 일관되게 익숙한 남자는 드물다. 받는 것에 익숙했던 상훈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남자들과는 달랐다. 감정과 물질적인 선물 또는 금전적인 지원을 통틀어서 받는 것에 익숙하다 못해 능숙했다.
중요한 것은 받는 것에 능숙한 사람은 계속해서 대가 없는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주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에 가깝다. 연주는 상훈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자신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게끔 북돋아 주는 상대를 연주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신기하게도 자신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 후로부터 연주는 자신의 마음속 불안까지도 천천히 털어낼 수 있게 되었다. 상세한 과정을 거친 노력을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주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괴롭혀왔던 과거를 알아채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타깝게도 그런 그녀의 정서적 안정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났다. 최근 상훈에게 찾아온 극도의 예민함과 고통이 그 원흉이다. 상훈은 발렌시아를 다녀온 후로부터 어찌어찌 두 달 정도가 지난 후에 갑자기 책을 쓰겠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대화 속에서 그간의 예민과 고통의 원인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단서들이 조금씩 묻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연주의 머리로는 전부 납득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 답지 않은 비이성적, 비합리적, 비경제적인 판단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상훈은 자신 안에 오랑우탄이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그는 평소 일상적인 상황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자주 드는 습관이 있다. 때문에 그 말에 대해 연주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랑우탄이 실존하는지 아닌지, 상훈이 미쳐버린 것인지 아닌지는 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한편 연주는 상훈의 고민을 함께 짊어지는 것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 그녀는 그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주가 알고 있던 상훈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낯선 모습들에 적응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기로 했다. 그녀를 향한 예민함, 짜증, 무관심, 돌아오지 않는 대답 같은 것들 말이다. 고민을 함께 짊어지고 말고는 그다음이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낯선 상훈의 모습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곧 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만한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잊고 온 게 있는 것처럼 느닷없이 다시 다녀온 발렌시아 여행이 끝나고 벌어진 상훈과의 다툼에서 화해한 후 제시했던 세 가지 조건들도 사실은 모두 연주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상훈의 곁에 지치지 않고 붙어있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자신이 상훈의 옆에서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처럼 상훈도 잘 버텨주길 바랐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해 준 그의 미소나 따뜻한 한마디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연주가 상훈에게 느끼는 주된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주는 사랑은 기쁨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