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2020.09.23

by 스미레

여기는 도시와 그 밖을 가르는 지점. 때문에 의도치 않게 경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호는 약 3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 오는 길엔 전철을 이용했다. 식당 근처에 있는 작은 역사를 종착역으로 하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왔다.

열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통과할 때 역무원 한 명을 보았는데 그가 역을 관리하는 직원의 전부인 듯했다. 규모가 작은 역사의 일손은 때론 과하고 때론 부족한 채로 근근이 평균선을 유지하며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역무원은 전면이 투명 유리로 된 1평 남짓한 좁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책상에 팔꿈치를 괴어놓은 채 모니터가 출력해대는 흑색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나오고 들어가는 개찰구는 당시 역무원의 시선이 향하고 있던 곳과 정확히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가 보고 있던 것이 역 내의 cctv 화면이 아니었다면 그는 성호가 지나가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늦은 밤 막차에서 내리면 보게 되는 흔하디 흔한 작은 역 안의 풍경이었다. 성호는 역무원을 보며 걷고 역무원은 모니터를 응시한다. 일방으로 연결된 시선 속 역무원 옆을 걸어 지나치며 성호가 유난히 인상 깊어했던 것은 역무원의 입이었다. 역무원의 입은 역사 구석에 있던 편의점의 셔터처럼 단단히 닫혀 있었다. 기약 없는 침묵으로 잠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해진 때가 오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호는 역무원에게 가까이 가 대화를 걸어봄으로써 그 입을 열어보고 싶은 욕망이 강렬하게 들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실제로 물어보았다고 하더라도 대답을 듣는 것은 고사해야 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길로 역을 나온 후에는 성호는 지체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횡단보도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마치 늘 다니던 길이라고 누군가 알아채 주기를 바라듯이 걸었다. 성호는 자연스러워 보이고 싶었다. 처음 가는 장소에서 헤매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짓인 것을 안다. 그러나 성호는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항상 부자연스러움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자의 티를 내지 않고 싶다. 욕심 많은 이방인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별 수 없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아무도 길거리에서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사방으로 서성거리지도 않는다. 도시를 삭막해 보이는 콘크리트 숲으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밖에 도시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 일 것이다. 그 콘크리트 숲의 중심부에 놓여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틀림없이 도시를 집채만 한 파도 정도로 비유할 것이다. 도시는 종잡을 수 없이 일렁이는 콘크리트의 파도이다.

한창 그것이 덮쳐올 시간에는 어리둥절할 틈 같은 건 주어지지 않는다. 고민의 여지는 없다. 살길은 잽싸게 파도를 타는 것이다. 멈추고 싶다면 그것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몸과 정신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올 때까지. 이리 실려가고 저리 실려가는 사이에.

도시는 살아 움직인다. 아니 자신 안의 것들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덕지덕지 살이 붙어 크게 불어나 버린 정어리 떼 속의 정어리 한 마리는 그 흐름을 바꿀 만한 힘이 없다. 어쩌면 이미 그들은 모두 숨이 붙어있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공중에서 파도가 멈추면 모두들 비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죽은 정어리 비가 내린다. 사람들은 세계가 멸망한다고 혼비백산할지 모른다. 이미 멸망한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른 채.


성호가 도착한 이곳은 한 전철 노선의 마지막 종착역이 있는 동네. 도시 중심부에서 큰 파도였던 물살이 흘러 흘러 이곳에 도착할 때가 되면 시냇물처럼 잔잔해지는 것을 느낀다.

역 주변 상점가들은 하나둘씩 간판 등을 내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뀐 뒤 건널목을 건넌 성호는 어느새 정면만을 보고 걷고 있었다. 잔잔한 시냇물에 쉽게 휩쓸려 버렸다. 여기서 더 가보았자 결과는 뻔했다. 성호는 연고도 없는 동네의 캄캄한 주택가 골목에서 길을 잃게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이방인인 데다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애를 써 역을 기준으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멈추기로 하고 대신 역 주변을 배회했다. 드문드문 아직 불이 켜진 식당들이 보이고 성호의 옆을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의 번호판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친김에 이 동네의 역 근처에는 편의점이 몇 개인지도 세어본다. 그중 이 시간까지도 불이 켜진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비율도 따져본다.

그러다가 역 앞 사거리에 있는 네 개의 횡단보도 중에 유일하게 작동을 멈춘 신호등이 있는 곳을 멍하니 쳐다본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으로 가는 곳의 건널목일 것이다. 아니 우연히 오늘만 고장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가보는 수밖에 없지. 성호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물살이 더욱더 잔잔해지는 곳을 향해 가는 거야. 성호는 물밖으로는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흐름을 거슬러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어보고 싶다.

성호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신호등을 지나쳐 그 길로 접어들었다. 회색빛으로 보이는 암흑 속 직선으로 쭉 뻗은 차도와 인도를 희미하게 분간할 수 있었다. 차도 양옆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몇십 미터쯤 걸으며 파악해보니 건물 사이사이로는 풀이 자라난 땅들이 있었다. 공원이나 공원의 역할로 쓰이는 공터쯤 되는 줄 알았으나 풀이 자란 높이나 듬성듬성 불규칙한 꼴을 보니 그저 방치된 맹지들이었다.

몇십 걸음쯤 더 걷다가 성호는 고개를 들어 차도 위의 이정표를 보았다. 달빛에 기대 화살표의 방향과 붙어있는 단어들을 해석해 보니 앞으로 나있는 길은 고속도로로 진입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이 도시의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말인즉슨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걸을 수 있는 길조차 없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해진 결말과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자 호기심은 사그라들고 인간 육체의 간사함이 올라온다. 성호는 전진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 아까 문이 열려있던 역 앞의 편의점으로 돌아가 목이라도 좀 축이기로 했다. 그러나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 저 멀리서 무언가 반짝였다.

하얗고 붉은빛이 몇 초간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걸어온 것을 참고해 대략 거리를 계산해보니 성호가 서있는 곳에서 100m쯤 떨어져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에는 골목에서 나오는 차량의 전조등인 줄 알았으나 그 불빛은 다가오거나 멀어지거나 하지 않고 다시 꺼졌다. 그리고 차량의 전조등이라기에는 높이가 너무 높았다. 성호는 자리에서 멈춘 채 방금 전 빛이 반짝였던 방향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다. 또 한 번 깜빡인다. 그리고는 이어서 부르르 떠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후로는 꽤 오랫동안 계속 빛나는 상태로 꺼지지 않았다.

성호는 다리를 움직여 그 불빛의 정체를 조금 더 파악해보고 싶어졌다. ‘편의점과는 멀어진다.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지만 다리는 호기심의 편을 들어주었다. 불빛과의 거리가 50m 안으로 가까워지자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간판이다.’ 너무 작게 말해서 누군가 바로 옆에 있었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간판의 불빛이었다. 그러나 그저 불이 켜진 간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사그라들 때 새롭게 나타났다. 모두가 꺼지는 시간에 켜지기 시작했다. 더 가까이 가보자. 글자가 보인다. ‘coffee‘,‘snack‘, 당장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몇 가지의 영어단어뿐이다. 화장실을 뜻하는 기호도 그려져 있다. 그래도 저 단어를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편의점에서 목을 축이는 것보다는 나은 환경이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호가 계속해서 다가가는 동안에도 그 불빛은 몇 번이나 부르르 떨었다. 전기의 떨림에도 소리가 있다면 아마 한여름 낮의 매미소리 같은 것이 들렸을 것이다. 계속 그것만 응시하며 걷다 보니 홀로 주변을 밝히고 있는 불빛이 자못 고고해 보인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것은 꼭 등대 같기도 했다. 불빛을 목적지 삼아 누군가를 자신에게 쉽게 인도하려는 듯 보인다.

어느새 성호는 간판 밑에 서있었다. 고개를 젖혀 올려다봐야 하는 꽤나 높은 곳에 설치된 간판이었다. 사람을 위해 제작된 높이가 아니다. 멀리서 오는 자동차들을 위해 시인성 극대화를 목적으로 크게 제작된 대형 간판이다. 간판과 함께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예상대로 그곳은 식당이 맞았다. 목을 축이는 정도가 아니라 간단한 요리와 따뜻한 커피 같은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찾아오니 성호는 없던 허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식당 앞에는 아스팔트가 깔린 작은 부지에 알뜰하게 그려진 주차라인도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작은 소리로 음악과 사람의 말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다. 공간 전체에 내려앉는 듯한 소리는 아니다. 날카롭고 표면이 거친 느낌의 사운드가 한쪽에서만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정체불명의 소리는 카운터에 앉은 사장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호가 밀고 들어온 유리문에는 작은 종이 달려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사장은 손님이 식당 깊숙이 들어와 앉을 만한 곳을 물색하는 동안까지도 그 소리와 함께 휴대폰 화면에 파묻혀 있었다. 순간 성호는 그 사장의 모습에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역무원이 겹쳐 보였다.


이곳까지 왔던 경로를 떠올리며 그 시작에 역무원의 입에 대해 생각난 것은 그것이 실로 인상 깊었다는 이유가 한몫했으나 발견했을 때의 기대와는 달리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음식에 대한 실망감이 성호의 입마저 굳게 닫혀버리게 했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새벽 2시라는 시간은 그 역무원의 입을 여는데에 성공했을까. 하루의 마지막 열차가 도착했고 그곳에 탔던 성호가 마지막으로 역을 나갔다. 그랬으니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내 그의 퇴근시간이 찾아왔겠지. 그는 시곗바늘을 보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을까. 일어나기 전 하루의 노고를 치하하는 한숨을 쉬었을까. 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그가 입을 벌려 한숨이라도 쉬었기를 바랐다.

성호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는 나올 때부터 기름을 잔뜩 먹어 흐물거리는 탓에 몇 시간째 입에 대지도 못한 감자튀김이 전시되듯 놓여있다. 그 덕에 다 써가는 케첩통에서 아주 공들여 짜낸 케첩 더미가 민망할 정도의 충분한 양으로 남아있었다. 성호가 식사를 하려던 것을 그만둔지는 오래다. 대신 괘종시계의 추처럼 자신의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는 웨이트리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

봐주기 힘든 감자튀김 덕에 계획에 없던 콜라를 주문한 성호에게 종업원은 빨대 꽂힌 큼지막한 플라스틱 컵을 가져다준다. 종업원에게 애써 눈인사를 한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성호의 눈인사에서 매너 따위를 느껴서는 아닌 것 같다. 시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소다. 성호는 찝찝한 기분이 든다. 컵에 꽂힌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성호는 그나저나 역 주변을 서성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역무원이 보았을지가 궁금하다. 그가 곧바로 퇴근을 했다면 둘은 마주칠 수도 있었다. 왜인지 그를 마주쳤다면 아마 자신이 이곳에 앉아 있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인지 역무원을 기다려야 했을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역무원의 입은 성호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다. 아니, 반대로 성호의 입이 역무원의 입을 만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역무원의 입이 열릴 때 성호는 그 앞에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입을 벌려보았자 기름에 절은 감자튀김 따위 밖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성호는 식당에 들어온 후부터 뭔가 익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와본 적이 있는 곳 같다. 이런 길을 걸어왔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만취하는 날이 많아 같이 마시던 일행이 택시를 타고 데려 왔던 곳일 수 도 있다고 간단히 생각하고 넘겨버린다.

성호는 이 가게의 하나뿐인 여자 종업원을 계속해서 관찰 중이다. 그녀는 수평선에 이미 묻혀버린 대낮의 햇살과 도심 속 네온사인의 예고된 죽음을 기만하는 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발놀림이 경쾌해진다. 그녀는 그 두 극단의 시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그 양극단의 시간들을 모두 조롱하는 듯한 자세로 저렇게 활기찰 수 있는 것이다.

하나뿐인 여자 종업원이라고는 했으나 그렇다고 하나뿐인 남자 종업원도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직원은 그녀 하나다. 적어도 이 시간에는 그럴 것이다. 오늘이 유난히 이 식당의 파리 날리는 날이 아니라면 한 명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보인다.

그녀는 본인이 스스로 제작한 것인지 사장이 준 유니폼인지 모를 옷을 입고 있다. 원단과 같은 색의 단추가 달린 옅은 황토색 리넨 원피스에 굽이 낮고 앞코가 뭉툭한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다. 불균형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는지 왼쪽 신발의 한쪽 뒤꿈치 부분만 유난히 마모되어 있다. 허리에는 잦은 설거지로 인해 더럽혀지고 적셔져 마를 틈 없는 하프 랩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앞치마의 흰색은 음식물의 소스나 양념이 만들어낸 얼룩들을 더욱 강조시키고 있다.

얼룩이 유난히 크게 묻어 뭉쳐있는 부분 부분 들은 마치 가지각색의 소스를 잉크 삼아 추상화를 시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갈색은 스테이크 소스, 빨간색은 케첩 아니, 스리라차일까?, 노란색은 카레나 머스터드, 초록색은 바질 페스토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뉴를 보면 성호가 생각한 것들 중 절반은 이 식당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성호는 유일한 웨이트리스인 그녀가 스스로의 모습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확신한다. 아마 누구든지 창밖으로라도 그녀를 보며 지나간다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자신의 태(態)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그녀의 펴진 어깨와 가슴, 걸음의 끝에 앞꿈치로 바닥을 채듯 걷는 걸음걸이 등의 다양한 포인트에서 아주 잘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생기 어린 눈빛과 한껏 치켜 올라간 속눈썹은 이 시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얼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태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 시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그녀는 또 하나의 햇살 혹은 형광등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곳에서 시작되는 또 하나의 여명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쬐는 빛의 시간에서 도망치 듯 나올 수밖에 없는 이들 중에는 어둠 속에 정착하지 않고 끝내 또 다른 빛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따가움을 느끼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을 은은하게 덥혀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다가 적당한 곳에 정착한다. 그들은 부적응자나 패배자로서 모인 것이 아니다. 억울함을 무릅쓰고 자신의 피부를 질기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역무원의 입에서 눈앞의 종업원에 대한 예찬까지 성호의 머릿속에서 폭포가 내려치는 동안 그녀가 노골적인 눈길을 의식하고 말았다. 성호의 앞을 지나는 발걸음에 조금의 경계심이 느껴진다. 그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이 식당 속 존재하는 모두를 위한 태양이다. 새벽은 아직 길게 남았다. 성호는 이내 그녀에게서 관심을 돌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뻗었다.


사장은 주로 카운터에 서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3시간여를 앉아 있어 본 결과 조리가 필요한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어느새 들었는지 이미 주방으로 들어가 버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곤 이내 펜케이크 반죽이 구워지는 단내가 나거나 바삭하게 된 베이컨에서 나는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이어 뜨거운 기름과 날달걀 혹은 채 썰린 채 얼어있던 감자의 수분이 만나 맛의 생산적인 폭발이 불러일으키는 소리와 함께 그 냄새의 파동이 가게 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식당이라는 본분에 걸맞게 즉석으로 요리를 해내기도 하지만 이곳은 주로 미리 일정량 만들어놓은 음식을 커피나 소다와 함께 접시에 척척 얹어서 내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 주인공들은 속이 부실한 버거나 스페인식 토르티야가 되겠다. 많은 양이 미리 조리되어서 폭이 넓은 바 테이블 위에 진열되어 있다. ‘만들어놓은 것부터 먹어보고 시켜라’라며 다소 강요하는 듯 한 자세로.

반려견을 훈련시키듯 사장은 이 시간 자신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을 인내심 있게 훈련시키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뚜껑을 열고 접시에 담은 다음 내준다. 빠르고 효율적이다. 사장은 카운터에 있으나 주방에 들어가 있으나 매 순간 분주하다. 웨이트리스에게 보이던 허리에 찬 하프 랩 앞치마는 사장의 허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장의 분주함 속에는 아마 설거지는 껴있지 않을 것이다.


식당 구석에는 네온사인의 파동조차 닿지 않는 골목에서 파는 값싼 알코올에 패배한 이들이 보인다. 볼 것도 없이 허접한 씹을 거리 따위를 앞에 놓고 목구멍에 채일 새도 없이 술을 몸속으로 부어 넣다가 나가떨어진 것이다. 들이부으면 부을수록 자신의 우악스러운 음주행위를 자랑거리로 여기기도 하고 남녀가 어울렁 더울렁 그 날것의 분위기에 취해 서로 나서 경쟁을 하기도 한다. 어리고 젊은 인간들이 모이게 되면 나올 수 있는 흔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러나 그들의 지갑 사정으론 아직까진 주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 잡힌 음주 식단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할 테다. 아직 그들은 술을 들이붓는 곳과 허기짐을 채울 곳을 구분해놓아야만 한다. 값싼 술에 안주까지 값싸게 타협해주는 곳은 도시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남녀 무리는 가게 주인이 서있는 카운터나 종업원이 커피를 내리는 바 테이블 맞은편을 피해서 가게의 사각시대를 찾아 기어들어왔다. 어딘가에 숨어들기를 좋아할 때이다. 그곳에 저들끼리 둥지를 틀고서는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채 술이 깨지 못한 채 때늦은 주정을 부리기를 반복한다. 수백 번도 넘게 바닥을 울리는 종업원의 또각 거림도 그들을 깨우기엔 부족하다. 두 남자 중 하나는 입고 있던 하늘색 야구점퍼를 머리끝까지 덮어쓰고는 발을 신발에서 대충 뒤꿈치만 꺼내놓은 채 엎드려있다. 입고 있는 연한 색 청바지의 허벅지 부분에는 무얼 쏟았는지 짙은 색으로 젖어 있다. 두 명의 여자가 엎드려 있는 남자의 양 옆으로 앉아 그의 등에 기대어있다. 팔꿈치까지는 내려올 것 같은 긴 머리로 얼굴을 전부 덮고 있어 그냥 눈을 감고 있는지 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른 한 명의 남자는 흰색 단추가 달린 검은색 반팔 면 셔츠를 입고 있다. 일행인 나머지 세명과 떨어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다.

성호는 아마 검은색 반팔 셔츠의 남자가 오늘 저 만남에 나온 걸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부러 옆에 있는 일행들처럼 진탕 취하지 않은 것이다. 또래들의 행실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 검은셔츠의 남자는 계속해서 한숨을 쉬고 허공을 바라보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성호가 느끼기에 그것은 배부른 회의감이다. 이 긴 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인간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더욱. 저들은 오늘 죽을 것 같이 힘들어하고 스스로를 살해할 듯이 퍼마시지만 내일은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책가방을 메고 등교를 할 것이다.

그들을 관찰하며 무의식적으로 빨아 대느라 성호의 콜라는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흐물거리는 감자튀김을 집어 손으로 꾹꾹 누르며 기름을 짜내 본다. 기름 묻은 손가락을 티슈에 닦는다. 컵에든 얼음을 씹는 걸로 찝찝함을 달래 본다.


이 식당의 유일무이한 웨이트리스는 여전히 음식을 서빙하거나 모자란 물이나 커피를 열심히 채워주고 있다. 그러면서 식당 구석에 쌓여있는 젊은 무더기들 앞으로 지나쳐 갈 때마다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 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웨이트리스와 그 무더기들의 연령대가 비슷해 보인다. 또래들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마 높은 가능성으로 '제발 구토 같은 걸 바닥에 갈기는 것만 피해달라'고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그녀는 같은 인간인 그들보다 자신의 구두 혹은 하얀 대리석 타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갈 곳이 없거나 갈 곳은 있어도 맞아줄이가 없는 젊은이들은 네온사인이 닿지 않던 노점 술집에서 시작한 두 번째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아마 내일도 모여 또 다른 어딘가에 둥지를 틀게 될 것이다.


이 식당에는 늦은 시간 의무적으로라도 곯는 배를 달래주어야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운전을 해 어디론가 가던 이들. 화물을 싣고 가는 트럭 드라이버들이다. 이 장거리 운전수들은 시간 엄수에 생계가 달려있다. 그들은 어느 식당을 들르던 그곳에서 가장 빨리 조리되는 음식을 주문한다. 그 점에만 보면 그는 오늘 찾은 이 식당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그가 오기 전부터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음식이 두 가지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저 드라이버는 단골일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면도를 한 날렵한 턱선이 잘 어울리는 마른 체형의 남자가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이 가게의 상석 같은 것은 관심 없다는 듯한 자세로 문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처음부터 시선을 두고 들어온다. 그의 팔이 새까맣게 그을려있다. 오른쪽보다 왼쪽 팔이 조금 더 익어있다. 쓰고 있던 캡 모자를 벗어 전면의 로고가 자신을 바라보게끔 돌려 테이블 구석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팔꿈치를 괸 채 손바닥을 비비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왜인지 조급한 모습을 보인다. 모자를 벗으니 그의 짧은 스포츠머리가 드러난다. 낮시간 주로 모자를 쓰고 운전을 해서인지 이마와 눈가 주변의 피부는 그 아래쪽 얼굴에 비해 덜 그을려 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집기 전까지 엉덩이를 한 일곱 번쯤 들썩거렸다. 그의 모습을 보던 성호까지 동요되어 갑자기 불안해질 정도로 산만하다. 메뉴를 읽는 중간에도 트럭을 세우기에는 좁았던 식당 주차장 덕에 아슬아슬하게 도로에 걸쳐 세워놓은 자신의 트럭을 연실 힐긋거린다. 조금 전까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던 자신과 지금 식당에 앉아 속도계가 0을 가리키게 된 자신과의 괴리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일까. 자신의 배를 채우러 들어온 한 식당에서 약간의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코팅된 종이 위에 늘어져있는 메뉴 사이에서 고민이 길어지자 자신의 손목 위에 있는 시계와 식당 벽에 붙어있는 시계를 번갈아가며 초조한 눈으로 쳐다본다. 그는 자신과 싸우고 있다. 이내 결심한 듯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한다. 웨이트리스가 음식을 가져다준다. 성호는 트럭 드라이버의 식사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음료도 함께 주문했으나 거의 마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식사로는 버거를 주문했는데 한입을 베어 문 뒤 빵을 들어 사이사이의 야채를 신중히 다 골라낸다. 골라지는 야채의 꼴을 보아하니 성호의 앞에 놓인 감자튀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보인다. 안 그래도 부실한 버거가 재료 하나가 빠져서인지 그의 식사는 금방 끝났다. 그가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온 지 이제 막 12분 정도가 지나고 있다. 애초에 원했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가 웨이트리스를 불러 일회용 컵을 하나 달라고 한다. 아마 남은 음료를 담아 운전을 하며 홀짝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갈증이 난다고 그 자리에서 벌컥대며 마셔버리면 도로 한가운데서 곤란한 상황을 맞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꼭 트럭을 운전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가 투명 플라스틱 컵에 얼음과 함께 담겨있던 콜라를 일회용 종이컵에 옮긴 뒤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가 열고 들어온 문을 다시 밀고 나가기까지 정확히 13분이 소요되었다.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함만 남기고 나간 드라이버의 모습에서 성호는 이상하게도 프로페셔널함을 느꼈다.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르고 직업에 충실해 보이는 가장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꼈다. 아마 트럭의 룸미러에는 딸이나 아내의 사진이 대롱대롱 걸려있겠지. 성호는 저 드라이버의 삶이 가진 단순함이 부러웠다. 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린다. 좋아하는 일이나 꿈 따위에 대한 고민은 아마 십 대 중후반쯤 이미 매듭지어 항아리에 넣고 땅속 깊이 묻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꿈을 포기해서 얻는 고통도 없다. 꿈에 대한 포기는 최대한 세상에 나가기 전에 해놓는 것이 뒤탈이 적다. 저 사람이 가진 책임감은 한 가지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니 동료들과의 쌓인 신뢰도 나름 좋다. 새벽까지 자신을 희생해 가족을 먹여 살리니 특별히 돈으로 불화가 생길일도 없을 것이다. 귀가하면 쪼르르 달려와주는 자녀가 있고 출근 전 밥을 차려주는 아내가 있다. 단순한 삶은 초조함과 불안함도 용암 앞의 양초같은 것에 불과하도록 만들 수 있다.

한편 침대에서 갓 나온 이들도 보인다. 귀찮은데 어쩔 수 없이 입고 나왔다는 듯한 자세로 몸뚱이에 걸쳐진 옷에서 짜증이 느껴진다. 사람이 아니라 옷이 내는 짜증이다. 슬리퍼를 신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한 여성이 들어온다. 식당 주변에 거주하는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는 이들 중 하나이다. 주택가는 보지 못했는데 어디서 온 것일까. 눈앞의 가상의 점만 응시하며 슬리퍼를 끌고 빈손으로 들어왔다가 갈색 종이봉투를 들고나간다.


이 시간에 식당을 찾는 이들의 얼굴에는 대부분 표정이 없다. 마치 삐걱거리는 기계들처럼 기름진 음식을 주문하고는 그것들로 자신들의 속을 윤활한다. 그러나 품질 나쁜 기름이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기계전체에 결함을 유발한다. 굼떠지고 삐걱거리고 찐뜩하게 굳어져버린다. 성호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음식을 쳐다본다. 높게 쌓여있는 케첩 더미와 기름에 젖은 감자튀김. 성호는 무의식적으로 그나마 빳빳한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올려 케첩 더미에 푹 하고 박아 넣는다. 말 그대로 푹, 하고 꽂힌다. 쓰러지지도 않는다. 미동도 하지 않고 꽂혀있다.

그 순간 성호는 자신의 심장이 정확히 원래 크기의 4분의 1로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 절반의 또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원래의 기능을 유지하려면 4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성호는 몸을 좀 움직이려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Men'이라고 붙어있던 문을 열고 나오니 어떤 공터가 펼쳐졌다. 익숙하다. 양옆으로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있다. 성호는 아까 걸어오는 길에 보았던 용도를 알 수 없는 공터 중 하나라고 추측했다.

몇 걸음 걸으니 ‘찰박’ 하는 소리가 났다. 물이다. 잔잔한 시냇물이다. 앞에 보이는 큰길로 나가면 나갈수록 물은 더 깊어지고 물살은 강해졌다. 물살에 이끌려 계속 걷는다. 아니 걸어진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니 전철 역이 있는 방향에서 갑자기 물이 들이쳐 순식간에 수위가 높아졌다. 성호는 잠기지 않는다. 대신 수면과 함께 떠오른다. 성호는 어느새 아까 식당을 향해 걸어올 때 올려다보았던 건물들의 옥상과 같은 눈높이가 되었다. 잠시 그 물살에서 벗어나 보려 옥상의 난간을 잡고 올라간다. 계속해서 들이치는 물살은 어느새 조금 잠잠해졌다. 식당도, 이정표도, 간판도 모두가 잠겼다. 그 활기찼던 웨이트리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역무원은 무사히 퇴근했을까.

도시의 파도에 저항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파도에 몸을 담그고 힘을 쭉 빼는 것만이 흐름에 올라타는 유일한 길이다. 성호는 난간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 어둡고 깊은 바닷속에 몸을 던졌다. 성호는 다시 정어리 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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