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상훈은 인간의 앞에 무한히 찍혀있는 시간과 사건의 점들을 상상한다. 그 점들을 이어가며 궤적을 만드는 일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해왔다. ‘나’라는 한 세계를 책임지며 취하게 되는 자세 말이다. 그간 자신이 이어온 점들에 대한 해석은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낯설음과 친해지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성호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제는 스스로 그 궤적을 싹둑 잘라버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유념하고 있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성호의 죽음은 그것을 스스로 굳이 잘라버리지 않아도 누구든 언젠가는 잘려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강조해버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훈은 처음 상상했던 것과 달리 그 무한히 찍혀있는 시간과 사건의 점들은 일렬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점들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꽂혀버린 죽은 정어리떼 같이 배열되어 있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도화지에 찍어놓은 수많은 점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의 점들 속 발생되고 소멸하는 일들은 비단 한 개인의 범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도 확신했다. 상훈은 이제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 타인이라는 이름의 인간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세상이라는 큰 흐름 속 단 한 사람의 급정거는 폭풍우 속 개미의 더듬이질과 같다. 흐름을 바꿀만한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러나 바로 뒷사람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큰 파도를 일으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곳곳으로 흘러간다. 크기는 작아지고 물살은 약해질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