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방안의 스피커에서는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집 Op.118 6번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구의 연주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를 작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파트도 빼놓지 않고 절정으로 가득하다. 숨고를 틈도 없이 헉헉대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는다. 강약 조절 따위는 없다. 거추장스러운 서론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단도직입적이고 격렬한 애도뿐이다.
상훈은 그 격렬한 애도를 품은 채 일어난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다. 어젯밤 오랜만에 그를 숙면으로 이끌었던 연주의 체취가 떠나고 자신의 땀냄새만 남아 있는 침대에 상훈은 큰 아쉬움을 느낀다.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왼팔을 뻗어 옆을 더듬거린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냉각된 이불만이 잡힌다. 창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적어도 어둠은 이제 그를 괴롭히지 못한다.
문 밖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연주는 먼저 일어나 뭔가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상훈은 당장 연주를 침대로 데려오고 싶다. 갓 구운 펜케이크의 냄새 따위가 먼저 치고 들어오게 둘 수 없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그녀의 눈동자여야 한다. 마른 입술로 그를 마주 보며 천천히 올라가는 그녀의 입꼬리여야 한다.
아니 사실 무엇이 보이든 관계없다. 잠은 눈을 먼저 깨우지 않는다. 상훈을 깨우는 건 항상 그녀의 달콤한 체취와 얕은 숨소리였다. 따뜻한 습기를 머금은 규칙적인 날숨. 그리고 늘 상훈이 흘린 땀은 길고 긴 달의 시간 동안 자신의 경계를 넘어 연주에게도 가서 닿곤 한다.
음악은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흐른다.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나 마지막 퍼즐 하나가 빠져있다. 상훈은 퍼즐을 완성하고 싶다. 소리 내어 연주를 부른다.
“일어났어?”
소리를 들은 연주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응.”
상훈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대답한다.
“악몽을 꿨어? 땀을 엄청 흘리던데. 자기.”
연주가 걱정스러운 듯 침대맡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응, 꿈을 좀 꿨어.”
“깊게 자지 못했구나.”
“아냐, 그래도 피곤이 많이 풀렸어. 다만 좀 찝찝한 꿈이라 그래.”
상훈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답하며 앉아있는 연주의 허벅지로 가서 자신의 얼굴을 파묻는다. 연주의 옷이 눅눅하다.
“아직 안 씻었네?”
상훈이 연주의 옷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요리하면 땀이 나잖아. 그리고 어차피 다시 침대로 올 거였어. 자기가 예상보다 일찍 깬 거지.”
“부엌에 안가 봐도 돼?”
“팬케이크일 뿐이야. 좀 식게 놔두지 뭐. 나중에 시럽을 뿌리면 똑같아. 계속 그 옷 입고 있을 거야? 오늘 이불까지 세탁할 시간은 없어.”
연주는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바닥에 던져두고 상훈 옆으로 파고 들어왔다.
간밤의 꿈속 배경은 쿠바였다. 아니다. 그렇게 큰 땅덩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특정 짓기에는 각종 원색의 향연이 눈길을 사로잡다는 것 이외에도 뭔가가 존재했다. 어딘가 더 오래 묵어 발효되다 못해 말라버린 것들이 혼조 되어있었다. 그곳은 섬이었다.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내륙은 풍길 수 없는 고립감으로 똘똘 뭉쳐서 만들어진 섬이다. 그리고 그곳은 작다. 아주 작다. 하늘이 바다와 손을 잡고 합심해 짓궂기로 한 날에는 그곳에 하나뿐인 콘크리트 건물 이외엔 모든 것이 떠내려 갈 만큼 그곳은 아주 작다.
그곳에는 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딱 하나 있다. 3층짜리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 1층은 길이가 긴 쪽의 벽 전체가 없다. 4군데의 벽 중 나머지 3면만 남겨놓은 것이다. 그렇게 해도 위의 두 층이 지지가 되는지는 좀 의문이 들만한 형태이다. 짓고 나서 부순 것인지 설계가 그렇게 되었던 것인지는 멀리서 보아선 알 수 없다. 아무튼 한쪽 벽이 개방되어 있는 1층에는 작은 잡화점이 들어서 있다.
자르지 않고 진열돼있는 각종 식사용 빵부터 음료수, 스낵 같은 것들을 팔고 있다. 가판대 뒤쪽 선반에는 각종 리큐르들이 쌓여있는 것들 보니 이곳에도 밤은 존재하는 듯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짐작일 뿐이지만. 한쪽 구석에는 각기 다른 문양이 새겨진 하와이안 셔츠가 몇 개 걸려있는 옷걸이도 있다.
태양이 섬과 수직이 되는 위치에 갔을 때 건물 주변에 서성이던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돌아다녔다. 잡화점 주인장은 점심으로 먹으려고 만든 샌드위치를 꺼냈다. 운이 좋은 이들은 지나가다가 하나씩 공짜로 얻어먹기도 했다. 주인장은 나이를 쉽게 유추할 수 없는 어두운 피부빛과 밝은 표정을 가진 아시아 남자였다. 인품 좋고 손이 큰 사람이다.
이 주인장은 매일 자신의 샌드위치를 직접 만드는 듯했다. 주인장의 샌드위치에는 양상추가 들어가 있었다. 꿈속의 그 양상추는 샌드위치 빵을 토양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샌드위치 사이에 껴있는 야채치고는 지나치게 생기를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장을 제외한 그곳의 몇몇 휴양객들은 그 싱싱한 양상추에 대해 전혀 의문을 갖지 않는다. 단지 그 샌드위치에는 연두색의 얇고 아삭 하나 스스로 그다지 풍미를 뽐내지는 않는 특별한 채소가 들어간다는 사실만을 느낄 뿐이다.
이 섬 안에서 양상추는 주인장에게 약간의 권력 비슷한 것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처음 가보는 곳에 처음 보는 것이 있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곳의 사람들은 양상추를 가진 주인장에 대해 가끔씩 선망할 뿐 신기해하지는 않는다. 주인장은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음료를 제조하는 것 이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각종 빵이 진열된 투명한 가판대에 팔을 괴고 섬 밖을 바라보며 보낸다. 상훈은 왠지 주인장이 그처럼 섬의 관찰자였다가 참여자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건물의 2층과 3층은 창마다 나있는 테라스 외에는 별다른 특색이 없어 보였다. 누가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좀 별 나보이는 점을 굳이 찾자면 건물 외벽을 들여다보면 되는데 2층은 빨간색 페인트로 3층은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건물은 아주 낡아서 페인트가 절반은 벗겨져 있다. 그러니까 콘크리트의 회색과 빨간색, 콘크리트의 회색과 파란색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진 외벽의 모습을 하고 있다.
1층 잡화점 앞의 협소한 공간에(아주 작은 섬 안의 아주 작은 공간이다) 모든 것이 플라스틱으로 된 파라솔 테이블이 몇 개 펼쳐져있다. 의자고 파라솔이고 테이블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다. 폭풍이 끝나고 다음 폭풍이 오기 전까지만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곳에는 대여섯 명의 휴양객들이 보인다. 모두 그늘을 찾아 앉아 있거나 서성거린다. 잡화점을 마주한 채 있던 상훈의 시점은 어느새 콘크리트 건물 3층 옥상에서 섬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바뀐다. 불현듯 해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시곗바늘이 누가 일부러 태엽을 감듯이 빠르고 불규칙하게 움직인다. 초침이 분침을 쫓는지 분침이 초침을 쫓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느새 섬과 수직 된 위치에는 찻길 옆에 치워진 눈처럼 축축하고 지저분한 먼지 색의 묵직한 구름이 해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과정 따위가 존재할 만큼 크지 않은 곳이다. 들어치는 파도에 잡화점이 부서진다. 그 순간 그 견고할 것 같았던 콘크리트 건물이 기울기 시작했다. 상훈은 그때 깨달았다. 그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것은 그 튼튼한 세 면의 벽이 아니라 주인장이 서있던 잡화점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 순간 깨어났다.
“맛있다. 버터 조금이랑 커피 한잔만 더 줄래?”
상훈은 팬케이크를 시럽에 거의 말아먹고 있었다.
“자, 여기.”
연주는 작은 접시에 버터 한 덩어리를 썰어 올려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커피메이커 앞으로가 내려진 커피가 들어있는 유리용기를 들고 와서 식탁에 내려놓았다.
“자, 원하는 만큼 마셔.”
“고마워.”
“계속 그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응,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감정이 굉장히 깊게 뿌리 박혀버렸어. 쉽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크기의 말뚝이 푹 하고 박혀버린 느낌이야. 나 원래 꿈같은 거 금방 잊는데. 더군다나 너랑 같이 있으면 더.”
“일단 든든히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 하자. 오랜만에 여행이잖아?. 이틀뿐이지만.”
“미안해. 곧 예전의 리듬대로 돌아올 거야.”
“쓰이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글.”
연주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두 명 정도는 있잖아.”
“읽어줄 사람이?”
“응.”
연주가 웃었다. 무언가 믿음을 주는 미소였다. 상훈은 불안하지도 않았는데 안심이 되었다.
“이제 시럽은 그만. 지나치면 안 좋아.”
상훈은 연주가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는 동안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가 끝난 그는 화장이 끝난 연주의 옷을 골라주었다. 그런 다음 상훈은 연주의 화장에, 연주의 옷차림에 맞추어 자신도 나갈 채비를 했다. 시간에 맞추어 집 앞으로 택시를 부르고 10분 정도를 달려 기차역에 내렸다.
표를 발권하고 탑승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둘은 역사 내 설치되어있는 대형 TV 맞은편 의자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디론가 가거나 어딘가에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이들로 북적였다. 상훈은 사람이 앉아있는 분위기만으로 그런 것을 구분해내고 있었다. 물론 전부 틀려먹은 추리 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의 머릿속에 그 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는 뜻임을 의미했다. 둘은 자연스레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이 뭉쳐있는 곳에 끼어들어 앉았다.
대형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슨 부처의 장관이 나와 며느리의 행실에 대해 해명하고 있었다. 유럽의 물가상승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물가상승 이야기가 나오니 상훈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체코의 맥주와 스페인의 로컬 와인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정치와 경제 이야기 바로 다음에는 각종 사건 사고에 관한 보도가 흘러나왔다. 생활고에 못 이겨 자식들과 함께 차 안에서 자살을 한 일가족의 이야기, 하수도에 휴대폰을 떨어뜨린 여자가 시청 민원실을 찾아가 항의하는 도중에 화를 못 이겨 공무원을 폭행했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아니, 자기가 하수도 위에서 덜렁댄걸 왜 관공서에 가서 따져?”
“근데 하수도면 시청이 아니라 도시공사에 가져 따져야 되는 거 아닌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연주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상훈을 쳐다보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 탑승구로 가면 얼추 맞을 거 같은데.”
둘은 각자 가방을 챙기고 일어났다. 상훈은 연주가 이동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탑승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아직 그의 시선 속에 있던 TV 화면에서 익숙한 곳이 송출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어두운 밤 상가를 들이받은 자동차 주변으로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었다. 아스팔트 위에는 흰색 스프레이로 드러누운 사람 윤곽이 그려져 있었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도로였다.
“저기 어디서 많이 본 곳 같지 않아?”
상훈이 앞서가는 연주를 잡아 세우며 말했다. 그 말에 연주가 TV로 시선을 옮겼다.
“어? 두 달쯤 전에 자기 동창하고 만났던 식당. 이름이 성호였나? 거기로 가는 외곽도로잖아. 쭉 나가면 고속도로.”
상훈은 연주의 말을 들으며 시선은 계속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뉴스 속 기자는 계속해서 그 사건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오늘 새벽시간 차사고가 있었고 보행 중이던 20대 남자가 사망했다. 자동차 운전자의 말에 따르면 골목에서 좌회전을 해 큰길로 나와 주행하던 중 갑자기 인도에 있던 사람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 시간에는 워낙 사람이 없는 길이기도 하고 가로등도 켜지지 않았던 길이라 인도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멀리서 미리 인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설령 인지했어도 그 사람이 뛰어들 거라는 생각을 어찌할까. 그런 환경이라면 운전자가 무언가를 인지한 후에는 이미 늦는다. 또한 운전자는 밤길이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짐작에 과속을 했다는 부분도 인정했다.
‘뛰어들었다고?’. 상훈의 머릿속에는 불현듯 아침의 꿈이 스쳐 지나갔다. 과정도 존재하지 못할 만큼 작은 섬. 섬안의 모든 것은 일회성을 띄고 있었다. 싱싱한 양상추가 들어간 샌드위치와 잡화점 그리고 주인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주 작은 섬을 향해 파도가 덮쳐온다. 섬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분침이 초침을 쫓는지 그 반대인지도 모르게.
“사망했다고 나오는 저 남자. 내 친구인 것 같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 친구 누구?”
“두 달 전에 만났던 동창 말이야. 성호.”
“확실해?”
“응. 그런 것 같아.”
연주는 말없이 상훈을 쳐다보았다. 그동안에도 상훈은 말없이 TV만 응시하고 있었다. 20대 청년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오는 대형 TV 앞으로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한 무리 다가와 멈추었다. 하나같이 검정과 남색 따위가 어우러진 무채색 고어텍스 원단의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시청권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각도로 TV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초대도 받지 않고 들이닥쳐 남의 새 가전제품을 이리저리 더듬어보는 집들이의 불청객 같았다. 별로 웃긴 것 같지 않은 농담도 역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마치 각자가 정한 농담마다 적절한 웃음 데시벨을 약속해놓은 듯이. 그들의 광대에 주름이 잡히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눈은 TV를 응시하며 입으로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낸다. 말의 폭포가 흐른다. 그중에서 그나마 제일 나이가 적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상훈과 연주가 서있는 근처까지 명료하게 들렸다. 나이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하관이 유난히 발달한 남자였다.
그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는 신기하게도 말을 제일 많이 뱉고 있었지만 표정이라고 할 것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 고지식하고 묵직하게 뿌리 잡힌 하관이 그의 모든 감정을 컨트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귀로 들어가야 할 타인의 말까지 모조리 낚아채 분쇄해낼 듯한 기세였다. 실제로 본인보다 최소한 10살은 많아 보이는 일행들의 말도 중간중간 냉정하게 끊어냈다. 묵직한 하관의 남자는 무리 중 본인의 착장에 가장 돈을 많이 들인 것으로 보였다. 상훈은 짐작이지만 아마 등산 경력은 제일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나이가 적어 보인다는 표면적인 단서를 배제하고서 그 남자의 옷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가장 깨끗했다. 세탁 여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옷이 더럽지는 않았으니까. 그 옷은 아웃도어 매장의 전면 유리에 비치된 마네킹에 입혀진 것 마냥 그 남자의 몸에 걸쳐져 있었다. 많이 입었으나 사용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불현듯 성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의 몸에 걸쳐져 있을 때 옷이란 건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부터 성격, 의도, 기분, 습관까지 대변해주지.’
뉴스에서는 자동차 운전자의 증언만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뛰어들었다.’는 키워드를 반복해서 노출시킴으로써 뉴스는 대중들에게 사망한 남자에 대해서 자살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평소 뭔가 하나에 지나치게 꽂혀있는 사람들이나 저런 짓을 하지. 운전자는 무슨 죄야?”
묵직한 하관의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 뜯어 우악스럽게 베어 물었다. 묵직한 하관의 남자가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에 있던 일행들은 별 말도 없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대었다.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하지 않으면 벌어질 일 때문에 비위를 맞추는 것 같았다. 별로 미안해 보이지도 않았다. 젊은 청년의 죽음보다는 초코바에 들은 견과류가 자신의 목을 메이게 하는 것이 더 신경 쓰이는 듯했다.
상훈은 묵직한 하관의 남자가 누구에게 미안해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그 남자 가 가진 메마른 감정의 오아시스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환경에서 갈증을 해소해줄 시원하고 촉촉한 공감한 모금은 사치다. 상훈은 문득 묵직한 하관의 남자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평생 남의 말을 씹어 뱉는 사람의 주위에는 벌레만 꼬이기 마련이다.
“죽은 사람한테 무슨 말을 저렇게 해? ‘저런 짓’ 이라니. 누가 흉볼까 봐 자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는 거면서. 오만하기 짝이 없어. 지나치게 꽂혀있는 사람들 이라니? 나는 아무에게도 진심으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스스로 떠벌리고 앉아있네.”
묵직한 하관의 남자를 향해 연주가 화를 냈다.
“아마 한 번도 잘못이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일걸. 자아가 너무 강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힘들어해도 끝끝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만들어내고 찾아오거든. 그리고 피해 입은 사람 앞에서 당당히 떠들어 대지. 오히려 그 피해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도록 말이야.”
“완전 싸이코아냐.”
“저런 사람들은 주변에 사람은 떨어져 나가도 뭔가 하나를 성공시키곤 해. 끊임없는 자기세뇌가 그런 곳에서 빛을 발하는 거야. 저런 사람은 남한테 절대 무언가를 베풀 수 없어. 베풀어도 그것은 마음이 아니라 일종의 전략에서 나오기 때문이야. 상호 간의 그 순수한 감정을 나눌 수 없어. 왜 나는 베풀었는데 상대는 안 좋게 받아들이지? 라고 생각할걸. 어차피 상대 탓이야 자신에겐 문제가 없어. 있을 수가 없지.”
“자기 피할 곳은 다 만들어두고 멋대로 영향력을 흩뿌리고 다니는 사람. 난 저런 사람이 싫어. 착한 척, 올바른 척.”
“나는 저 죽은 사람을 내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는 같은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네. 자살을 두둔하는 것도 아니고, 운전자의 사정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야. 아직 저 사람이 내 친구인지도 몰라. 다만 좀 슬프네. 이유가 어찌 되었고 죽은 사람이 누구이든 저렇게 죽자마자 섣불리 판단당하고 평가당한다는 사실이.”
“오늘 여행, 갈 수 있겠어?”
연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훈은 올려다보았다.
“일단 출발하자. 아직 그 친구인지 확실한 건 아니니까.”
연주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상훈은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성호는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죽었다. 스스로를 죽였다. 차에 뛰어들어서. 상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달 전 연락처를 교환할 때 받아놓았던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거는 직감뿐이었다.
그렇지만 상훈은 왜 이런 불길한 직감이 이렇게 확신 있게 드는지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성호의 죽음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죽지 않았어도, 죽었어도 그에 맞는 자세를 취할 자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연주와 상훈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기차를 탑승한 후에 줄곧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2시간쯤을 더 달려야 한다.
“두 달 전에 네가 한 이야기.”
긴 침묵을 깨고 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호기심 어린 말투였다.
“내가 한 이야기?”
“응, 그 친구의 5년에 대해서. 혼란 속에서도 자신과 화해하며 스스로를 재건해나갔을 거라고 이야기했었잖아.”
“기억나.”
“그 친구를 본 건 그때 한 번뿐이었잖아.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상세한 추측을 한 거야?”
“근거 같은 게 어디 있어. 처음 본 사람인데.”
“정말 그냥 막 내뱉은 말이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말해줄래?”
“내가 그랬었으니까. 그 친구도 대강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어. 결국은 ‘꿈을 포기했다. 현실과 타협했다’는 상황과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랑도 맥락을 함께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 친구를 빌려 자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한 거야.”
“어떤 부분에서 그 맥락을 느낀 거지? 나는 나와 정반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자기도 그 친구도. 용기 내어 현실과 타협한 객관적이고 어른스러운 사람들이라고. 반면 나는 나만의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이유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인 빛 좋은 개살구라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과거를 재해석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재해석?”
“스스로에 대한 용서나 화해, 이해 같은 것들로 대변되는 일. 그러나 단지 해석이 아닌 재해석을 함으로써 현실과 미래에까지 영향을 줄 필요가 있는 사람들.”
“역시 그랬나. 그럼 그 친구는 화해나 재건에 실패한 게 되는 건가?”
“왜 계속 죽었다고 가정하고 말하는 거야?”
연주는 좀 답답한 듯 쏘아붙였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대답해주면 안 될까?”
“아,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모처럼 여행 가는데 왜 죽음 같은 걸 생각해야 돼?. 난 자기랑 달리 어디로 떠나는 게 일상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고 지금 내가 대화에 응해주면 여행이 마무리되는 내일까지 지금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신경 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약속해. 설령 진짜 그 동창이 죽었던 거라고 해도 내일이 돼서야 대응하게 되는 건 내 탓이 아닌 거야. 그리고 어디까지나 대화에 응해줄 뿐이야. 본인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다고 계속 물고 늘어지지 마.”
“약속할게.”
연주는 조금 숨을 고르고 말을 다시 시작했다.
“음……자기표현을 빌려볼게. 끝끝내 그 친구는 오랑우탄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긴 시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가가려 노력했을 거라면서. 그래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 않았던 거야. 어미를 데려와도 소용없어. 왜냐면 이미 그 오랑우탄은 그 친구의 오장육부를 꽉 붙들어맨 채 죽어버렸거든. 대롱대롱. 죽어서 썩어가는 오랑우탄의 시체는 사후에도 남아 숙주까지 문드러지게 만드는 거지. 장기를 쥐어짜며 남겨진 유인원의 악력과 함께.”
연주는 자신의 검지와 엄지를 맞붙여대고 마치 추에 연결된 실을 좌우로 흔들듯 손을 움직였다.
“오랑우탄이 죽었다?”
상훈은 의외의 해석에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애초에 상훈이 연주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다는 것은 이런 신선한 관점을 기대한 것이기도 했다.
“자기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존재인 오랑우탄을 돌려보내고 타이를 방법으로 직면을 선택했지. 그 도구는 글쓰기였고. 글쓰기를 하면서 오랑우탄과 어느 정도 친해질 수 있었어.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그 이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그런 게 없었을까? 나름의 탈출구가 없었을까? 정말 옷을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을까? 옷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그때 자기한테 털어놓았던 말들이 전부 진심이었을까? 꾸며낸 건 아니었을까?”
“그야 모르지.”
“맞아, 모르지. 노력을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어.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안타깝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비관한 채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 혼란은 누구나 겪어.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혼란의 시간 속에서 태어난 무언가가 오랑우탄을 살해당하게 만든 거야. 스스로 그랬던 타인이 그랬던 말이야. 빈틈을 노렸던 때린 곳을 계속 때렸던 무엇이 되었든 간에 아무튼. 죽은 오랑우탄을 내면에 짊어진 사람은 오로지 무력감으로 밖에 세상을 대할 수 없어. 바닥이 없는 무력감. 회복 불가능한 무력감.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심장을 꺼낼 수는 없어.”
“무력감은 삶의 모든 의미를 앗아가. 짧게나마 겪어봤거든.”
“삶의 모든 의미를 빼앗긴 사람은 어디서 의미를 찾으려고 할까?”
“죽음?”
“죽는 행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게 아닐까. 숨을 거두는 행위만 남았기 때문이야.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단이. 결국 모든 것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기 위해 존재하는 거지.”
“죽음 역시 그렇지 않아?”
“죽음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을 통해 그 의미가 끊임없이 변모하고 탄생하잖아. 오히려 살아있을 때 보다 더 다채롭게. 다만 스스로가 직접 의미를 부여할 기회를 박탈당한 후이지만.”
“슬프군.”
“슬픈 일이야.”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저 사람이 내 친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말이야.”
“뭔데?”
“왜 차로 뛰어드는 방법을 택했을까. 목숨을 완전히 끊어버리기에는 너무 실패 가능성이 많은 시도잖아.”
“운전자가 직접 인정했잖아. 과속을 했다고. 뛰어들기 전 충분히 성공할만한 속도라도 판단했겠지.”
“아무리 과속을 했더라도 그렇지. 시속 몇 킬로미터로 달렸는지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저긴 어디까지나 국도인걸. 그리고 운전자가 급정거를 했을 수도 있고 방향을 틀어버렸을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어떻게 알아. 우발적이었거나, 세상에 일말의 미련 같은 게 남았거나 그랬겠지. 혹시 알아? 실패로 끝나려던 게 원래 계획 었을지.”
“죽는 건 계획에 없었다?”
“어딘가의 문턱에만 갔다가 돌아오는 걸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많아.”
기차에서의 대화 후 좀 암울해진 분위기와는 달리 연주와 보낸 이틀간의 시간 속에서 상훈은 순수한 행복감 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일을 생각하지 않고 어딘가로 떠나온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것도 연주와 함께 말이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자랑스러워했다. 스스로 일으킨 그 고양감을 만끽하고 연주와 그것을 농밀하게 나누었다. 두발로 여행지의 곳곳을 누비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숙련된 바텐더의 칵테일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연주와 상훈은 서로에게 자신의 육체를 내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 어린 따뜻한 물방울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 물방울이 붉은색의 스펙트럼을 빠르게 넘나들며 세 번이나 전율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상훈은 내면에 가득 차 있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전부 발산했고 연주는 내면의 결핍으로 텅 비어진 허공을 그를 이용해 탐욕스럽게 채웠다. 기차에서 내린 후 호텔로 들어선 순간부터 상훈은 친구의 죽음 따위 깨끗하게 잊어버린 후였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상훈의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발신인을 보니 성호였다. 그러나 내용을 읽은 상훈은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성호의 부고를 전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문자를 보내온 것은 성호가 아닌 그의 가족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상훈은 메시지 대화창이 띄워진 휴대폰을 말없이 연주에게 건넸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귀가한 그날 밤 상훈은 오랜만에 그림자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림자는 상훈이 집에 와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나타났다. 침대 한편에는 검은색 양복이 놓여있었다. 한 시간 정도 쉬다가 성호의 장례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자네를 다시 만나러 발렌시아까지 갔었어.”
그림자임을 짐작한 상훈이 먼저 말을 건넸다.
“괜한 짓을 했군. 그렇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닌데. 뭐하는 중이었어?”
“꽤 오래 전이야. 자네도 시간이란 걸 느낄지 모르지만. 굳이 자네를 찾지 않기로 한지가 꽤 되었다는 얘기야. 나는 연인과 여행을 다녀왔네. 돈을 어디에 제일 많이 썼는지 좀 생각해보고 있었어. 꽤나 실감 나는 여행 복기 방법이야. 자네가 왔다는 건 우리 회의가 다시 열린 건가?”
“아, 조금 애매해. 뭐 일단 그런 거라고 해두지. 그것보다는 뭘 좀 알려줄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온 거지만.”
“저번엔 영문도 모르고 소환된 것처럼 말하더니, 역시 그쪽은 마음대로 이렇게 현현(顯現) 할 수 있으신가보구만?”
“오해하면 억울해. 소환된 건 맞아. 내 의사와 상관없다고. 저번에도 말했잖아 어차피 우리는 하나라고. 당신에게서 내가 뻗어 나오고 내게서 당신이 뻗어 나오는 거지. 단지 소환되는 순간 내가 여기 왜 왔구나를 알 수 있는 것뿐. 그냥 어떤 역할이 부여된 것일 뿐이야.”
“내 머릿속에는 새로 추가된 정보가 없어.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역할인가?”
“일단 들어보고 질문하라는 뜻이겠지.”
그림자는 연이은 상훈의 질문이 조금 귀찮은 듯 대충 얼버무렸다.
“얼마 전에 사고가 좀 있었어. 우리와 관련된 거야.”
“사고?”
사고. 상훈은 옆에 누워있는 자신의 검정 양복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래, 하나의 세계가 파괴되는 일이지.”
그림자는 힘없이 말했다.
“동창을 말하는 거지?. 우린 하나니까 친구의 존재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나는 뉴스로 일단 접하고 가족에게 문자를 받았네. 자동차 사고였더군. 안 그래도 조금 쉬었다가 채비를 하고 가볼 예정이었어.”
상훈은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양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건물에서 뛰어내렸어.”
“어떻게 자네와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다를 수 있지?”
그림자의 말을 들은 상훈은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걸터앉았다. 그림자는 말이 없었다.
“뉴스에 보도된 운전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 친구가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던데.”
상훈이 그림자를 향해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온 거라고. 그 친구는 차에 치이기 이전에 이미 사망해 있었어.”
“그럼 누가 일부러 수고스럽게 죽은 그 친구의 시체를 들어서 달려오는 차에 던졌다는 이야기야? 뛰어든 것처럼 보이도록?”
“그렇다니까. 정확히 말하면 과속하는 자동차는 예정에 없던 사건이지만.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던졌다기보다 쓰러트린 거야.”
“대체 이미 죽은 사람을 왜? 그럼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도 동창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닐 수도 있나?”
“살인? 아니야 그건 확실해. 뛰어내린 건 동창의 의지였어.”
“이해가 안되는데. 뉴스 보도를 보면 CCTV 화면에 그가 뛰어드는 모습이 찍혀있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설마 뛰어내렸을 때 동창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나? 차에 던져진 건 일종의 확인사살 같은 거야?”
“아냐. 차에 치이기 전에 사망해있었다니까.”
“대체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육체가 숨을 거두면 장례를 치르지. 그것은 영혼을 다루는 의식이야. 영혼을 다룬다는 건 일종의 정신적인 과정이고.”
“그건 왜?.”
“사실 그전에 육체가 숨을 거둔 직후 정신을 수습하는 처리반이 와.”
“처리반? 너무하는 군. 이제야 내 그림자가 눈앞에서 말하는 거에 좀 익숙해졌는데. 그럼 사후세계는 없는 건가? 육체의 소멸은 정신의 소멸이야?”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정신은 재사용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많은 경우 이미 육체보다 정신이 먼저 죽어있을 때가 많아. 이번 우리의 동창이 그런 케이 스지.”
“그래서 동창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직후에 그 처리반이 왔었다?”
“응, 거기서 좀 사고가 발생했던 모양이야. 아직 죽어있는 정신을 분리하기 위해 처리반이 들어가 있는 과정에서 육체를 다루다가 달려오는 차를 향해 넘어진 거지. 유난히 좀 꽉 붙어있었고 그러나 많이 메말라있었나 봐. 조심하지 않으면 다 부스러져 날아가 버릴 정도로. 처리반이 육체 자체를 움직이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문데 말이지. 이례적인 일이야.”
“이걸 내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여전히 자살이라는 사실은 남아있잖아.”
“경각심. 오랑우탄을 잘 돌봐주라는 이야기지. 당신보다 먼저 죽지 않도록 말이야. 당신의 뒤처리를 하는 나는 항상 노파심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친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던데. 행동으로 이어지는 생각, 체감을 통한 자각. 글을 쓰는 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담기에 아주 좋은 그릇이지. 이야기의 형태를 빌렸다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정말 기대돼.”
그림자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다시 멋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주변이 한층 밝아졌다. 어둠이 한층 옅어진 것이다. 오랑우탄은 어떻게 아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상훈과 그림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긴 하다. 그래도 상훈은 왠지 언짢았다. 단지 그뿐이라니. 처리반이니 수습이니 멋대로 지어낸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걸 떠벌려놓고는 그 의도가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니. 성호의 죽음은 그렇게 밖에 해석될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성호의 죽음은 오랑우탄을 돌보지 못한 스스로의 불찰이라는 것인가.
상훈은 그것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돼는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연주의 말처럼 육체가 아닌 정신도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 의해 살해당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살인사건처럼 말이다. 기차역에서 보았던 그 묵직한 하관을 가진 남자 같은 사람들은 그 정신 살인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그림자는 그렇게 멋대로 말을 흘리고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성호에겐 5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5년이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하나의 범위가 설정되기까지는 삶 전반이 모두 기여했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상훈은 약 8개월간의 시간 속에 살아있다. 시간의 질적으로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나 양적으로는 아직 성호가 앞서있다. 다만 상훈의 입장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무작정 기준점 삼을 수는 없다.
상훈의 끝도 결국 성호와 같을까? 당연히 그도 죽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죽는다는 지고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죽은 육체의 자살’을 말하는 것이다.
상훈은 살아있고 성호는 죽었다. 그것만은 자명하다. 성호의 오랑우탄은 죽었고 -아마도 성호가 육체적으로 사망하기 훨씬 전에- 상훈의 오랑우탄은 아직 살아있다. 확실한가? 확실하다.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상훈은 아직까지도 긴고아를 쓴 손오공이 된 느낌으로 살고 있다. 손오공의 긴고아와 다른 점이라면 어느 정도는 착용자가 직접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긴고아가 조여지는 행위에 대해 그저 고통이라고만 이름 붙이는 것을 멈추었다는 점도 그렇다. 그러나 아직 긴고아를 벗어던진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벗어던져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을 멈추었다.
상훈은 왜 살아있고 성호는 왜 죽었을까. 그 차이의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기에 삶과 죽음을 결정지었을까. 상훈은 왜 살아있어야 하고 성호는 왜 죽어있어야만 할까. 삶과 죽음. 둘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벌어져있을까.
겉으로 보면 상훈은 자신을 회복시키고 있다. 전보다는 미래를 더 신경 쓰게 되었다는 관점에서 그렇다. 반면 성호는 자신을 파괴했다. 과거만 남기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깡그리 없애버렸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파괴해 버렸다. 그것은 스스로나 주변인들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일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정말 스스로 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회복과 파괴는 좋고 나쁨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면 회복되던 중 파괴된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어진다. 아니,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설명되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엔 파괴만이 강렬하게 남는다. 그럼 그것을 싸잡아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회복하려 했던 사실은 없어지는 것인가? 또한 파괴되던 중 회복되어 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회복이 되었다고 치자. 과연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되는 것일까?
그 결과를 만든 과정에 대해 누가 속속들이 인정해줄 것인가. 지금의 결과가 앞으로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해줄 수 있는가. 어느 측면에서는 성호의 선택은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재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누가 결정한 것 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낼 수 없다면 상훈은 아마 자신이 책을 끝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대상을 특정할 수가 없다. 오랑우탄인가? 나인가? 낯설음인가? 그림자인가? 총체적인 나 인가? 세계인가?. 나열한 모든 것은 전부 상훈의 안에 있는 것들 뿐이다. 좋게 말해 그는 회복해가는 과정이니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이미 파괴된 성호를 향해 모든 것은 너의 내면에 있던 것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상훈은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책임 여하와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내면은 연결되어 있다.
아니면 딱히 그런 것을 결정하는 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서 남겨지거나, 보여지거나, 쌓이게 된 순간순간들의 존재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로 결정되어 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엉킨 실타래 속 군데군데 꼬여 동그랗게 뭉쳐져버린 매듭처럼.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또는 자신에게- 삶은 엉킨 실타래 같은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