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Oct 18. 2024

암에 걸려 좋은 점 9 - 나 좀 멋진데?

암에 걸린 후 가장 큰 배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하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챙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재미없게 오래 사느니 재미있게 적당히 살다 일찍 죽는 게 낫겠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은 '적당히 살다 일찍 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몰라 그리 말한다.

죽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고, 대부분의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을 육체적 고통과 함께 이 생을 버티고 버티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나만 아는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 나만의 세상에 갇혀야 한다.

누군가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불에 타는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혹여 나의 뒤척임을 가족들이 눈치챌까 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눈치를 챈다 한들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고 걱정만 커질 뿐이기에)

창가에 앉아 모두가 잠든 도시를 응시한다. 처절하게 외로운 시간이었다.

이 고통이 끝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비장함이 솟아올랐다.

눈밭에 홀로 선 장군과도 같은 비장함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이 고통들을 내가 있는 그대로 맞닥뜨려 주겠다.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내 몸이 고슴도치가 되어도 나는 버티리라.


소름. 나 좀 멋진데?


암에 걸리기 전의 나보다 암에 걸린 후의 내가 더 좋아진 게 바로 이때부터였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서 내 몸에는 3개의 문신이 남게 되었다.

(매일 동일한 위치에 방사선을 쏘기 위한 기준점으로, 흉통의 왼쪽, 오른쪽, 가운데에 타투를 새긴다. 사실 이 점은 지름 1mm로 일반 점보다 살짝 큰 정도다.)


종종 남편이 모든 치료가 끝난 후 내 몸에 남겨진 이 점들을 보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오~ 문신 있는 여자네~"

나는 또 이렇게 받아친다.


"문신만 있게? 나 칼빵도 있는 여자야!"


가슴과 겨드랑이에 남겨진 수술 자국으로 농담도 칠 정도로 강해진 내 모습이 꽤나 흡족하다.

나 좀 멋지다!

이전 09화 암에 걸려 좋은 점 8 - 어린 날의 치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