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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소불고기 김밥을 선택한다는 것

by 채움



11월이다.

겨울을 문턱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공기가 집을 에워싼다.


나는 겨울이 싫다.


엄동설한의 날씨가 멀쩡한 사람을 괜히 옥죄고 웅크리게 만든다.

겨울 특유의 우중충한 분위기도 싫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던데, 햇볕을 쬐기에는 날이 너무 춥다.

'날이 춥다>나가기 싫다>집에 있기>우울하다>나가야 한다>날이 춥다'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아가는 꼴이다.


무엇보다 겨울은 늘 선택의 계절이었다.

고입, 대입, 수능, 임용 등 굵직굵직한 시험들이 죄다 겨울에 몰려 있다. 연말이면 내가 골라낸 답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성과 성찰은 셀프요, 자책과 자학은 원쁠원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교사가 되고 보니 이제는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그 기로에 서 있다.

무수한 경우의 수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선택을 한다.

물론 아직은 나이가 어려 어른의 입김이나 시간의 압박에 따라 선택을 종용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본인의 주관이 들어 있다. 그러니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도 본인의 몫.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참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엔 세상의 쓴맛을 처음으로 맛봐야 한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야."라는 말이 참 무심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그 '별일 아닌 일'이 인생에서는 메워지지 않을 정도로 큰 흉터로 남을 수도 있기에, 괜히 서글퍼진다.




#1.

하지만 올해 겨울은 시작부터 따뜻했다.

작년에 가르쳤던 제자가 예고에 합격했다며 연락을 준 것이다.


또래 여학생들보다 작고 왜소했지만, 유연한 몸과 넘치는 끼로 춤을 잘 추던 친구였다.

재작년 가르쳤던 제자가 들어간 예고에 자기도 꼭 가고 싶다며,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비법을 캐묻곤 했는데.. 결국은 해냈다.

못내 자랑스럽고 기특한 마음에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작년 한 해 나의 매니저처럼 행동하던 아이였다.

내 시간표를 나보다 더 잘 꿰고 있어서,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면 “이제 6반 가셔야 해요!” 하며 손을 잡아끌었다.

교과서 앞면에 시간표를 붙여놓고, 컴시간 알리미도 있어 클릭 몇 번이면 다음반 수업 확인이 가능했지만, 매니저 노릇을 톡톡히 해내던 녀석을 눈에 자주 담고 싶어 일부러 몇 반을 가야 되는지 묻곤 했었다.


우호적이었던 우리의 관계 속에서 딱 하나 삐그덕거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급식 문제'.


- 싸랑하~~~는 선생님~~~ 제가 춤 동아리잖아요~? 점심시간에 춤 연습을 해야 돼서 핸드폰을 잠깐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 싸랑하~~~는 정민아, 급식은 어떡할 거니~~?

- 오늘은 춤 연습이라 급식은 먹지 못하고~~~~

- 응, 안돼. 돌아가.

- 아 선생님!! 내일부터는 밥 잘 먹을게요ㅠㅠ 오늘 급식 맛없단 말이에요!

- 오늘? 와 오늘 진짜 맛있어서 두 그릇 먹고 옴. 먹고 오면 핸드폰 줄 테니까 빨리 갔다 와~~


이런 티키타카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어졌다.

[밥 먹기 싫으면 같이 나오는 과일이라도 먹고 와라, 주스 나오니까 그거라도 마시고 오던지. 춤 연습하려면 배고프잖냐. 아침도 안 먹고 오면서.]

라는 잔소리를 1교시부터 점심시간까지 반복했다.

내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아이는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안 먹겠다는 것을 억지로 먹이느니 흐린 눈 하고 봐 주자며 눈 감을까 싶다가도,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그렇지 못한 춤사위를 볼 때마다 영 신경이 쓰여 도저히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급식을 안 먹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아이를 붙잡아 회유하고, 부모님께 전화한다고 협박도 해보다가 결국 각서까지 받아냈다.

급하게 휘갈긴 글씨 너머로 아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핸드폰 가방을 꺼내며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녀석, 춤추는 게 그리 좋을까.






#2.

교사가 된 뒤로 내리 사용하고 있는 급훈 [삶에 정성을 다하자]은 아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을 가르치는 나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삶에 정성을 다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

자유의지를 가져라. 내가 직접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삶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답을 내려라.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지라도. 어떤 선택이든 나는 너희들의 선택을 존중할 테니까.


조종례 시간이나 개인 상담을 하면서 늘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 귀가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이미 세상의 단맛, 쓴맛을 알아버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나를 발견할 때이다.

‘이 길은 괜찮을까. 잘 버틸 수 있을까.’

사방에서 걱정이 튀어나와 나의 발목을 잡는다.


미용사를 꿈꾸며 뷰티과 진학을 고민하거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조리고를 희망하는 아이들을 보면 꿈보다 ‘현실’이 먼저 떠오른다.

너무 큰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어화둥둥 사랑으로 키운 내 새끼가 가시밭길 위를 걷는 것은 아닐까

형형색색 풍선껌보다 더 부푼 아이들의 꿈보다 당장 닥칠 현실이 눈에 그려져 걱정부터 앞선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선택하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 당당하고 용기 있는 모습에 가슴이 요동을 친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그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감탄과 존경심마저 들 때가 있다.

나는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아이들은 해내고 있다.


삶에 정성을 다하다 못해 전부를 '쏟아붓고' 있는 아이들.

선택과 결단 사이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그 길에 이제 막 문을 두드리고 첫 발을 떼는 모습들이 마치 새벽이슬을 한 움큼 먹고 반짝이는 잎사귀 같이 파릇파릇하다.



선택에 기로에 놓인 아이들에게 몇 년 안 살아본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


#3.

제자의 메시지를 남편에게 읽어주며 오늘 메뉴는 '소불고기를 넣은 김밥'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에 맞는 답을 찾을 것이다. 이리재고 저리 재면서.

그렇다면, 적어도 아침 메뉴 하나쯤은 내 마음 가는 대로 골라도 괜찮지 않을까.


춥고 메마른 겨울인데, 인생까지 시험받는 느낌으로 살 수는 없다.

소불고기가 미어터지게 들어간 김밥 한 줄이, 헛헛한 겨울 아침을 단단하게 채워줄 것이다.

게다가 집에서 만든 김밥은 신기하게도 4줄이든 5줄이든 끝도 없이 들어간다.

이보다 기똥찬 선택지가 또 있을까.


오늘따라 그 아이의 춤사위가 그립다.

급식 때문에 춤 연습에 늦거나 못 가는 날이 많았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시간에 깔깔거리며 교무실에 들러 스케줄을 체크해 주던 아이.

그게 그렇게도 고마웠다.


부디 녀석의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소불고기로 속을 꽉꽉 채운 김밥처럼,

다시 만났을 때는 더 단단하고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속에 등장하는 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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