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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Nov 01. 2024

#20. 그러니까 이건, 너와 내가 만든 첫 요리

: 난리법석 우당탕탕 아침 만들기 대작전

너랑 처음으로 만든 유부초밥, 좀 짜더라. 새벽이라 앞이 안 보여서 조미료를 많이 넣었나 봐.



"새벽에 무슨 일이야? 얘 정신 놓은 줄 알았어."



아이가 이상하다. 잠을 자지 않는다.

백일까지 통잠을 잤던 아이라 잠과 관련해서는 크게 속 썩이는 일이 없었다.

요 근래 새벽에 한 번씩 깼으나 그러다 말겠지, 우리는 무난하게 넘어가겠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아이는 잠을 잔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울면서 일어났고, 그것을 시작으로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우리는 저녁 8시부터 아침 7시까지 1-2시간 단위로 깨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돌아가며 강제 불침번을 서야만 했다.

마루에서는 남편의 한숨이, 나의 말도 안 되는 잔소리가 교대로 이어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이의 빛나는 눈동자였다.






#1.

새벽 4시 40분이 넘었을 무렵,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을 못 잔 탓에 예민해진 것인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실제로 아이의 "끙~"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 홈캠을 확인해야만 했다.

얼마나 잤을까.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붙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또 깨고 말았다.

홈캠 너머로 비치는, 별보다도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새벽에는 잠을 자야지, 너만 왜 혼자 일어나 있냐. 주경야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뒤집기 때문에 잠에서 깬 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짜식아!


올라오는 화를 속으로 삭이며 다시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퍼버법을 시도하기에는 개월수가 부족했고, 부부의 정서상 맞지도 않아 안눕법, 쉬닥법을 돌아가면서 진행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아이의 정신은 또렷해져만 갔다.




#2.

시계는 어느덧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럴 바엔 아침이나 만들어야지.


며칠 전부터 벼르던 유부초밥을 만들기로 하였다.

재료는 이미 정리하여 냉장고에 넣어둔 상태라 바로 꺼내서 만들기 용이했고, 가열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상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밥을 유부 안에 넣기만 하면 되니 이것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요리가 어디 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이 쉽고 간단한 요리가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전혀 몰랐다.)


밥을 푸고 유부초밥 재료를 섞었다 .('때려넣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맞을지도..)

칭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재빨리 아기띠를 두르고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기띠를 두르면 아이가 금방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초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움직임이 덜 했는지 목소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급하게 장갑을 벗고 토닥토닥을 하며 마루를 1~2바퀴 돌았다.


순간, 팔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두 개로는 요리를 하고 두 개로는 아이를 달래면 될 테니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아이를 재우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이지만 그마저도 안 하고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너머로 고객님의 니즈에 맞춰 얼마나 토닥토닥을 했을까.

강약중간약으로 세기를 조절하던 토닥토닥 덕분인지 버둥거리던 아이는 조용해졌고, 서둘러 부엌으로 가 유부초밥을 마무리 지었다.

20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유부초밥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고작 유부초밥 몇 개 만드는데 이렇게 기가 빠질 줄이야.




#3.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소파에 널브러져 숨을 돌렸다.

적막한 새벽과 고요한 아침의 어딘가.

매일 생활하는 공간인데 오늘따라 나 혼자 덩그러니 떠 있는 느낌이다.


- 새벽에 깬 이유가 뭘까. 오늘 하루 어디서부터 틀어졌길래 반 토막짜리 잠을 자지.

- 내일도 이러면 어떡하지. 책에서 보던 4개월 원더윅스 시작인 건가. 길면 한 달도 넘게 간다던데..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비슷한 케이스를 찾기 위해 맘카페에 들어갔다.

애바애라 문제도, 해결 방안도 다르겠지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잠깐이나마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검색창에 새벽깸, 4개월, 원더윅스 등의 단어를 조합해서 치던 와중에 이 음식은 딸아이와 만든 '첫' 음식이 되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출산 전부터 태어날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놨었는데, 그중 하나는 '아이와 함께 만드는 음식'이었다.

우리의 첫 요리는 딸의 유치원 소풍날이지 않을까.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로 같이 김밥을 만들거나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면서 까르르 웃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당근 같은 재료는 아이가 싫어할 테니 음식 안에 몰래 넣어야지, 김밥은 꼬다리가 제일 맛있으니까 오빠랑 아이 입에 하나씩 넣어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혼자 흐뭇해했다.


피곤에 찌들어서 음식 간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지도 못한 채 유부에 밥을 쑤셔 넣는 이런 모습은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와 상호 소통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기껏해야 아이는 옹알이를 몇 번 하다가 결국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자버렸다.

이게 모녀의 첫 요리라니.

영화로 치면 "난리법석 우당탕탕 아침 만들기 대작전" 이라는 제목이 붙어야만 될 것 같았다.






"오, 그 와중에 유부초밥을 만들었네?"

"응.. 아주 사연이 많은 유부초밥이었단다.."

"자기 얼굴을 보니까..ㄱ.. 그래 보여.."

"아, 참고로 쟤랑 같이 만든 거야, 저~기 저 친구랑. 아주 환장대잔치였지^^;;"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남편과 새벽에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나누며 침대에 뻗어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태평하게 잠을 자는 아이를 보니 실소가 터졌다.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운 녀석.

그래, 잠 좀 못자면 어때. 주말에 몰아서 자지 뭐.

이걸 너랑 처음 만든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렇다고 믿을래.

아마 엄마는 죽을 때까지 이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옹알이로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랑 함께하는 첫 요리라 행복했다고, 꽤 재미있었다고 이야기 한 것이라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브런치스토리에 늘 화요일 연재로 글을 올리곤 했으나, 잊고 싶지 않은 일이라 무리해서 써 봅니다.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휘발되는 기억들을 한 조각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날이요.

정제되지 않은 글과 감정들이지만 '번외'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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