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들은 어떤 “파” 인가요?
작년 하반기 임신을 했을 무렵, 교무실에서는 태어날 나의 아이 이야기와 선생님들의 육아 추억팔이로 꽤나 시끌벅적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게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부리나케 교무실로 달려와 내 상태를 체크하고 잔소리를 하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늘 복작복작 정신이 없었다.
이때 아이들의 역할은 크게 네 분류로 나누어진다.
- 의무병: 몸은 괜찮은지, 입덧이 심하지 않은지 체크.
- 잡상인: "입덧 심하시면 젤리 드실래요?"를 외침.
(젤리를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있음)
- 지식인: 선생님, 지금 시기에는 xx를 하는 게 좋고요(잔소리x200)
- 보디가드: 선생님 귀찮게 하지마. 지금 힘드시다고
(주변에 있던 친구가 “니나 잘해라”를 언급할 경우, 선생님의 피로도는 급증가)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종이 울릴 무렵이면 늘 티키타카를 하는 아이들을 떼어놓느라 정작 나는 쉬지도 못했지만, 나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툰 행동들이라 여기며 행복해했다.
당시 2학년부 교무실은 나 포함 총 7명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다들 결혼을 하셔서 적게는 4살, 많게는 17살까지의 자녀를 두고 계셨다.
다시 말하면 육아 베테랑들만 모인 셈이다.
선생님들의 육아 추억팔이는 아이의 사랑스러움과 하드코어 그 사이 어딘가로 잡혀있었으며, 육아 난이도에 따라 목소리의 크기도 달라졌다.
그때의 나는 이것들이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인 줄도 모르고 마냥 웃기만 했었다. (어찌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 죄다 주옥같은 내용들이니 귀에 때려박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중에 단연코 화두가 된 것은 육아 시간의 밥 문제 해결하기.
'국에 말아먹기 파'와 '주먹밥 파'로 갈렸었는데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국에 말아먹기 파>
- 아이가 언제 울고 보챌지 모르기 때문에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
- 국에 말아서 후루룩 원샷 때리면 소화 잘 됨.
-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데 언제 주먹밥을 만들고 있냐, 전날 밤에 국만 끓여놓으면 돼서 시간 절약 가능.
*<주먹밥 파>
- 국이 뜨거워서 후루룩 하기 힘듦.
- 중간에 애라도 울면 식은 국과 밥을 먹어야 되는 불상사 발생. (가뜩이나 혼을 쏙 빼놓고 밥 먹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식은 국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눈물이 절로 나옴)
- 오며 가며 집어먹을 수 있어서 육아 및 집안일 등 하기 용이함.
선생님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잘 들리지 않았다.
신혼 생활을 하며 제철 재료들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던 때라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부쩍 생겼고, 아무리 육아가 힘들다지만 설마 밥 먹을 시간이 없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자 있을 때 더 맛있게 잘 차려먹자'가 몸에 베인 터라 아이가 태어나도 난 여전히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흘러 육아를 하다 보니 때맞춰 밥 챙겨 먹기가 아니라 '때때로 밥 챙겨 먹기'가 되어 버렸다. 24시간 아이의 패턴에 맞춰 같이 흘러가다 보니 어영부영하는 날에는 그마저도 먹지 못해 남편이 오기 전까지 빈 숟가락만 빨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렇다고 맥없이 당하고만 있는 것도 싫어 요새는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30분-1시간 먼저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곤 한다. 대부분 내가 만드는 요리는 주먹밥, 김밥, 유부초밥.
김밥과 유부초밥은 자잘하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개는 주먹밥을 만든다. 그것도 넉넉하게.
점심에 먹을 양까지 만들어 배고플 때마다 수시로 집어먹는다.
굳이 따진다면 나는 “주먹밥파”이지 않을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가끔은 국물 있는 요리가 먹고 싶다.
눅진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오장육부를 뜨끈하게 데우는 것도 좋지만,
뜨거운 국물을 천천히 마시며 나에게 할당된 그 시간을 충분히, 여유롭게 즐기고픈 마음이 크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테이블에 앉아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뜨끈한 국물 요리를 먹으며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그렇게 식사 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많이 가볍겠지.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는 음식보다는 시간을 음미하는
과정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날이 점점 차가워진다.
그동안 아이의 병원이나 성장 사진을 찍는 등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외출을 감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백일이 넘게 외출을 하지 않았다.
바깥 날씨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는 날씨 정보에 함께 뜨는 온도로 추측하거나 선생님들이 반팔을 입는지, 긴팔을 입는지 남편에게 물어보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요 며칠 비가 오고 날이 부쩍 쌀쌀해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11층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옷을 벗기 시작했다.
뜨끈한 국물 요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남편이랑 뜨끈한 전골 요리를 해 먹어야지. 그리고 그 시간들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내 삶의 온도를 조금씩 높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