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에 묵혀둔 묵은지로 고등어묵은지찜을 만들다가 고등어는 10월 제철 음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애가 울어대는 난리통에 제철 음식으로 밥을 해 먹었다고? 우린 정말 대단해!라며 남편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남편은 주재료인 고등어가 깡통 통조림에서 나온 것인데 그게 제철 음식에 해당되냐며 옆에서 깔깔거렸다.
왜, 뭐, 고등어 통조림도 고등어는 고등어지.
오히려 통조림 속에서 숙성의 시간을 거치니 감칠맛도 나고 뼈까지 먹을 수 있어서 칼슘 섭취도 가능하다고!
그때부터였다.
고등어 통조림을 구구절절 옹호하기 시작한 것이.
그 모습은 마치 토론 수업에서 입/반론을 깡그리 망친 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최종 발언을 하는 학생 같았다.
개똥철학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남발하며 고등어 통조림을 설명했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고등어 통조림을 제철 라인에 넣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철 음식은 '특정 시기나 계절에만 얻을 수 있는 채소, 과일, 해산물 등으로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시기를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에만 한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통조림에 찍힌 제조 날짜를 보고 제철 고등어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제철 음식이 주는 '신선함'이라는 타이틀에는 비비기 힘들지 않을까.
- 지금도 맛있긴 한데 뭐랄까. 고등어가 약간 다이어트한 느낌이야 뭔지 알지?
- 응응 무슨 말 하는지 알아.
오빠, 나도 생고등어로 요리를 하고 싶지.
두툼한 고등어 살을 발라 묵은지에 돌돌 싸서 먹으면 입안 가득 담백한 고등어와 짭짤한 묵은지가 춤을 출 거야. 그걸 왜 모르겠어.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 다르게 생고등어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고질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손이 가지 못하는' 것이다.
생선이 무섭다.
그 큰 눈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어릴 적 '그 사건'이 떠올라서 절로 몸서리가 처진다.
어릴 적 우리 집 마루에는 의자 두 개를 합친 길이 정도의 큰 어항이 있었다.
그 안에는 금붕어를 비롯한 각종 열대어가 살고 있었는데, 사건은 엄마가 낮에 장을 보러 나가신 사이 터지고 말았다.
동생과 심심해서 야구 놀이를 하다가 동생이 잘못 휘두른 배트에 어항이 맞아 금이 간 것이다.
금이 간 유리 사이사이로 물이 새어 나오며 결국에는 와장창-
그 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폭포처럼 쏟아진 물 틈으로 함께 빠져나온 금붕어와 열대어들은 팔딱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질겁을 하며 안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중 몇 마리는 방향을 잃고 안방까지 들이닥쳤고, 그 장면은 지금까지도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생선만 보면 그때가 자동 재생되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시장에 가면 수산물 코너는 쳐다도 보지 않았고, 행여나 그곳을 지나쳐야 한다면 숨을 참고 날랜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가장 곤혹스러운 장소는 강원도나 부산, 통영의 어시장들.
여름철 가족 여행을 가면 꼭 들리는 장소 중 하나였지만, 들어가자마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나고 숨을 쉬기가 버거워 나이를 먹고도 아빠 뒤에 붙어서 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늘 입구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식탁 위에 생선이 올라가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야 건강을 생각해서 억지로라도 먹었지만, 결혼을 한 후부터는 요리 주도권이 생겨 생선은 자연스럽게 아웃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생선 요리(통조림이 아닌, 수산물 코너에서 살 수 있는 싱싱한 생선으로 요리한-)는 건강한 음식이 당기는 날이나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할 때 식탁에 올라갔고, 그마저도 전적으로 남편 찬스를 썼다.
아귀찜은 콩나물과 미나리를 먹기 위해 시키는 것이니 말은 다 한 셈이다. (이렇게 무서워하는 생선이지만 구이, 회 등은 곧잘 먹는 것을 보면 그 또한 참 신기한 일이다)
나에게 생선 요리는 '도전'과도 같다.
기껏 해봐야 바다 생물로는 조개류, 해초류 정도만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만지기 싫어 각종 요리 도구들을 꺼내어 부엌을 번잡스럽게 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대가리부터 꼬리 끝까지 노릇노릇하게 잘 구운 생선을 아침 식탁에 올려놓고 싶고, 생선 머리로 국물도 우려서 매운탕도 만들어 보고 싶다.
비록 현실은 통조림에 든 생선이지만, '꿈을 크게 가져라. 깨져도 그 조각은 크다'는 독일 철학자의 말처럼 요린이도 그 정도의 꿈은 꿀 수 있는 것 아닌가.
결혼 생활 10년 차 정도 되면 생선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오늘도 통조림을 구매한다.
통조림 안에 들어있지만 어찌 됐든 생선이니 계속 보다 보면 언젠가는 정이 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이다.
고등어가 숨죽이며 통조림에서 익어가는 시간 동안 요린이로서의 삶도 익었으면 좋겠다. 아주 푹-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나와 겸상을 할 때 즈음, 생선 정도야 별거 아니라는 듯 요리하고 뼈를 발라주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은 통조림 안에 든 고등어도 만지기 싫어 벌벌 떠는 '쫄보' 엄마지만 말이다.
<고등어묵은지찜>
*양념장
- 고춧가루(3~3.5), 된장(1/3), 진간장(2), 참치액젓(1), 생강즙(1), 다진 마늘(1), 설탕(1~1.5), 미림(1)
*고등어묵은지찜 만들기
- 묵은지를 깔고 그 위에 고등어를 올린다. (통조림 국물x)
- 쌀뜨물을 자박하게 넣는다. (추후 간 보면서 양 조절하기)
- 양념장을 넣고 센 불에 끓이다가 파, 양파, 청양고추(2)등을 넣어준다.
- 간을 보며 2~30분 정도 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