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리법석 우당탕탕 아침 만들기 대작전
"새벽에 무슨 일이야? 얘 정신 놓은 줄 알았어."
아이가 이상하다. 잠을 자지 않는다.
백일까지 통잠을 자던 아이라 수면 문제로 크게 힘든 일이 없었다.
요 며칠 새벽에 한 번씩 깼지만 무난하게 넘어가겠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제는 달랐다.
아이는 잠든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울며 깼고, 그것을 시작으로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결국 우리는 저녁 8시부터 아침 7시까지, 1-2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며 강제 불침번을 서야만 했다.
마루에서는 남편의 한숨과 나의 잔소리가 교대로 이어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뿐이었다.
새벽 4시 40분이 넘었을 무렵, 간신히 아이를 재우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을 못 잔 탓에 예민해진 것인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실제로 아이의 "끙~" 하는 소리가 나면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 홈캠을 확인했다.
얼마나 잤을까.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눈을 붙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또 깨고 말았다.
홈캠 너머로 보이는 별보다도 반짝이는 아이의 두 눈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새벽에는 잠을 자야지, 너만 왜 혼자 일어나 있냐. 주경야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뒤집기 때문에 잠에서 깬 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짜식아!
올라오는 짜증을 속으로 삭이며 다시 아이를 재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퍼버법을 시도하기에는 개월수가 부족했고, 부부의 정서상 맞지도 않았다.
결국 안눕법, 쉬닥법을 돌아가면서 진행했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점점 더 또렷해지기만 했다.
시계는 어느덧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럴 바엔 아침이나 만들어야지.
며칠 전부터 벼르던 유부초밥을 만들기로 하였다.
재료는 이미 정리하여 냉장고에 넣어둔 상태라 바로 꺼내서 만들 수 있었고, 가열이 필요하지 않아 안전한 요리라 판단되었다. 유부 안에 밥만 채우면 되니 이보다 쉽고 간단한 요리가 또 어디 있을까.
밥을 푸고 유부초밥 재료를 섞었다.
아니, '때려 넣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했다.
재빨리 아기띠를 두르고 유부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기띠를 두르면 금방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움직임이 덜했는지 아이의 목소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오 마이갓.
급하게 장갑을 벗고 아이를 토닥이며 마루를 몇 바퀴 돌았다.
순간, 팔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두 팔은 요리를 하고, 나머지 두 팔로는 아이를 달래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아이를 재우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쓸모없는 공상이지만, 그마저도 안 하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토닥토닥, 강약조절. 고객님의 니즈에 맞춰 얼마나 토닥였을까.
정성을 들인 덕분인지 버둥거리던 아이는 다시 잠들었고, 나는 부엌으로 돌아가 유부초밥을 마무리했다.
고작 유부초밥 몇 개 만들었을 뿐인데..
20분 정도 걸릴 줄 알았던 유부초밥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기다 다 빠졌다.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소파에 널브러져 숨을 돌렸다.
적막한 새벽과 고요한 아침의 어딘가.
매일 지내던 공간인데 오늘따라 나 혼자 덩그러니 떠 있는 것 느낌이다.
- 새벽에 깬 이유가 뭘까. 오늘 하루 어디서부터 틀어졌길래 반 토막짜리 잠을 자지.
- 내일도 이러면 어떡하지. 책에서 보던 4개월 원더윅스 시작인 건가. 길면 한 달도 넘게 간다던데..
마음이 불안해졌다.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비슷한 케이스를 찾기 위해 맘카페에 들어갔다.
애바애라 문제도, 해결 방안도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글을 읽고 나면 괜히 안심이 됐다.
검색창에 '새벽깸', '4개월', '원더윅스' 등의 단어를 조합해 가며 스크롤을 내리다 문득 웃음이 났다.
'이게 딸아이와 만든 '첫' 요리구나.'
출산 전, 메모장에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던 리스트가 떠올랐다.
그중 하나는 '아이와 함께 요리하기'였다.
우리의 첫 요리는 아마도 유치원 소풍날이지 않을까.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로 김밥을 만들거나,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면서 까르르 웃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당근 같은 재료는 안 먹을 테니 음식 안에 몰래 숨겨 넣고, 김밥은 꼬다리가 제일 맛있으니 남편이랑 아이 입에 하나씩 넣어줘야지. 그런 소소한 계획들을 짜보며 혼자 흐뭇해했다.
이렇게 피곤에 찌들어 음식 간이 어떤지 알지도 못한 채 유부에 밥을 쑤셔 넣는 모습은 내가 상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와 상호작용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옹알이 몇 마디 한 게 전부였다.
이게 우리 모녀의 첫 요리라니.
영화로 치면 "우당탕탕 아침 만들기 대작전"이라는 제목이 붙어야만 될 것 같았다.
"오, 그 와중에 유부초밥을 만들었네?"
"응.. 아주 사연이 많은 유부초밥이었단다.."
"자기 얼굴을 보니까.. 그래 보여.."
"참고로 쟤랑 같이 만든 거야, 저~기 저 친구랑. 아주 환장대잔치였지 뭐"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남편과 새벽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침대에 뻗어 자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평하게 자는 모습에 실소가 터졌다.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운 녀석.
그래, 잠 좀 못 자면 어때. 주말에 몰아서 자면 되지.
이걸 너랑 만든 첫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는 그렇다고 믿을래.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이날을 잊지 못할 것 같아.
네가 옹알이로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랑 요리해서 즐거웠어요"
"엄마랑 함께하는 첫 요리라 행복했어요"
라고 말한 거라면, 그걸로 충분해.
*브런치스토리에 늘 화요일 연재로 글을 올리곤 했지만, 이날은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무리하게 써봤습니다.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휘발되는 기억들을 한 조각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날이요.
정제되지 않은 문장과 감정들이지만, '번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