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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Aug 21. 2024

나의 첫 명품 가방

나에겐 너무 무거웠던





근사하게 보이는 인생을 더 이상 믿지 말고,
지나간 세월을 보충하라.
그리고 하루하루를 마치
그대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  


W. 드러먼드 <죽음의 최후 유언>









할부 최대로 땡겨주세요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내가 이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열여덟의 나는 생각했다. ‘그 돈 주고 저런 걸 왜 사?’ 천 쪼가리 하나에 백만 원은 족히 된다는 그 옷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나이였다. 그 돈이면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나는 강단 있게 생각했다.



   그러나 스물여덟이 된 나는 생각했다. ‘서른 되기 전에 명품 가방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고,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건 모두가 하나쯤은 들고 다니는 그것을 나라고 들고 다니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론이었다.



   나는 용기인지 빙의인지 모를 다급하리만치 충동적인 소비에 의해서 첫 명품가방을 갖게 되었다. 그날은 평일 저녁이었고, 퇴근 후 급하게 찾은 백화점 명품샵에서 가방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객님 평소에 메고 다니실 거면 그보다 작은 사이즈가 더 나을 것 같아요” 매장 직원은 내 옆에 서서 금액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듯 퍽 고객을 생각하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직원의 조언을 고려해 볼 새도 없이 나는 급하게 말했다.



 아니요.
무조건 큰 걸로 주세요.




   구매를 완료한 가방과 그것이 담긴 빳빳하고도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숙성을 하면 더 맛있어지는 과일이라도 되는 듯 일주일을 집에 묵혀둔 명품가방을 처음 메고 출근을 한 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건 내 마음의 문제였다. '자차 하나 굴리지 못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출이 7천만 원이나 남은 8천만 원짜리 원룸에서 살고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비슷한 직장인인 내 생활은 일 년 전보다 나아진 게 거의 없는데, 그런 내가 과연 이 290만 원짜리 가방을 메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그 생각이 들자 내 한 달 치 월급 정도 들어간 그 가방이 왜인지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을 가지고 나면 마치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문득 너무나 부끄러워지고 말았던 거였다. 그 돈으로 살 게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던 열여덟의 나는 가진 건 없어도 초라하진 않았는데, 명품가방으로 나란 사람의 존재성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스물여덟의 나는 가진 게 있어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큰 사이즈의 그 가방은 가방 사이즈만큼이나 무겁고 거추장스러워서 평소 최대한 가볍게 다니는 것을 선호해 왔던 나의 취향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명품가방을 갖고 싶었고 그래서 가졌던 건, 그것이 마치 사람들에게 나란 사람의 위상을 드높이는 군더더기 없는 증표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돈을 쓰는 건 왜인지, 불행을 초래할 뿐이었다. 그 가방을 든 내 마음은 전보다 초라했고, 그 가방을 선택하는 데에 나란 사람에 대한 존중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흐른 어느 날, 나는 그 가방을 옷장에 오래 보관하다 돌아오는 주말에 반에 반 값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중고매장에 팔아넘겼다.

 







   살면서 당장 명품 가방 하나 가지지 않은들 어떤 문제 따위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언제나 단지 마음의 문제였다. 그리고 마음은 때로 세상이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예쁘게 포장해 놓은 말들을 듣고는 그것이 진실인 양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로 인해 나는 항상 내 앞에 주어진 질문에 답을 내놓는 선택을 해야 했다.  



너답게 살거니? 남들처럼 살거니?


   사실 가장 쉬운 건 아무런 내적 성찰 없이 곧이곧대로 세상의 말에 따라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 기다리는 씁쓸함을 맞아야 하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일 터였다.









   그리고 그건 누구도 감히 뭐라 할 수는 없는 영역에 있었다. 하지만 삶을 보다 산뜻하게 살기 위해서는, 개인에게는 매우 중요할, 그런 문제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들이 다 가졌다고 해서 나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꽤나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그건 나에 대한 진실을 가리는 뿌옇고 매운 연기 같았다. 그 생각을 걷어낸 뒤에야 나는,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분별해 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나 자신을 속인 채 겉모습을 꾸미지는 말자고,




    그 후로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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