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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여니vvv Jul 24. 2024

보물찾기 놀이

예기치 않은 행운



미련한 자는 먼 곳에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기 발밑에서 행복을 키운다.


J. 오펜하임 <현인>









   여간해서 나는 소질이 없었다. 예기치 않은 행운은 나의 편을 들어주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우연찮게 집어든 사진첩에서 나이에 답지 않게 뒷짐을 지고 입을 헤벌쭉 벌린 채 멍한 얼굴로 사진을 찍은 어린 날의 나를 발견했다. 그때가 내 나이 아홉 살 쯤의 가을 소풍이었을 것이다. 혼자가 편했던 나는 아마도 애늙은이 같이 무리를 빠져나와 종종걸음으로 자연을 즐기는 중이었으리라.





   사실 나는 소풍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아이였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려 노는 것에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는 항상 적당한 선을 두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학교를 떠나 야외로 놀러 가는 것이 싫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내심 보물찾기 놀이와 손수건 돌리기 놀이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나 싶다.




  보물찾기 놀이와 손수건 돌리기는 그야말로 내 시대 소풍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교는 어쩌면 그 두 개의 놀이를 학생들에게 시키기 위하여 소풍을 추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건 소풍을 갔던 학창 시절 내내 빠지지 않는 놀이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두 놀이를 참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랄 것이 별로 없어 손수건을 받을만한 일이 적었던 손수건 돌리기보다는 아무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보물찾기 놀이에 더 애정이 갔다.



  보물찾기 놀이는 말 그대로 참 단순하다. 소풍 장소를 돌아다니며 선생님들이 숨겨놓은 쪽지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건 수풀 사이에, 돌 틈에, 낙엽 아래에, 길바닥 어딘가에 있었지만, 친구들은 잘만 찾아내던 그 쪽지를, 나는 단 한 번도 찾아낸 적이 없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곳곳을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그것이 다른 친구들 손에는 용케도 쥐어져 있었다. 때로는 그것을 두세 개 이상을 찾아낸 친구도 있었다.




  사실 쪽지에 적힌 보물이라고 해봐야 공책이나 사인펜, 연필 한 다스 이런 것들이 전부였지만 나는 보물쪽지를 들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공연히 수풀 사이를 한번 더 헤집으며 아쉬운 마음을 표출하곤 했다. 소풍날은 즐거웠지만 항상 어떤 씁쓸함이 남았다. 그건 아마도 끝내는 찾아내지 못한 보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스물여덟 살을 먹은 나는 마친가지로 도무지 소질이 없었다. 여전히 보물 쪽지 하나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중견기업 주임이라는 직함과 적지 않은 월급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여전히 씁쓸하기만 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달리 우연찮은 행운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건 그냥 내가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찾아내지 못했던 걸까?




  나는 회사를 가야 했고, 회사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고,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고,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제대로 된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이해 못 할 일들을 해내야 했다. 또 모두가 가도 된다고 인정하는 시간에 집에 갈 수 있었고, 누구의 신경을 거스를만한 짓 따위는 시작도 하면 안 됐다.



  내게는 지켜야 할 의무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알아왔던 삶의 정답 같은 거였으니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물은... 내가 그토록 찾고 싶던 보물 쪽지는... 어쩌면 잠깐 머무른 어린 날의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소풍이라는 것조차 꿈이었던 걸까.

 


   어른으로서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꿈에서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보물찾기 놀이는 내 세상에서 물거품과 같이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서른다섯의 나는 능숙한 손길로 보물 쪽지를 집어 들었다. 공책이 적힌 종이도, 연필 한 다스가 적힌 종이도, 때로 나는 근사한 에메랄드 빛을 내는 보석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알게 된 건 이것 한 가지뿐이었다. 그건.... 그건 선생님이, 또는 타인이 숨겨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나 자신이 부여한 것들로부터 주어지는 거라는 것.




매일 맞는 아침 햇살의 상쾌함이

잠들기 전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나를 보며 웃는 짝꿍의 눈빛 속 다정함이

샤워 후 물기를 닦아주는 수건의 보송함과

들뜬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의 친절함과

옆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강아지의 따스함이....


그리고 일상의 모든 순간이



   그 모든 것이 전부 보물이었던 것이다. 늘 함께해서 가치를 숨기고, 일상으로 가치를 잃은 채. 그러나 그건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살아있기에 찾아낼 수 있는, 우리의 영혼에 새겨질 보석이었다. 때로는 황량하기 짝이 없고 감출길 없는 어둠이 우리 안에 자리할지라도, 그것조차 우리의 영혼에게는 전부 보물이었던 것이다.










   실은 보물 쪽지는 그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내 옆에 있었다. 보물을 발견하는 것에 소질이 없어 아쉬워했던 어린 날의 내가 무색하리만큼 짓궂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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